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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일랜드출신의 신부이자 독립운동가이다.2. 생애
아일랜드 콜롬반 외방선교회 소속의 천주교 신부로 1933년 10월 내한했다. 중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면 동양에서의 천주교 포교는 불가능할 것이며, 일본이 진다면 한국은 일본의 압박으로부터 벗어나고, 동양은 평화를 얻을거라고 생각했었다.1939년 가을부터 1941년 9월 사이에 여러 차례 교인들에게 당시 언론의 중일전쟁 관련 허위보도를 비판하였다. 일본군은 물자가 부족해 장기전에서 결국 패배할 거라는 등 일본의 패배를 예견하며 교인들에게 독립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주었다.
1939년 4월 목포천주교회에서 열린 전라남도 천주교 선교사 집회에서 “일본 신문에 의하면 일본군은 창사까지 진격하고 있다고 발표하고 있으나, 상하이의 라디오에서는 창사 전투에서 일본의 패전을 보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일본의 신문 보도는 허위이다”라고 중일전쟁 관련 허위보도를 비판하였다. 10월경 제주에 사는 청년 신도인 허봉학에게 “이번 중국사변에서 일본도 많은 군대를 상실해 특별지원병이라는 명목으로 한국인을 군인으로 보충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1941년 8월 자신의 집에 놀러온 초등학생에게 “우리 천주님은 천황보다 위대하다. 진무 천황은 처를 두 사람이나 두고 있었다”고 일왕을 비난했다. 9월 14일 허봉학이 자기 집 벽에 걸어둔 이른바 ‘황실 사진’을 설명하자 그에게 “너도 쇼와 천황이 되려는가?” 하고 야유하였다. 이 일로 그는 재판을 받을 때 불경죄가 추가됐다.
1941년 12월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어 1942년 10월 광주지방법원에서 ‘육군형법 및 해군형법 위반 및 불경죄’로 징역 2년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1999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