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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헨먼/테니스 성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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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96년2. 1997년3. 1998년4. 1999년5. 2000년6. 2001년7. 2002년8. 2003년9. 2004년10. 2005년~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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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96년

1993년 프로에 데뷔한 그는 선수생활 초반까지는 이렇다할 성적을 보여주지 못했다. 데뷔 2년차였던 1994년까지도 그는 주로 200~300위권에 머물렀고 96년이 돼서야 두 자리 랭킹에 진입하였다.

그러나 1996년 두자리 랭킹에 진입한 후부터 그의 기량은 봉인이 풀린듯 만개하기 시작하였고 1월 95위로 시작한 그의 랭킹은 최고 25위 그리고 연말랭킹 29위로 마무리 지었다. 또한 윔블던 8강에 진출하며 헨먼은 자국인 우승을 염원하는 영국인들의 자존심으로 발돋움하였다.

2. 1997년

1996년 12월~1997년 1월에 열린 도하오픈에서 준우승을 기록, 이어서 출전한 시드니 오픈서 개인 첫 타이틀을 획득하며 랭킹을 14위까지 끌어올렸으며 2월에는 앤트워프오픈 준우승을 기록하며 세계 랭킹을 유지하였다.

앤트워프오픈 이후 특별한 성적을 내지 못하던 와중 윔블던 4라운드에서 당시 세계 5위를 기록중이던 리차드 크라이첵을 꺾고 다시 한번 8강에 진출하였지만 8강전에서 한물갔다는 평가를 받던 미하엘 슈티히에게 3-0(3:6 2:6 4:6)으로 완패하며 아쉬운 모습을 보였다.

9월 US오픈에서도 2라운드 탈락하며 부진하던 중 타슈켄트오픈에서 우승하며 개인 두번째 타이틀을 획득한다. 잇달아 출전한 바젤 오픈과 비엔나 오픈에서 4강에 진출하는 등 활약했다. 또한 비엔나 오픈 4강에서는 US오픈에서 준우승을 한 영국 선수 그렉 루세드스키[1]와의 승부로 영국인들을 들뜨게 만들기도 하였다. 또한 ATP 월드투어 파이널[2]에 참가하였다. 24위로 시작하였지만 14위까지 올랐었으며 최종적으로 17위로 마무리 지었다.

3. 1998년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도하오픈과 시드니 오픈에 참가하였으나 도하오픈은 8강, 시드니 오픈은 준우승에 그치며 랭킹이 19위로 2계단 내려갔다. 또한 1월초에 참가한 호주오픈을 시작으로 2월말에 열린 앤트워프 오픈까지 단 1승도 거두지 못하며 21위까지 내려갔으나 런던오픈 8강, 마이애미 오픈 4강, 도쿄오픈 8강 진출등의 쾌거를 이룩하며 랭킹을 15위까지 끌어올린다.

이후 클레이 코트에서 진행되던 경기에서는 별 활약을 하지 못했지만, 6월 참가한 퀸즈클럽오픈에서는 8강, 그리고 윔블던에서는 4강에 진출하며 커리어하이 랭킹을 13위까지 끌어올렸고 그 다음주에는 한 계단 더 올라간 12위 8월에는 TOP10에 안착한다. 윔블던 이후 참가한 LA오픈에서 안드레 애거시에게 패하며 준우승을 하였으며 케나다 오픈에서는 패트릭 래프터에게 패하며 4강서 탈락한다.

US오픈 4라운드 진출 이후 참가한 타쉬켄트오픈에서 예브게니 카펠니코프에게 2-0(7-5 6-4)승리를 거두며 개인 3번째 타이틀을 획득하였고 바젤 오픈에서는 안드레 애거시를 3-1(6-4 6-3 3-6 6-4)로 꺾고 개인 4번째 타이틀을 획득하며 9위에 안착하였다. 10월 참가한 스톡홀름 오픈에서 4강에 진출하였고 ATP 월드투어 파이널에서는 4강에 진출하며 최종적으로 세계 랭킹 7위로 1998년을 마무리한다.

