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colcolor=#fff> 한정일 韓楨日 | |
출생 | 1915년 9월 2일 |
사망 | 1987년 3월 26일 |
복무 | 대한민국 경찰 |
최종계급 | 경감 |
복무 기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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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정일(韓楨日, 1915년 9월 2일 ~ 1987년 3월 26일)은 대한민국의 6.25전쟁 참전 경찰이다.2. 생애 및 경찰 경력
초기 생애 및 경찰 경력한정일은 1915년 9월 2일 출생하였다.
광복 후 대한민국 경찰에 입문하여 곡성경찰서장으로 임명되었으며, 6.25 전쟁 발발 당시 전라남도 곡성군에서 치안 유지 및 방어 작전을 수행하였다.
6.25 전쟁 참전
곡성전투경찰대 조직 (1950년 7월 24일)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한 후, 북한군의 급속한 남하로 대한민국 대부분의 지역이 한 달 만에 북한군의 점령 하에 놓였다.
당시 광주, 순천, 광양까지 함락되자, 곡성경찰서에도 철수 명령이 하달되었다.
그러나 한정일 경감은 "주민을 버리고 철수할 수 없다"며, 자발적으로 "곡성전투경찰대"를 조직하여 유격전에 돌입하였다.
그는 7월 24일, 경찰과 의용대원 중 전투 가능 인원 520명을 선발하였으며, 곡성군 태안사에 입산하여 유격부대 체제로 전환하였다.
이후 전투중대 4개, 유격대 1개, 정찰대 1개 소대를 편성하여 인근 산악지대에 배치하고 즉각적인 기동작전이 가능하도록 조치하였다.
압록교 전투 (1950년 7월 28일)
7월 28일, 한정일 경감은 생포한 북한군을 통해 북한군 제6사단(603기갑연대)이 남원으로 이동하기 위해 7월 29일 정오경 압록교(섬진강 상류)를 통과할 예정이라는 첩보를 입수하였다.
그는 곡성 압록교 인근에서 매복 작전을 지시하였으며, 이튿날 북한군 3개 중대가 이동하는 순간 기습 공격을 감행하였다.
치열한 전투 끝에 북한군 52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으며, 아군은 1명 전사라는 최소한의 피해를 기록하였다. 북한군은 큰 타격을 입었으며, 남원 진입이 일주일가량 지연되었다.
태안사 전투 및 광양 백운산 철수 (1950년 8월 6일)
그러나 8월 6일 새벽, 북한군 1개 연대가 기습 반격을 감행하였다.
이 과정에서 태안사에 주둔하던 곡성전투경찰대는 48명 전사, 200여 명 부상이라는 큰 피해를 입게 되었다.
이에 한정일 경감은 잔여 대원들을 이끌고 광양 백운산으로 철수하였다.
이후에도 북한군의 보급로를 기습하는 등 지속적인 유격전 수행을 지휘하였으며, 끊임없이 북한군을 교란하는 작전을 펼쳤다.
3. 전쟁 후 영향 및 평가
한정일 경감이 이끈 곡성전투경찰대는 조직적으로 적진에 남아 유격전을 수행한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된다.그의 지휘 아래 압록교 전투에서 기록적인 전과를 올렸으며, 경찰 유격대가 수행한 대표적인 승리 사례로 남아 있다.
특히, 곡성전투경찰대의 활약은 전쟁 초기 국군이 전열을 정비하는 데 중요한 시간을 확보하였으며, 대한민국 경찰의 6.25 전쟁 공적 중 가장 성공적인 작전 중 하나로 기록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3월 그를 "이달의 6.25 전쟁영웅"으로 선정하여 그의 희생과 공헌을 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