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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3 22:16:54

학교법인 조선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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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대 이사장3. 1.8 항쟁4. 유지경영학교5. 관련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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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校法人 朝鮮大學校

1. 개요


광주광역시에 소재한 학교법인으로 조선대학교 등 3개의 고등교육기관, 4개의 중등교육기관, 2개의 병원을 경영하고 있다.

1946년 5월 26일 발족된 7만 2천여명의 조선대학 설립동지회를 모태로 한다. 그러나 박철웅이라는 사람이 조선대학 설립동지회에서 학교 세우려고 십시일반 모아놓은 성과물을 중간에서 스틸, 재단법인 조선대학(재단) 및 조선대학(학교)을 세우고 재단 이사장 및 학교 총장으로 등극한다. 이후로 박철웅 및 그 일가족은 재단의 요직을 차지한 채 학교를 사실상 사유화하여 40년 넘게 권력을 휘두르다가 1988년의 학내 민주화 운동을 통해서 퇴출되고, 재단은 당시 교육부의 관리 아래 들어간다. 이후로 20년 넘게 교육부 파견 임시이사 체제로 운영되다가 2009년부터 다시금 정이사 체제로 되돌아갔다.

그러나, 2013년 개방 이사 선임을 두고 2기 이사회 구성부터 파행이 벌어지면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개방이사 선임을 위해서는 승계권한을 가진 정이사 3명이 미련없이 퇴진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문제가 벌어졌다. 구 재단 출신 3명은 끝까지 물러설 생각이 없는 상태에서 제2의 상지대 같은 사태가 벌어질수 있기에 여러가지 충돌이 상당했지만 겨우 겨우 넘어갔다. 그러나, 2018년 3기 이사회 선임은 더 큰 갈등이 벌어지고 임기만료 후 무려 8개월 동안 2기 이사회가 질질 끌게 되자 결국 교육부가 개입해 기존 이사 9명을 전부 해임하고 다시 임시이사 체제로 돌아갔다.

이후 2020년에 다시 정이사 체재로 복귀했다.

2. 역대 이사장

3. 1.8 항쟁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Chosun_University_Student_Activism.jpg.jpg

1982년, 당시 설립동지회 회장이던 박철웅은 대학의 사유화를 목제으로 정관을 불법 교체하고 자신에게 반대하는 교수를 해임, 폭행하거나 돈을 빼돌리고 부정입학을 시키는 등의 만행을 저지르다 1986년엔 교수들의 시국선언을 막기위해 전체 교수 및 교직원을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고등학교에서나 할법한 아침조회와 운동장 뺑뺑이를 시키며 충성서약을 시키는등 온갖 횡포를 부리던 박철웅 및 그 가족을 처단하고, 당시의 제 5공화국 민주화 항쟁과 학원 민주화 항쟁에 동참하여 '박철웅 총장 퇴진 및 민립대학 환원' 투쟁으로서 학부모까지 가세하여 113일간의 농성 끝에 1988년 1월 8일 새벽 4시 학내에 공권력 투입으로 막을 내렸다.

이 일로 1500명의 경찰력이 투입되어 진압중 2명이 중과상을 입었으며 1명의 투신과 45명의 체포자가 발생하였다, 결국 박철웅 총장의 독재는 교육부가 박철웅과 기존 이사진을 모조리 해임하고 2월엔 학생, 교수, 동문, 학부모가 동참하는 대학자치운영협의회가, 4월엔 해직교수 24명의 복직, 9월엔 새로운 총장인 이돈명 총장이 취임하며 대표적인 대학 민주화 운동의 사례로 꼽히고 있다.

4. 유지경영학교

5. 관련 문헌



[1] 박철웅의 처.[2]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전라남도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