1998년은 팀 헨먼을 비롯하여 많은 영국인들에게 잊을 수 없는 한 해이다. 팀 헨먼이 이뤄낸 윔블던 4강 진출을 1973년 영국의 테니스 선수 로저 테일러의 진출 이후 무려 25년만의 기록이였고, 같은 영국 선수 그렉 루세드스키 또한 기량을 만개하며, 단 8명에게만 허용되는 ATP투어 챔피언십에 영국 선수가 무려 2명이나 참가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1936년 프레드 페리(선수)의 우승 이후 62년간 부재중인 영국인의 윔블던 우승자의 희망이 보였던 해이기도 하다.

4. 1999년

호주 오픈에 앞서 출전한 도하 오픈에서 결승에 진출했으나 당시 세계 124위였던 라이너 슈틀러에게 패하며 준우승하였다. 이어 참가한 호주 오픈에서는 3라운드에서 마르크 로셋에게 패하며 지난 해보다 1승 부족한 3라운드 탈락하였다. 2월에는 로트르담 오픈에 참가하여 다시 결승에 진출하였으나 예브게니 카펠니코프에게 2-0으로 패하며 다시 준우승하였다.

이후 롤랑가로스까지 8강 이상의 성적은 없었으며, 롤랑가로스 3라운드 탈락이후 참가한 퀸즈클럽 오픈에서 결승에 진출하였다. 그러나 결승 상대는 미국의 테니스 황제 피트 샘프라스였고 샘프라스에게 패하며 올해만 3번째 준우승 컵을 들어올린다. 그러나 지난해에 이어 이번에도 윔블던 4강에 진출하는데에 성공하고 한자리 수 랭킹을 유지한다.

아쉽게도 윔블던 이후 US오픈까지 결승 진출은 없었고 바젤 오픈에 참가하였으나 풀세트 접전 끝에 패하며 4번째 준우승 컵을 얻게 된다. 그렇게 별다른 활약없이 세계 10위로 1999년을 마무리한다.

5. 2000년

2000년 준수한 스타트를 끊었다. 1월 호주오픈에서는 개인 최고 타이 기록인 4라운드에 진출했으며, 2월 네덜란드에서 열린 로테르담 오픈 준우승, 3월 열린 스코츠데일 오픈 준우승을 기록하였다. 그러나 정말 여기까지만이 준수한 성적이였고 6월말 열린 윔블던까지 그나마 마이애미 오픈 8강전을 제외하고는 마땅한 성적을 내지 못하였다.

윔블던에서도 지난해 4강진출을 유지하지 못하고 4라운드에서 호주의 테니스 선수인 마크 필리포시스[3]과 5세트 접전끝에 패배하며 10위에서 시작했던 순위는 17위까지 떨어지게 된다.

그러나 8월 신시내티 마스터스 준우승, 인디아나 폴리스 오픈, 홍콩오픈, 바젤 오픈에서 4강 진출을 꽤하며 상승세를 그렸고 비엔나 오픈과 브리튼 오픈에서 우승하며 2000년을 최종 10위로 마무리하게 된다. 여담으로 브리튼 오픈 4강에서는 세계 랭킹 99위의 이형택과 만났고 (6-2 6-1)로 완승을 거두었다.

6. 2001년

2001년 지난해와 다를 거 없이 준수한 스타트를 끊었다. 호주 오픈 전초전인 애들레이드 4강, 호주오픈 4라운드 진출 그리고 2월 초에 열린 코펜하겐 오픈에서 우승하였다.

3월 인디언웰스 마스터스에서 3회전 진출하며 세계 랭킹 9위에 잠시 올랐지만 6월초 진행된 퀸즈클럽 오픈까지 결승진출을 커녕 4강 조차도 진출하지 못하는 부진에 빠졌다. 그러나 퀸즈 클럽오픈 준우승, 윔블던 4강진출을 기록하며 여전히 잔디코트에서는 강한 면모를 보였고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신시내티 마스터스에서는 준결승 진출, 세계 1위인 구스타부 쿠에르텡에 아쉽게 패하며 4강 진출에 만족한다.

이 이후로는 훗날 바젤오픈 10회 우승을 기록할 바젤오픈 최강자 로저 페더러를 바젤오픈 결승에서 꺾은 것을 제외하면 특별한 성적은 없었고 지난 해보다 한계단 오른 9위로 2001년을 마무리한다.

