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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벨 네드베드/클럽 경력/유벤투스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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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벨 네드베드
2001-2009
파일:FW5Qa2LWAAAY5ow.jpg
▲ 2001년 계약 당시
소속팀 <colbgcolor=#ffffff,#191919>유벤투스 FC (세리에 A)
등번호 11
기록
파일:세리에 A 로고.svg
214경기
40득점 53도움
파일:세리에 B 로고.svg
33경기
11득점 9도움
파일:UEFA 챔피언스 리그 로고(가로형 화이트).svg
55경기
12득점 12도움
파일:코파 이탈리아.png
22경기
2득점 3도움
파일:Supercoppa_logo.png
3경기
합산 성적
327경기
65득점 77도움
1. 개요2. 이적3. 2001-02 시즌4. 2002-03 시즌5. 2003-04 시즌6. 2004-05 시즌7. 2005-06 시즌8. 2006-07 시즌9. 2007-08 시즌10. 2008-09 시즌
10.1. 은퇴

[clearfix]

1. 개요

파벨 네드베드유벤투스 FC 경력을 소개하는 문서.

2. 이적

하지만 라치오의 재정난으로 인해 라치오를 떠나는데, 2001-02 시즌을 앞두고 팀의 에이스였던 지네딘 지단이 팀을 떠나자 다급해진 유벤투스는 그의 대체자로 네드베드를 SS 라치오에서 모셔오는 데 성공한다.[1]

3. 2001-02 시즌

그도 과연 사람인지라 팀을 옮긴 직후는 제법 부진한 모습을 보였었고, 그냥 우주괴수 그 자체였던 지단의 향수를 그리워한 사람들은 네드베드가 잠시 부진하자 신랄하게 까기에 이른다.[2] 그러나 잠시 숨고르기를 마친 후 곧이어 지단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자신만의 플레이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유벤투스가 3시즌만에 스쿠데토를 되찾는데 공헌하며 자신의 영입이 성공적인 영입임을 알렸다.

2001-02 시즌: 43경기(선발 42경기) 4골 15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세리에 A 32 32 0 4 11
챔피언스 리그 7 7 0 0 2
코파 이탈리아 4 3 1 0 2
<rowcolor=#fff> 합계 43 42 1 4 15

4. 2002-03 시즌

유벤투스로 이적 후 맞이한 두번째 시즌에는 네드베드는 더욱 더 팀의 핵심 선수가 되었다. 세리에 A 2연패에 공헌했고, 2002-03 시즌 때 유벤투스를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까지 이끌었다.
파일:external/m.cdn.blog.hu/nedved.jpg
하지만 4강전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멋진 중거리골을 넣었지만, 경고 누적으로 결승전에 출전하지 못했고, 유벤투스는 결승 승부차기에서 AC 밀란에게 패했다. 네드베드는 이 활약으로 2002-03 시즌 세리에 A 올해의 선수와 UEFA 올해의 미드필더, 그리고 2003년 월드 사커 올해의 선수발롱도르를 수상한다.[3]
파일:NDVDBLD.jpg

2002-03 시즌: 46경기(선발 43경기) 14골 11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세리에 A 29 27 2 9 10
챔피언스 리그 15 15 0 5 1
코파 이탈리아 1 0 1 0 0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1 1 0 0 0
<rowcolor=#fff> 합계 46 43 3 14 11

5. 2003-04 시즌

지난 시즌의 충격이 컸던 영향인지 팀이 전체적으로 부진하며 리그 3위, 코파 이탈리아에서도 친정팀이었던 라치오에게 패배해 준우승을 기록, 챔피언스리그는 16강에서 데포르티보에게 패배를 당하며 실망스러운 시즌이었다.

2003-04 시즌: 41경기(선발 37경기) 8골 10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세리에 A 30 28 2 6 8
챔피언스 리그 6 6 0 2 2
코파 이탈리아 4 2 2 0 0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1 1 0 0 0
<rowcolor=#fff> 합계 41 37 4 8 10

6. 2004-05 시즌

04-05 시즌 유벤투스를 이끌었던 리피가 떠나고 새로 카펠로가 부임했다. 네드베드는 여전히 팀의 핵심으로 활약했으나 겨울에 당한 무릎 부상과 머리 부상으로 두달 가량을 부상으로 빠졌는데 이때 동안 네드베드는 마음 고생을 심하게 했으며 진지하게 은퇴를 고려할정도 였으나 마음을 다잡고 재활에 전념하여 복귀 후에 다시 좋은 활약을 보였고 팀은 AC 밀란과 치열하게 우승 경쟁을 하다 결국 리그 우승을 달성해냈으나 칼초폴리사건이 터진 후에 이 시즌의 리그 우승은 박탈을 당한다.

2004-05 시즌: 38경기(선발 38경기) 10골 6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세리에 A 27 27 0 7 5
챔피언스 리그 9 9 0 2 1
코파 이탈리아 1 1 0 0 0
챔피언스 리그 예선 1 1 0 1 0
<rowcolor=#fff> 합계 38 38 0 10 6

7. 2005-06 시즌

05-06 시즌 리그를 지배하며 압도적으로 리그 우승을 기록한것에 비해 챔피언스리그 에서는 막 유벤투스로 이적해온 비에이라의 친정팀 아스날을 만났는데 신예 세스크 파브레가스에게 호되게 당하며 8강에서 탈락했다. 거기에 칼초폴리로 인해 이 시즌도 우승자격을 박탈당하고 심지어 다음 시즌 세리에 B 강등 징계가 내려진다.

