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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5-07 12:16:36

해리 키오

파일:Harry Keough.png
이름 해리 조셉 키오
(Harry Joseph Keough)
생년월일 1927년 11월 15일
사망년월일 2012년 2월 7일 (향년 84세)
국적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출신지 세인트루이스
포지션 풀백
신체조건 175cm | 73kg
소속팀 샌프란시스코 바바리안스 (1946)
세인트루이스 쿠티스 SC (1948-1961)
국가대표 9경기 1골 (1949-1957)
감독 플로리산트 밸리 커뮤니티 칼리지 (?-?)
세인트루이스 빌리컨스 (1967-1982)



1. 개요2. 생애
2.1. 어린 시절2.2. 선수 생활2.3. 이후
3. 사생활4. 뒷이야기5. 수상
5.1. 클럽5.2. 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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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전 축구 감독.

2. 생애[1]

2.1. 어린 시절

키오는 세인트루이스에서 태어났고 클리블랜드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그는 육상, 수영 등 여러 스포츠를 즐겼지만 특히 축구에 두각을 보였다.

2.2. 선수 생활

2.2.1. 클럽

키오는 1946년 미 해군에 입대하면서 본격적으로 축구 선수 생활을 하게 되었다. 키오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잠수함 승조원으로 복무했고 이 시기에 샌프란시스코 바바리안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키오는 샌디에이고에서 복무하다 제대하고 고향 세인트루이스로 돌아왔다. 키오는 세인트루이스 쿠티스(St. Louis Kutis)에서 남은 커리어를 모두 보냈고 쿠티스는 키오가 뛰는 동안 세인트루이스 리그 우승 4회, 내셔널 아마추어 컵 우승 8회를 기록했다.

2.2.2. 국가대표

키오는 미국 대표팀 소속으로 월드컵올림픽 축구에 참가했다.

키오가 참가한 첫 메이저 대회는 1950년 월드컵이었다. 키오는 미국의 3경기에 모두 출전했고 미국은 1승 2패의 성적을 거뒀지만 3승의 스페인에 밀려 결선 리그 진출에 실패했다.

키오는 1952년1956년, 두 차례 올림픽에 참가했지만 미국은 이 두 대회에서 모두 단 한 경기만 치르고 짐을 싸야 했다.

키오의 마지막 A매치는 1957년에 있었던 1958년 월드컵 지역 예선이었지만 미국은 4전 전패, 조 꼴찌로 탈락하고 말았다.

2.3. 이후

키오는 선수 은퇴 후, 대학 축구팀 감독 생활을 했고 세인트루이스 빌리컨스에서 15년간 감독직을 맡았다.

키오는 세인트루이스가 속해있는 미주리 주에서 스포츠 영웅으로 대접받았고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트 잡지가 선정한 50인의 미주리 주 레전드 중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말년의 키오는 치매 투병 생활을 하다 2012년에 사망했다.

3. 사생활

키오의 아들 타이도 8경기의 미국 축구 국가대표팀 경력이 있다.

4. 뒷이야기

5. 수상

5.1. 클럽

5.2. 개인



[1] 출처: 위키피디아, 11v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