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전시된 레플리카. |
흔히 말하는 '삼족오 문양'을 확대한 이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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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제강점기인 1941년, 평안남도 중화군 진파리(현 평양시 력포구역 용산리)에 위치한 진파리 고분군 제7호분에서 발굴된 금동 장식이다. 매체에 따라서 금동 해모양구름무늬 뚫음새김, 해뚫음무늬 금동장식, 일상투조 금동장식(日像透彫金銅裝飾)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제작시기는 고구려 후기인 6세기로 추정되며, 중앙에 태양을 나타내는 무늬를 배치하고, 그 주위에 봉황과 용 문양이 맞뚫림으로 처리되어 있다.[1] 무늬의 폭은 약 1~3mm로 매우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어 고구려 미술의 백미를 보여준다.
2. 오해
삼족오가 고구려를 비롯한 조상들에 의해 숭상되었다는 사실과, 대중적으로 '이 무늬 장식이 고구려의 유물'이라는 사실이 이상하게 조합되어 "이 삼족오 무늬는 곧 고구려를 대표하는 국기(國旗) 또는 국장(國章)이 아니냐"는 식으로 쓰이기도 한다. 학술적으로는 그러한 바가 없지만 한국 내 대중문화, 매체에서 흔히 고구려를 상징하는 장식이나 깃발이 등장하면 이 유물의 문양을 나라의 상징인 것처럼 그대로 쓰기도 하는데, 전혀 근거가 없다. 이 문양은 상술하듯 한 고구려 시기 무덤에서 출토된 장식품에서 발견된 부속 문양의 일부일 뿐, 나라 전체를 상징했다는 증거는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물론 일부 고대 벽화나 유물 등지에서 세 발 달린 까마귀로 보이는 형상이 등장함으로써 삼족오가 고대인들에게 영물로서 숭배되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할 수 없으나, 이는 당대 동아시아의 다른 국가(중국,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세간에서는 아예 이 무늬를 원 모양으로 잘라서 고구려 군기인 붉은 색 깃발[2]에 갖다 붙여, "이게 고구려 국기다"라고 주장하는 터무니없는 사례까지 있다.
해모양 뚫음무늬를 차용해 '고구려 국기'라고 잘못 알려진 이미지들. |
이러한 주장이 사실이 되기 위해서는 위 문양과 거의 완벽하게 동일한 문양이 고구려 유적 여기저기에서 출토되어야 하는데, 해모양 뚫음무늬의 삼족오 문양까지 똑같이 그려낸 장식이나 벽화는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무늬의 도안은 평안남도 진파리 고분군 제7호분 외에 다른 곳에서 발견된 바가 없으며, 그러한 무늬를 썼다는 사실을 글로 묘사한 기록조차 없다. 따라서 이를 과대해석하는 것은 엄연히 역사 왜곡이다.
실제로 고구려가 '국기'를 사용했으리라는 근거는 발견할 수 없고, 이러한 고정관념 자체가 너무 현대인의 시점에서 판단하려 하는 시도일 수도 있다. 고대 국가에서는 오늘날과 같은 국기 개념이 없는 곳이 대부분이었으며, 중국에서도 청나라 후기, 한국사에서는 조선 시대 후기, 일본 역시 쿠로후네 사건 이후에서나 근대적 국기가 만들어졌다.
살펴보면 전근대의 동아시아에서는 왕을 상징하는 '어기'와 군대를 상징하는 '군기'가 보편적으로 사용되었지, 현대의 국기에 대응하는 상징물은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특정 국가에서 즐겨사용하는 문양, 색, 상징물 정도는 당연히 존재했으나 고구려의 삼족오 문양은 이 경우에도 해당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