2005-06 시즌: 46경기(선발 42경기) 7골 14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세리에 A 33 31 2 5 9
챔피언스 리그 8 7 1 2 4
코파 이탈리아 4 3 1 0 1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1 1 0 0 0
<rowcolor=#fff> 합계 46 42 4 7 14

8. 2006-07 시즌

그 후 칼초폴리 사건으로 유벤투스가 우승 기록 박탈 및 2부 리그 강등이 확정되자 유벤투스의 전성기를 함께한 대부분의 동료들[4]이 팀을 떠났다. 확고부동한 주전이었던 네드베드에게도 역시 수많은 빅 클럽들의 오퍼가 따랐다. 그 때, 이 사람은...
나는 녹색 잔디만 있다면 세리에 A든 B든 상관없다. 이제부터 세리에 B는 나의 챔피언스리그가 될 것이다.
나는 유벤투스의 팬들이 준 사랑에 보답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내겐 팀 내 최연장자로서 어린 선수들에게 경험을 전수해줄 의무가 있다.
유벤투스는 항상 최고의 자리에 있어야 하고, 그걸 돕는 것이 내가 할 일이며, 내가 유벤투스에 있어야 할 이유다.
라는 폭풍간지의 명언을 날려주며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 잔루이지 부폰, 다비드 트레제게 등과 함께 유벤투스에 잔류했다. 게다가 떠나려는 동료들을 설득까지 하는 모습까지 보이며[5] 충성심의 화신, 멘탈甲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2006-07 시즌: 36경기(선발 36경기) 12골 9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세리에 B 33 33 0 11 9
코파 이탈리아 3 3 0 1 0
<rowcolor=#fff> 합계 36 36 0 12 9

9. 2007-08 시즌

팀을 한 시즌 만에 다시 1부로 승격시킨 후 여전히 팀의 좌측 윙어 주전으로 나서며 새로 부임한 라니에리 감독과 함께 세리에 A를 3위로 마무리하며 바로 팀을 다시금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시킨다.

2007-08 시즌: 33경기(선발 30경기) 3골 4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세리에 A 31 28 3 2 4
코파 이탈리아 2 2 0 1 0
<rowcolor=#fff> 합계 33 30 3 3 4

10. 2008-09 시즌

08-09 시즌 네드베드도 신체 능력이 조금씩 떨어지는 시기의 나이로 접어들어가고 있었는데 여전히 네드베드는 팀의 주전으로 활약했다. 하지만 시즌 절반이 넘어가는 시점 네드베드는 이번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겠다고 선언 한다.
{{{#fff 네드베드의 은퇴 발표
{{{#!wiki style="margin: -0px -7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 시즌이 끝나면 은퇴하겠습니다. 은퇴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첼시와의 패배 때문이 아니며, 여전히 우리가 좋은 움직임을 보여주었다고 믿고 싶습니다. 항상 축구에 모든 것을 바쳤으며, 체력, 정신적인 부문에 있어서 매우 지쳤기에, 이제 제가 할 일은 끝마쳤다고 생각합니다. 가족과 함께 크리스마스에 대해 얘기를 하고 있는데, 아내 이바나와 결정한 것입니다. 이제 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있고 싶어요. 많은 시간을 그러지 못했고, 이제는 그 시간이 온 것 같습니다.

복귀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토론을 하는 것은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매년, 챔피언쉽의 2년차로서, 항상 은퇴와 제 결정에 후회가 없다고 말했으며, 이제는 챔피언쉽이 끝나면 은퇴할 것입니다. 이제 저의 결정이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 ||

2008-09 시즌: 44경기(선발 38경기) 7골 8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세리에 A 32 28 4 7 6
챔피언스 리그 8 8 0 0 1
코파 이탈리아 3 1 2 0 0
챔피언스 리그 예선 1 1 0 0 1
<rowcolor=#fff> 합계 44 38 6 7 8

10.1. 은퇴

파일:do8fpodabdxzqsw4mc7s.webp
결국 네드베드는 본인의 마지막 경기에서 성대한 은퇴식을 치르며 축구 선수 인생에 마무리를 고했다. [6]


[1] 유벤투스는 이때 지단을 판매한 돈으로 라치오에서 네드베드를 사오고 파르마에서 잔루이지 부폰릴리앙 튀랑을 사왔다. 그리고 네드베드를 이적시킨 라치오는 발렌시아에서 가이스카 멘디에타를 영입했다.[2] "네드베드가 지단보다 나은 건 머리숱 뿐이다"라는 개드립까지 나왔었다.[3] 다만 해당 발롱도르는 말디니나 앙리가 더 적합한 수상자였다는 의견이 많을 정도로 논란이 컸다.#[4]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파트리크 비에라, 파비오 칸나바로, 릴리앙 튀랑, 잔루카 잠브로타, 에메르송 등.[5] 즐라탄의 자서전을 보면 새로 부임한 디디에 데샹 감독이 그를 설득하려 면담했을때 그에게 압박을 주려는 목적이었는지 이미 잔류를 선언한 네드베드도 같이 왔었다고 한다. 비록 즐라탄이 이미 떠나기로 마음먹은 상태라 별 효과는 없었지만.[6] 시즌 종료 후에 여러 클럽에서 네드베드에게 제안을 했는데 특히 인터 밀란의 무리뉴가 네드베드를 강력하게 설득하며 인테르로의 이적을 요구했다. 하지만 네드베드는 유벤투스와의 의리를 택하며 인테르로는 갈 수 없다고 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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