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만주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한이순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출생 | 1880년 |
미상 | |
사망 | 1920년 10월 22일 |
중화민국 길림성 동남로도 혼춘현 십리평 (현 중국 지린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 왕청현 스리핑촌) | |
상훈 | 건국훈장 애국장 |
한이순은 1880년생으로 알려졌지만 출생지는 알 수 없다.
그는 일찍이 만주로 망명하여 길림성 동남로도(東南路道) 혼춘현(琿春縣)에서 독립운동단체에 가입하여 식량 공급 및 가옥 건설 등에 종사하면서 정보 연락 활동을 수행했다.
그러다가 1920년 10월 22일 간도참변 당시 일본군 19사단 76연대 기무라(木村) 지대 소속 병사들에게 체포된 뒤 당일 혼춘현 십리평(十里坪)[1]에서 총살당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한이순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2. 천안시 출신 독립운동가, 한이순
성명 | 한이순(韓利順) |
이명 | 한국강(韓菊江) |
생몰 | 1906년 11월 14일 ~ 1980년 1월 31일 |
출생지 | 충청남도 직산군 이동면 양대리 (현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입장면 양대리) |
사망지 | 충청남도 천안군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한이순은 1906년 11월 14일 충청남도 직산군 이동면 양대리(현 천안시 서북구 입장면 양대리)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광명학교(光明學校)에 재학중이던 1919년 3월 20일 양대리 장날을 기하여 광명학교 학생, 교사, 주민 등 약 70여 명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시위를 벌였다. 이어 6∼7백명으로 증가된 군중은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독립만세를 부르며 하장리에 있는 입장 장터를 향해 행진했다. 그녀는 이날 군중에게 태극기를 배포하여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위행진 하다가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후 1919년 4월 28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형을 언도받아 옥고를 치렀다. 이후 천안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80년 1월 31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한이순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1] 현 중화인민공화국 지린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 왕청현 스리핑촌(十里坪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