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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8-10 15:20:24

하스드루발(제1차 포에니 전쟁)


하스드루발 바르카
𐤏𐤆𐤓𐤁𐤏𐤋
Hasdrubal[1] | Azrubaʿal
<colbgcolor=#eee8aa><colcolor=#000> 출생 미상
미상
사망 기원전 251년
카르타고
국적 카르타고
지위 카르타고 사령관
참전 전쟁 제1차 포에니 전쟁
-아디스 전투
-바그라다스 전투
-파노르무스 전투
1. 개요2. 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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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1차 포에니 전쟁에서 로마군을 상대로 맞서 싸운 고대 카르타고 장군.

2. 행적

폴리비오스는 그를 "한노의 아들"이라고 지칭한다. 기원전 255년 로마군이 에크노무스 해전에서 승리하고 아프리카 해안에 상륙한 뒤 카르타고에서 남동쪽으로 40마일 떨어진 아디스(현재 유티나) 시로 진격해 포위하고 주변의 시골을 약탈했다. 카르타고 정부는 이 소식을 듣고 하스드루발과 하밀카르, 보스타르에게 적군을 물리치는 임무를 맡겼다. 이들은 하밀카르가 시칠리아에서 아프리카로 이끌고 온 5,000 보병과 500 기병을 포함해 로마군과 비슷한 전력을 규합한 뒤 아디스로 진군했다. 이후 아디스 인근의 바위 언덕에 숙영지를 건설했다. 폴리비오스는 이들이 카르타고군의 주력인 전투 코끼리와 기병이 제 역량을 발휘하기 힘든 바위 언덕에 군대를 배치시킨 것은 명백한 실수였다고 비판했지만, 현대의 일부 학자들은 로마 군단병의 위력이 강한데다 병력을 급하게 긁어모은 터라 신병이 많으니 정면 대결은 승산이 없으므로 지형에 의지하여 방비한 것은 나쁜 선택이라고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레굴루스는 적이 아군 진영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주둔한 것을 보고 병력을 둘로 나눠서 새벽에 기습 공격했다. 하지만 카르타고군은 적이 기습하러 온 것을 사전에 눈치채고 방어 태세를 갖췄다. 적진에 먼저 도착한 첫번째 로마 부대는 카르타고군의 맹렬한 저항에 고전하다가 언덕 아래로 밀렸다. 그러나 카르타고군 상당수가 밀려나는 적을 쫓느라 전열을 이탈해 버렸고, 레굴루스는 2번째 부대를 이끌고 그런 적군의 측면과 후방을 요격했다. 이에 카르타고군은 언덕에서 퇴각했고, 기병대와 전투 코끼리는 전투가 벌어지는 내내 투입되지 않다가 퇴각했다. 로마 측의 기병은 고작 500명밖에 안 됐기에 섣불리 추격하지 않았고, 로마 보병들도 전투를 온종일 치르느라 지쳐서 퇴각하는 적을 쫓지 않았다. 그 대신, 그들은 적이 버리고 간 진영에 가서 마음껏 약탈했다.

레굴루스는 아디스 전투에서 승리한 뒤 카르타고 주변 지역을 습격해 약탈과 파괴를 자행했다. 카르타고의 지배를 받던 부족과 도시들이 이 때를 틈타 카르타고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켰고, 카르타고 시내에 레굴루스를 피해 도망쳐 온 난민들로 북적였고 식량도 바닥을 드러냈다. 이제는 승산이 없다고 본 카르타고 정부는 레굴루스에게 평화 협정을 맺자고 제의했지만, 레굴루스가 제시한 요구 조건이 너무 가혹하다고 여기고 최후의 항전을 벌이기로 마음먹었다. 그들은 스파르타 출신의 용병대장 크산티푸스를 지휘관으로 선임했고, 하스드루발은 부관을 맡았다. 기원전 255년 봄, 카르타고군은 크산티푸스의 지휘하에 바그라다스 전투에서 레굴루스의 로마군을 섬멸했다. 폴리비오스에 따르면, 크산티푸스는 카르타고를 구원한 뒤 카르타고 장군들의 질투와 중상 모략에 직면하자 해를 입기 전에 카르타고를 떠났다고 한다. 이 장군들 중에는 하스드루발도 있었다고 추정된다.

그 후 카르타고를 침공한 누미디아를 상대로 분전하던 그는 누미디아와의 전쟁이 끝난 직후인 기원전 252년 로마군에게 빼앗긴 시칠리아의 요충지 파노르무스를 탈환하라는 당국의 지시를 받들어 30,000명의 군인과 140마리의 전투 코끼리를 이끌고 시칠리아에 상륙했다. 하지만 로마군과 섣불리 전투를 벌이지 않았고, 로마군 역시 바그라다스 전투의 악몽 때문에 회전을 벌이려 하지 않았다. 양측은 1년간 서로를 마주보기만 할 뿐 별다른 전투를 벌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던 기원전 251년 늦여름, 하스드루발은 집정관 가이우스 푸리우스 파킬루스가 절반 병력을 이끌고 시칠리아를 떠났다는 소식을 접하고 지금이야말로 전투를 벌일 적기라고 판단했다. 그는 파노르무스를 향해 진군하며 로마와 동맹을 맺은 여러 도시로 군대를 보내 농장을 황폐화시켰다.

카르타고군이 접근하자, 당시 시칠리아에 남은 루키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는 농작물을 수확하기 위해 흩어졌던 병사들을 서둘러 집결시킨 뒤 파노르무스 성채로 후퇴했다. 적이 이렇게 소극적으로 나오자, 하스드루발은 적을 손쉽게 제압할 수 있겠다고 확신하고 오레르토 계곡을 통과하며 여러 시골을 황폐화한 뒤 파노르무스 시 인근 해안가에 당도했다. 이후 병사들을 쉬게 해주는 대신 코끼리 부대를 앞세워 성벽을 향해 돌진했다.

당시 로마군 장병들은 140마리나 되는 코끼리들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몹시 두려워했다. 이에 메텔루스는 병사들을 성내에 대기시킨 뒤 투창병과 경보병 만을 성벽 앞 해자에 매복시켰다. 이윽고 적 코끼리 부대가 나타나자, 메텔루스는 코끼리들을 향해 투창을 퍼부으라고 명령했다. 투창 세례를 얻어맞은 코끼리들은 통제를 잃고 뒤에서 따라오고 있던 카르타고 보병대를 뚫고 도주했다. 이로 인해 카르타고군이 혼란에 빠지자, 메텔루스는 즉시 군단병을 이끌고 적을 향해 달려들어 닥치는 대로 살육했다. 카르타고군의 사상자는 전해지지 않으나 상당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코끼리는 전투 첫날 10마리가 노획되었고 나머지도 나중에 노획되었다고 한다. 로마군의 사상자 역시 전하지 않으나 미미한 수준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스드루발은 파노르무스 전투 참패 후 본국으로 소환된 후 십자가형에 처해졌다.
[1] 페니키아어로 하스드루발은 '바알의 도움'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