7. 2002년

호주 오픈 전초전인 에들레이드 오픈에서 호주의 테니스 스타인 마크 필리포시스[4]를 꺾고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이어 출전한 호주오픈에서는 커리어 하이 기록인 4라운드에 진출하였으나, 4라운드에서는 스웨덴의 테니스 스타 요나스 비요크만에게 패하였다. 여담으로 3라운드에선 자국 라이벌인 그렉 루세드스키를 3-1(6-4, 6-3, 1-6, 6-3)으로 꺾었다.

2월 로테르담 오픈에선 결승까지 4명의 선수를 상대로 단 1세트만을 내주며 강력한 우승 후보로 언급되었으나 디펜딩 쳄피언인 니콜라 에스퀴데[5]에게 아쉽게 역전패 당하며 준우승하였다.

인디언웰스 마스터스에서 결승에 진출하였다. 그러나 당시 세계 1위를 기록중이던 레이튼 휴이트에게 0:2(1-6, 2-6)으로 완패하였다.

이후 클레이 시즌에는 몬테카를로 마스터스 4강에 진출한 것을 제외하면 큰 이슈는 없었다.

롤랑가로스 2라운드 탈락 이후 열린 잔디 시즌에서는 강한 모습[6]을 보여주었다.
윔블던에 앞서 참가한 퀸즈 클럽 오픈에서 레이튼 휴이트에게 패하며 준우승 하였다. 이후 윔블던에서도 4강 진출에 성공하였는데 이번에도 레이튼 휴이트의 벽을 넘지 못하고 3:0으로 패배했다. 윔블던 종료 후 ATP 세계 랭킹 4위로 오르며 커리어 하이 랭킹을 달성한다.

그러나 이후 US오픈을 포함한 남은 대회에서는 딱히 특별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세계 랭킹 8위로 2002년을 마무리한다.

2002년 성적은 69경기 출전 50승 19패, 승률 72.5% 타이틀 2개 획득이다.

8. 2003년

2003년 부상으로 인해 시즌을 늦게 시작하였다.

지난 해 준우승한 로테르담 오픈에 출전하여 1라운드 패배를 하였고 잔디 시즌 이전까지의 성적은 6승 8패, 8위로 시작한 세계 랭킹은 26위까지 내려갔다.

그나마 지난 해 준우승한 퀸즈 클럽 오픈에서는 4강 진출, 윔블던은 8강에 진출하며 잔디 강자의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이어 출전한 워싱턴 오픈에서 파라돈 스리차판, 앤디 로딕, 페르난도 곤잘레스 등의 쟁쟁한 선수들을 꺾고 개인 통산 10번째 타이틀을 획득하였다.

이를 시작으로 다시 대영제국 테니스 스타의 모습을 보이는 듯 했으나 파리 마스터스 이전까지 비엔나 오픈 4강 진출을 제외하면 정말 마땅한 성적을 내지 못했고, 세계 랭킹 역시 30위권에 머문다.

그러나 연말 파리 오픈 1라운드에서 니콜라이 다비덴코, 2라운드에서 세바스티앙 그로장, 3라운드에서 구스타보 쿠에르텡, 8강에서 로저 페더러, 4강에서 앤디 로딕이라는 미친 라인업을 뚫고 결승까지 진출하였다. 결승전에서는 비교적 쉬운 상대인 루마니아의 안드레이 파벨을 3:0으로 누르고 커리어 첫 마스터스 우승이자 본인의 커리어 마지막 우승을 기록했다.

