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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3-11 12:18:42

핸드 룰

Learned Hand(1872~1961)

소위 ‘Hand Rule’이라고 불리는 미국 핸드(Learned Hand) 판사에 의해 발전된 원칙에 따르면, 책임원칙을 결정하는 것은 예상손실과 사고회피 비용간의 관계를 밝힘으로써 가능해진다. 만일 예상손실이 사고회피비용보다 높을 경우 사고발생자는 피해자에게 손실액을 배상해야 하며, 그 반대인 경우에는 사고발생자로 하여금 배상책임을 부담하는 것을 면하게 해준다. 사고회피비용이 예상손실보다 큰 경우는 경제학적 관점에서는 불가피한 위험으로 판단, 이에 대한 책임을 면제해주는 것이다.

이와 같은 핸드판사의 공식을 적용할 경우, 우리는 전자금융서비스의 수요자와 공급자에 대하여 각각 예상손실과 위험을 예방하기 위해 지출하여야 하는 비용의 규모가 얼마일지를 따질 필요가 있다. 금융기관이 입증할 수 없는 수요자의 도덕적 해이에 의해 초래된 초과예상손실[1]과 개인이 입증할 수 없는 전자금융기관, 즉, 공급자의 도덕적 해이에 초래된 초과예상손실 가운데 어느 것이 더 큰가를 비교하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전자자금이체거래에 대한 소비자의 권리 보호를 주된 목적으로 제정된 전자자금이체법이 있다. 1977년 전자자금이체위원회(National Commission on Electronic Fund Transfer)가 전자자금거래에 대한 당사자의 권리와 의무를 명확히 하기 위한 연방차원의 입법조치를 권고하였다. 1978년 연방의회가 소매금융 분야에 있어서의 전자자금이체에 대한 소비자보호를 목적으로 전자자금이체법을 연방소비자신용보호법(Consumer Credit Protection Act of 1968)의 Subchapter 4,5,6으로 편제(15 U.S.C. 1693-1693r)되어 1980년 5월부터 시행하였다.

이 법에 의하여 보호받는 자는 모든 소비자이며(자연인), 이 법을 준수할 책임을 지는 자는 금융기관이다. 전자자금이체의 정의 및 범위, 전자자금이체 거래당사자간의 권리의무 접근매체의 발행, 오류정정의 절차, 무권한 이체에 관한 소비자의 책임제한, 금융기관의 책임, 공시, 기록, 소비자보호를 위한 특별규정, 주법률 등 여타법과 충돌시 경합규정, 행정적 시행조치와 형사책임 등을 규정하고 있다.

전자자금이체법은 무권한 이체에 사용된 접근매체가 “인수된 접근매체”일 경우, 소비자는 무권한 이체에 대하여 50달러 또는 금융기관에 대한 통지 이전에 발생한 무권한 이체의 금액 중 적은 것을 초과하지 못하도록 소비자의 책임을 제한하는 ‘50달러 원칙’을 사용하고 있다. 이 50달러원칙의 예외로 소비자가 접근매체의 도난 또는 분실을 안후 2영업일 이내 금융기관에 통지하지 않거나, 기간계산서 송달후 60일 이내에 그 계산서에 나타난 무권한 이체를 금융기관에 보고하지 않은 경우에는 소비자의 책임은 500달러 또는 무한책임을 부담하도록 하고 있다.

시스템의 사고, 장애로 인해 손실이 발생한 경우에 대해 금융기관이 책임을 부담하도록 하고 있다. 제도적 장애로 인하여 소비자가 타인에게 전자자금이체를 하지 못한 경우, 그 타인에 대한 소비자의 채무는 제도적 장애가 보수되고 전자자금이체가 실행될 수 있을 때까지 연기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체지시불이행에 대한 책임에 대해서도 금융기관이 정확한 금액 또는 적시의 방법으로 이체를 실행하지 아니한 경우와 예금을 소비자의 계좌에 대기하지 않음으로써 자금불충분으로 차변이체를 실행하지 못한 경우, 사전수권 차변이체의 지급정지지시를 이행하지 아니한 때에 그 책임을 부담하도록 하고 있다. 다만, 책임부담의 예외로 소비자의 계좌에 자금이 불충분하거나 불가항력으로 이체지시불이행이 일어났거나 소비자가 이체를 개시할 때 기술적 기능장애를 알고 있었을 경우에는 면책하고 있다.

시스템의 사고, 장애에 따른 손실로 고객의 정당한 전자자금이체 지시가 이행되지 않은 경우, 금융기관은 동 사고, 장애가 자신의 고의 또는 과실에 기인한다고 인정되는 경우 고객에게 자금을 반환(Money Back Guarantee)하고 지연이자 및 간접손실을 모두 배상하도록 하고 있다. 다만 금융기관이 선량한 관리인의 주의 의무를 다하였음을 입증하는 경우에는 직접손실액만 부담하고, 천재지변 등 금융기관의 통제력을 벗어난 경우에는 면책된다. 금융기관은 고의 또는 과실로 부적절한 자금이체를 실행하지 않았음을 입증하여야 할 책임을 진다. 무권한 사전승인자금이체 발생시 동 이체가 사전 승인된 것임을 입증하여야 할 책임도 가진다.

