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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1 14:47:23

하루오 레멜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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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9f><colcolor=#ff0> 팔라우 공화국 제1대 대통령
하루오 레멜리크
Haruo Remeliik
파일:하루오 레멜리크.jpg
출생 1933년 6월 1일
팔라우 펠렐리우
사망 1984년 6월 30일 (향년 51세)
팔라우
재임 기간 제1대 대통령
1981년 3월 2일~1984년 6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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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9f><colcolor=#ff0> 학력 하와이 대학교 졸업
배우자 레지나 레멜릭
정당 [[무소속|
무소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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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2.1. 어린 시절2.2. 대통령 시절2.3.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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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팔라우의 제1대 대통령. 팔라우 최초로 암살된 대통령이기도 한다.

2. 생애

2.1. 어린 시절

그는 팔라우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은 팔라우 펠렐리우섬에서 보냈다.[1] 그는 크고 나서 미국의 하와이 대학교를 다니고 졸업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팔라우(당시에는 태평양 제도의 팔라우)에 돌아와 팔라우의 지역 담당 공무원으로 취업했다. 또한 법원 서기까지 담당했다. 그러다 대통령에 출마하였는데 그가 그다지 존재감 있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팔라우 제헌위원회의 위원장 취임을 계기로 이름을 알리게 되어 1981년 3월 2일에 대통령에 당선하는 데 성공한다.

2.2. 대통령 시절

그가 대통령 재임 당시 자유연합협정 조기 체결을 추진했으나 팔라우 법에 명시된 비핵조항 때문에 팔라우에 핵을 즐비하고 싶었던 미국과의 협상은 사실상 좌초하였다. 또한 영국의 IPSECO 사와 계약을 맺어 발전소를 건설하였지만 계획대로 진행되지 못하면서 약 7000만 달러의 채무를 가지게 되었다. 이 같은 정책 실패로 공무원의 파업과 테러 사건이 발생하는 등 팔라우는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이었으나, 1984년 제2회 대통령 선거에서 50.9%의 득표율로 가까스로 재선에 성공하였다.

2.3. 사망

그가 재선하고 나서 얼마 후인 1984년 6월 30일 레멜리크가 본인의 집으로 들어가려 할 때 어떤 한 남자가 총격 테러를 하여 그는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대통령이 죽었기 때문에 토마스 레멩게사우가 7월 2일까지 이틀간 임시 대통령을 맡았다. 총기 테러가 일어난지 6개월 뒤 팔라우의 다른 정치인인 로만 트메투치와 다른 남성 1명이 살해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로 체포되었으나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났다. 그치만 총기 테러를 지시시킨 존 응기라케드(팔라우의 다른 정치인)이 총기 테러를 방조시킨 죄로는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아직까지 그를 쏘고 간 사람은 잡지 못하였다.
[1] 이름에서 알 수 있다시피 일본계 혼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