헨먼의 파리 마스터스 우승을 논하면 그야 말로 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워싱턴에서 타이틀을 획득하였고 이 대회 이전까지 25승 17패 (승률 : 59.5%)로 제법 준수한 성적을 보여주기는 하였으나 1라운드 상대 니콜라이 다비덴코는 2000년대 초 러시아의 테니스 스타 마라트 사핀을 이을 유망주였고 2라운드 상대 세바스티앙 그로장 역시 2001년 파리 마스터스 우승을 기록한 프랑스의 테니스 스타였다. 3라운드 상대 구스타보 쿠에르텡은 물론 2003년 초부터 은퇴때까지 하락세를 보였으나 그럼에도 세계 1위를 기록한 선수였고, 8강 상대 로저 페더러는 그때까지 71승 승률 81.6% 타이틀 6개를 획득하며 세계 3위에 올라있는 그야말로 초 전성기를 보내던 선수였다.[7] 4강 상대는 2003년 연말 1위를 장식한 로딕이였으며, 결승 상대였던 안드레이 파벨은 비교적 쉬운 상대로 기재되어있지만, 결승 진출 전까지 만난 상대들이 페더러, 로딕, 쿠에르텡과 같은 넘버1 선수들이라 그렇지 파벨 역시 2001년 케나다 마스터스에서 우승한 경험이 있는 베테랑 선수였다. 정말 극한의 미친 라인업은 고사하고 이들을 상대로 본인의 영리한 플레이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우승이였다고 판단된다.

파리 마스터스 우승 이후 세계 랭킹은 31위에서 15위로 상승하였으며 2003년을 15위로 마무리한다.

9. 2004년

인디언 웰스 마스터스에서 다시 한 번 결승에 올랐으나 이번엔 로저 페더러에게 패배한다.

전성기때도 3라운드 이상을 진출 못하며 부진한 대회였던 프랑스 오픈에서 30세의 나이에 커리어 하이 기록인 4강을 진출했다.

윔블던에서는 마리오 안치치에게 8강전에서 패배하였으나 US 오픈에서도 4강을 진출하며 커리어 하이를 기록함과 동시에 제 2의 전성기를 보내게 된다. 4강전에서는 이번에도 페더러에게 패했다.

10. 2005년~은퇴

2005년 이후로는 눈에 띄는 성적을 내지 못했다. 그나마 2006년에 도쿄 오픈에 결승에 오른 것 정도. 이후 2007년에 은퇴하였다.

공교롭게도 1990년대 중후반 ~ 2000년대 초 함께 영국 테니스를 이끌었던 그렉 루세드스키도 비슷한 시기 부진하기 시작하였고, 훗날 테니스 빅4를 이루어낸 앤디 머리와 적절한 세대 교체가 이루어졌다.

통산 커리어는 496승 274패, 투어급 결승 진출 28회 11회 우승, 그랜드슬램 4강 진출 6회, 마스터스 우승1회, 준우승 3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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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97년 US오픈 준우승, 윔블던 8강등의 성적을 기록하며 세계 4위까지 올랐던 선수이지만 1997년을 제외하고는 독보적인 활약은 보이지 못했고 20~40위권에 머물렀다. 통산 타이틀은 15개이며 US오픈과 인디언웰스 오픈서 준우승을 기록하였다.[2]ATP 파이널스[3] 세계랭킹 최고 8위까지 올랐던 실력자였으며 US오픈, 윔블던 준우승과 인디언웰스 마스터스 우승 1회를 포함하여 22번의 결승진출, 11번의 싱글타이틀을 획득하였다.[4] 1999년 US오픈 준우승을 기록하며 커리어 하이 랭킹 8위를 달성하였으며, 2003년에는 윔블던 준우승을 기록하였고, 커리어 통산 결승 진출 22회, 트로피 11개를 들어올린 호주의 테니스 스타이다.[5] 프랑스의 테니스 선수이며 2000년 커리어 하이 랭킹 17위를 달성하였다. 1998년 호주 오픈에서 4강에 진출한 경험이 있으며, 투어급 결승 진출 6회, 타이틀 4개를 얻었으며 2001년, 2002년 로테르담 오픈에서 2년 연속 우승하였다. 여담으로 2001년에는 스위스의 테니스 유망주이자 20여년 간 프로 테니스를 지배할 로저 페더러를 상대로 우승하였다.[6] 2002년 그의 잔디 시즌 성적은 9승 2패, 투어급 준우승1회이다.[7] 물론 페더러를 이긴데에는 1세트 타이브레이크 6-5, 페더러 어드벤티지 상황에서 헨만이 영리한 플레이를 선보였고 이로 인해 맨탈을 잡지 못한 페더러가 자멸한 것도 있다. 실제 헨만의 영리한 위너 이후 페더러는 페더러 답지 않게 라켓을 던지는 모습을 보였고, 이후 2세트에 많은 범실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