한국 대법원 판결 중에서도 방론으로[2] 핸드 룰을 거론한 것이 나왔다.
민법 제758조 제1항은 “공작물의 설치 또는 보존상의 하자로 인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는 공작물점유자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점유자가 손해의 방지에 필요한 주의를 해태하지 아니한 때에는 그 소유자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위 규정의 입법 취지는 공작물의 관리자는 위험의 방지에 필요한 주의를 다하여야 하고, 만일에 위험이 현실화하여 손해가 발생한 경우에는 그들에게 배상책임을 부담시키는 것이 공평하다는 데 있다. 따라서 ‘공작물의 설치·보존상의 하자’란 공작물이 그 용도에 따라 통상 갖추어야 할 안전성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 있음을 말하고, 위와 같은 안전성의 구비 여부를 판단할 때에는 그 공작물을 설치·보존하는 자가 그 공작물의 위험성에 비례하여 사회통념상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정도로 위험방지조치를 다하였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18. 7. 12. 선고 2015다68348 판결 등 참조). 하자의 존재에 관한 증명책임은 피해자에게 있으나, 일단 하자가 있음이 인정되고 그 하자가 사고의 공동원인이 되는 이상, 그 사고가 위와 같은 하자가 없었더라도 불가피한 것이었다는 점이 공작물의 소유자나 점유자에 의하여 증명되지 않는다면 그 손해는 공작물의 설치 또는 보존의 하자에 의하여 발생한 것으로 해석함이 타당하다(대법원 2005. 4. 29. 선고 2004다66476 판결, 대법원 2015. 8. 27. 선고 2012다42284 판결 등 참조).

이 경우 하자 여부를 판단할 때에는 위험의 현실화 가능성의 정도, 위험이 현실화하여 사고가 발생하였을 때 침해되는 법익의 중대성과 피해의 정도, 사고 방지를 위한 사전조치에 드는 비용이나 위험방지조치를 함으로써 희생되는 이익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대법원 1995. 8. 25. 선고 94다47803 판결 참조).

이러한 법리는 ‘불합리한 손해의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로서 위험으로 인한 손해를 위험을 회피하기 위한 부담과 비교할 것을 요구한다는 측면에서 법경제학에서의 비용·편익 분석임과 동시에 균형접근법에 해당한다. 법관이 법을 만들어나가는 속성을 지닌 불법행위법에서 법관이 수행해야 할 균형 설정의 역할이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균형 설정은 구체적 사안과의 관련성 속에서 비로소 실질적인 내용을 가지는 것이므로, 미리 세세한 기준을 작성하여 제시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때는 이른바 ‘Hand Rule’을 참고하여, 사고 방지를 위한 사전조치를 하는 데 드는 비용(B)과 사고가 발생할 확률(P) 및 사고가 발생할 경우 피해의 정도(L)를 살펴, ‘B 〈 P·L’인 경우에는 공작물의 위험성에 비하여 사회통념상 요구되는 위험방지조치를 다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공작물의 점유자에게 불법행위책임을 인정하는 접근 방식도 고려할 수 있다.
대법원 2019. 11. 28. 선고 2017다14895 판결(주심: 권순일 대법관)[3]


[1] 예상손실액이 사고회피비용을 초과하는 액수[2] "이 판결에서 핸드 룰을 언급한 것은 지극히 추상적이면서도 자명한 원칙을 선언한 정도의 의미를 가질 뿐, 설시에서 그 부분이 없다고 해서 판결의 결론이 달라지거나 논리전개에 어려움을 초래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점에서 위 판결에서 핸드 룰을 반드시 언급해야 했는지에 대해 의문이 들기도 한다."(남형두, "법학의 학문 정체성에 관한 시론", 서울대학교 법학, 제62권 제3호(2021. 9.), 53면). 다만 이와 같은 남형두 교수의 평석은, '법경제학의 방법론에 의한 법학의 침습을 지적'하면서 '그러한 방법론에 전제된 수학적 기계론적. 환원주의적 세계관이 법학에 깊이 뿌리를 내려 법치의 근간을 흔들고 있는 것을 우려'하는 입장에 서있는 학자의 지적에 불과하다. 실제 윤진수 교수, 이동진 교수, 최준규 교수, 권영준 교수(현 대법관) 등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의 여러 민사법 교수들은 오래 전부터 '법경제학적 방법론'을 통해 민사법의 이론과 법리를 수정하려는 시도를 해왔다(권영준, “민법학, 개인과 공동체, 그리고 법원”, 비교사법 제22권 제4호(통권71호), 한국 비교사법학회, 2015. 등 참조). 특히 교정적 정의가 강조되고, '과실'과 같은 추상적 개념을 구체적으로 해석하는 과정을 통해 법을 형성하며, 개인과 공동체 사이를 교량하여야 할 법관의 책임이 강조되는 '불법행위법'의 영역에서 그러한 접근이 도드라졌다. 따라서 위와 같은 대법원의 설시는 국내 민사법학계에서 꽤 오랜 기간 축적되어 온 법경제학적 방법론의 논의를 일부 수용한 것이지, 뜬금없거나 무의미한 기재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리고 본 사건의 주심인 권순일 대법관은 오랜 기간 한국법경제학회에서 활동하며 이러한 학계의 논의를 수용해왔던 법관이었다.[3] 공교롭게도, 권 대법관의 성인지 감수성 판례 역시 정작 성인지 감수성에 관해 설시한 부분을 통째로 삭제하더라도 논리전개에 지장이 없다. 위 각주를 단 편집자의 의도는 알 수 없으나, '핸드룰'에 관한 설시는 '과실'이라는 불법행위법의 추상적 요건을 구체적으로 해석하는 기준의 한 가지를 제시한 것으로서, 실제 파기환송 후 원심에서도 이러한 접근법을 염두에 두고 공작물책임 성부를 판단하였는바, 삭제하더라도 논리전개에 지장이 없다고 보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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