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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시리아 제국의 왕.2. 상세
기원전 1114년부터 기원전 1076년까지 아시리아를 통치하며 '중아시리아 제국'의 전성기를 이끌었고, 그 업적은 후대 아시리아 왕들에게 모범이 되었다. 특히 그는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광대한 영토를 정복하고 효율적인 통치 체계를 구축하여 아시리아를 근동의 강자로 부상시켰다.그의 치세는 끊임없는 정복 전쟁으로 점철된다. 즉위 초기부터 북쪽의 나이리 땅, 즉 우라르투 지역으로 원정을 떠나 60개에 달하는 부족을 정복하고 그들의 영토를 아시리아의 영향권 아래에 두었다. 이 원정에서 그는 반 호수 남쪽 산악 지대를 침입하고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말라티아의 항복을 받아내는 등 맹활약했다. 세 번째 원정에서는 티그리스강의 수원지까지 진격하여 아시리아의 세력권을 확장했다. 이처럼 북방 원정을 통해 아시리아의 국경을 안정시키고 새로운 자원과 인력을 확보하는 데 주력했다.
또한 아나톨리아 동부의 무슈키족(프리기아족)과도 격렬한 전투를 벌였다. 이들은 아시리아의 서쪽 국경을 위협하는 세력으로, 티글라트 필레세르 1세는 여러 차례 원정을 감행하여 이들을 제압하고 아시리아의 영향력을 지중해 연안까지 확대하고자 노력했다. 이 과정에서 시리아와 페니키아의 도시 국가들에게도 조공을 받아냈고, 이는 아시리아의 경제적 번영에도 크게 기여했다. 그의 업적은 단순히 영토 확장에 그치지 않고, 이 지역을 장악하여 무역로를 확보하고 아시리아의 위상을 드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남쪽으로는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바빌로니아의 카시트 왕조를 상대로도 승리를 거두었다. 특히 바빌론을 함락시키고 카시트 왕 카슈틸리아슈 4세를 아시리아로 끌고 가는 등 압도적인 군사력을 과시했다. 비록 바빌로니아 전역을 완전히 점령하지는 못했지만, 메소포타미아의 패권을 아시리아가 쥐게 되었음을 대내외에 천명하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바빌론 함락 시 신전을 약탈한 행위가 신성모독으로 여겨져 많은 이들의 원망을 샀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티글라트 필레세르 1세는 단순한 정복 군주를 넘어선 통치자였다. 그는 아시리아 제국의 행정 체계를 정비하고 도로망을 구축하여 피정복지를 효율적으로 통치하고자 노력했다. 또한 아시리아의 수도 아슈르를 비롯한 주요 도시에 신전과 공공건물을 재건하고 문화 예술을 장려하여 아시리아 문명의 발전에 기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