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馮恢생몰년도 미상
서진의 인물. 기주 거록군 사람. 풍원의 아들, 풍담, 풍숙의 형.
2. 생애
풍원이 작위를 풍숙에게 전해주고자 하는 뜻을 알고 풍원의 삼년상을 마치자 고향으로 돌아가 초막을 짓고 벙어리 행세를 하면서 말하지 못하는 척을 해서 풍숙이 작위를 이어받을 수 있게 했다.박사제주에 임명되었고 적영이 행실이 높고 세속을 초탈해 고대의 고결한 선비들의 공로와 업적을 이을 만하다고 칭찬하며 천거했는데, 최홍이 상소를 올리면서 풍회는 유학자의 도리를 돈독히 지키지 않아 학생들에게 번갈아 가며 곁에서 수발을 들게 했으며, 제후의 자리를 양보한 작고 사소한 선행은 있지만 또래 중에서 견줄 이가 없을 정도로 대단하다고 일컬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풍회를 과장되게 칭찬하는 적영이 명예만 탐하는 겉치레의 우두머리라며 지목해 적영을 파면하도록 했으며, 적영이 파면되어 천거가 되자 풍회는 관직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풍회는 뜻과 행실이 남들보다 뛰어나다고 해서 장화가 풍회를 산기시랑으로 삼으려 했는데, 장화가 풍회에 가기 전에 직접 그를 살펴보겠다면서 자신을 만나지 않는다면 가장 고결한 부류, 만나도 세상을 오만하게 본다면 그 다음, 평범하게 주인과 손님으로 예의를 차려 공경하게 대하면 속물일 것이라 했다.
장화가 도착하자 풍회는 매우 공손하게 대접했으며, 이로 인해 당시 사람들이 풍회를 과소평가하고 깎아내리게 되었다. 이 일로 풍담이 장화에게 원한을 품고 그를 모함해 유주로 좌천되게 했다.
진서 풍담전에 따르면 그는 본래 열전이 있었지만 정작 진서 전체에는 열전이 존재하지 않기에 편집 과정에서 열전을 빼먹은 사례 중 하나이며, 이는 후대의 학자인 전대흔 등이 진서를 비판하는 근거 중 하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