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6-08 02:01:31

피바디상

피바디상
Peabody Award
파일:B7E9D027-77C1-4CA8-B9B3-51D1B50AE551.gif
<colbgcolor=#000> 국가
[[미국|]][[틀:국기|]][[틀:국기|]]
주최 미국 방송 협회
조지아 대학교
첫 시상년도 1941년 3월 29일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 개요2. 상세3. 주요 수상자
3.1. 1940년대3.2. 1950년대3.3. 1960년대3.4. 1970년대3.5. 1980년대3.6. 1990년대3.7. 2000년대3.8. 2010년대3.9. 2020년대

[clearfix]

1. 개요

피바디상은 1939년 거부 조지 포스터 피바디의 기부로 만들어졌으며 미국방송협회(NAB)와 조지아 대학교가 수여하는 방송계 최고의 권위있는 상의 하나로 꼽힌다. 방송계의 퓰리처상으로 불리기도 한다.

2. 상세

피바디상은 1941년 창설되었다. 라디오, 텔레비전 그리고 케이블을 포함한 전자 미디어 상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둔 개인에게 주어진다. 미국 내 방송계에서는 최고 권위 있는 상으로 평가받으며, 방송 텔레비전 분야의 퓰리처상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 상은 1940년대 미국의 거부였던 조지 포스터 피바디의 기부로 인해 생겼다. 매해 국제대회의 형식으로 시상 활동이 이루어진다. 출품 장르는 뉴스, 오락, 어린이, 교육, 다큐멘터리 등 총 7개 분야이다. 이 상은 기업의 영상 콘텐츠에도 문호를 개방하고 있다. 심사는 조지아 대학의 관리 하에 16명의 전문가 패널이 매년 봄 그해의 수상자를 선정한다.

초기에 이 상은 라디오 부문만 시상했다. 1948년부터 텔레비전도 포함됐다. 1990년대에 이르러 인터넷을 비롯한 다양한 전자 미디어에도 문호를 개방했다. 이 상은 단지 상업적 성공을 거둔 성과보다는 프로그램과 콘텐츠의 우수한 질을 더 높이 평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매해 약 1000건 이상의 후보작들에 대한 심사가 이루어지며, 심사는 약 30여명의 위원회 인력들이 맡는다. 최종 결정은 피바디 위원장이 선정한 16명의 패널들(교수, 미디어 업계 전문가들) 몫이다. 2011년과 2012년 선정위원으로는 뉴지엄(Newseum) 관장인 조 어쉘(Joe Urshchel), 영국필름협회 큐레이터인 스티브 브라이언트(Steve Bryant), 조지아대 흑인 1호 입학자면서 현직 언론인으로 일하는 찰레인 골트(Charlayne Gault), 펜실베니아대학의 석좌교수면서『9·11 이후의 저널리즘』을 쓴 바비 젤리저(Barbie Zelizer) 등이 있다. 수상자 선정에는 다수결 원칙이 적용된다. 심사위원의 임기는 보통 3년이다.

3. 주요 수상자

3.1. 1940년대

3.2. 1950년대

3.3. 1960년대

3.4. 1970년대

3.5. 1980년대

3.6. 1990년대

3.7. 2000년대

3.8. 2010년대

3.9. 2020년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