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타마피메이아 Toyotamaphimeia | |
학명 | Toyotamaphimeia Aoki, 1983 |
분류 | |
계 | 동물계 |
문 | 척삭동물문(Chordata) |
미분류 | 석형류(Sauropsida) |
목 | 악어목(Crocodilia) |
과 | 가비알과(Gavialidae) |
아과 | 가비알아과(Gavialinae) |
속 | †토요타마피메이아속(Toyotamaphimeia) |
[[생물 분류 단계#s-3.9|{{{#000 종}}}]] | |
†토요타마피메이아 마치카넨시스(T. machikanensis)모식종 †토요타마피메이아 타이와니쿠스(T. taiwanicus) |
일본 오사카대학 종합학술박물관(大阪大学総合学術博物館)에 전시된 골격 화석의 레플리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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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신생대 플라이스토세 중기(약 80~30만년 전)에 일본과 대만에 살았던 가비알아과 악어의 일종이다.2. 연구사
복원도 |
1964년 일본 오사카부 도요나카시의 오사카대학 이학부(理學部) 건물 공사현장에서 아랫턱과 왼쪽 갈비뼈 일부, 다리뼈와 꼬리뼈 일부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전신 골격이 온전하게 보존된 화석이 발견되면서 알려졌는데, 이는 일본에서 악어의 것임이 확실한 골격 화석이 발견된 최초의 사례였다.[2] 이후 1999년에 오사카부 키시와다시에서 발견된 화석이 한 때 이 악어의 것으로 비정되기도 했지만, 현재는 비록 공식적인 속명이 부여되지는 않았지만 별도의 속으로 분류되는 추세다. 대신 1936년에 대만 타이난시 쭤전구(左鎭區)에서 보고된 화석[3]의 이빨 형태가 토요타마피메이아의 특징과 일치한다는 이유로 이 녀석의 일종이라고 주장되었다. 이후 1972년에 학계에 말레이가비알의 것으로 소개되었던 대만의 화석이 전술한 1936년의 화석과 함께 2023년에 토요타마피메이아의 새로운 종으로 인정되었다.
1965년 학계에 처음 보고될 당시에는 두개골 형태에서 유사점이 확인된다는 이유로 말레이가비알의 일종으로 분류되었다. 지금과 같은 속명을 얻게 된 것은 그로부터 18년 뒤의 일로, 턱 근육이 붙었을 관절골 후돌기의 형태로 보건대 말레이가비알보다는 오히려 크로커다일과 악어들에 더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는 주장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2006년 홋카이도대학 종합박물관의 당시 부교수였던 고바야시 요시쓰구 교수가 이끄는 공동연구학술팀이 다시금 이 녀석이 현생 말레이가비알과 가까운 관계에 있다고 주장한 논문이 학계에서 받아들졌고, 그 덕에 현재는 말레이가비알아과를 구성하는 독자적인 속으로 분류되는 상태다.
3. 특징
크기 |
화석이 발견된 지층을 분석한 결과 해수는 물론 온난습윤한 기후의 담수에서 발견되는 규조의 존재가 확인되었는데, 이 때문에 학자들은 이 악어가 강어귀(하구)나 석호 같은 기수역에서 살았거나 아예 담수 지역에서 살던 악어가 죽은 뒤 떠내려와 해성층에서 화석화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악어 치곤 상당히 북쪽의 고위도 지역에서 서식했는데, 당시 해당 지역의 기후는 현재와 다를 것 없이 온대기후였으며, 겨울에는 온도가 상당히 떨어졌을 것으로 추정되기에 이런 환경에서 생존했던 토요타마피메이아는 악어치곤 추위에 매우 강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정도로 추운 지방에서 발견되는 현생 악어는 미시시피악어나 양쯔강악어 등의 앨리게이터뿐인데 이들은 악어들 중 추위에 가장 강하다.[6] 다만 플라이스토세에 여러 차례 찾아왔던 빙하기에는 아무리 추위에 강한 악어라도 버틸 재간이 없었을 것이기 때문에, 빙하기가 찾아오면 일본 열도 최남단으로 몰렸다가, 간빙기가 오면 다시 북쪽으로 늘어나는 것을 반복했을 것이다. 게다가 소금기가 있는 물에서 활동이 가능했음을 감안하면 빙하기에는 아예 바다를 건너서 남쪽으로 거취를 옮겼다가 간빙기에 일본에 다시 진출했을 가능성도 있다. 허나 이런 식으로 빙하기를 여러 차례 거치며 개체군이 늘었다 줄었다 하는 것이 최종적으로 악영향을 끼쳐서 결국 멸종한 것으로 보인다.
한때 말레이가비알의 일종으로 여겨질만큼 가비알류 악어들 특유의 길고 가는 두개골을 가졌고, 비록 아랫턱의 앞부분이 소실되었기 때문에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윗턱 앞쪽에 난 이빨이 가는 원뿔형으로 물고기 사냥에 안성맞춤이었음을 고려하면 아마 어식성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다만 당초 가장 크다고 알려졌던 앞에서 7번째 이빨보다 뒤쪽의 이빨들이 더 굵고 튼튼했음이 밝혀지고, 이빨과 이빨 간의 사이가 좁은 형태여서 먹이를 씹어 부수기에 적합했다는 분석이 제기되면서 물고기보다 더 큰 육상 포유동물 등을 사냥했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사실 현생 말레이가비알도 4 m를 넘는 개체들은 사람보다 큰 육상동물을 사냥하는 것이 가능한데, 토요타마피메이아는 덩치까지 매우 컸기 때문에 상당히 커다란 먹이를 노릴 수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여담으로 모식표본으로 지정된 개체는 살아있었을 때 꽤나 거친 삶을 살았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 악어의 화석에서 다양한 부상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정강뼈와 종아리뼈는 한 차례 골절상을 입었던 것으로 보이며, 비늘에는 두어 개의 구멍이 있었는데, 구멍의 크기가 자신의 이빨 크기와 거의 일치하는 것으로 미루어보건대 이러한 부상은 대부분 동종 간의 영역 다툼이나 번식기에 수컷끼리 경쟁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골절된 다리뼈가 다소 어긋난 형태로나마 다시 붙는 등 부상이 회복된 흔적이 나타났다는 점, 현생 악어들도 회복력이 빠른 편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여기저기 상당한 부상을 입고도 어찌어찌 살아남긴 했던 모양이다.
[1] 천황 가문의 시조라고 하는 진무 덴노에게는 할머니인 동시에 큰이모인 여신이다. 원래 이 여신은 진무 덴노의 할아버지인 호오리노미코토(火遠理命)와의 사이에서 우가야후키아에즈노미코토(鵜茅不合葺命)를 낳았는데, 출산 장면을 엿보지 말라고 당부했음에도 호오리가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그 금기를 깨버린 탓에 아이와 남편을 버려두고 친정으로 돌아가버렸다. 이 때문에 그녀의 여동생인 다마요리히메(玉依姫)가 우가야후키아에즈를 양육하게 되었는데, 무슨 영문인지는 몰라도 이후 우가야후키아에즈가 다마요리히메와 혼인하면서 족보가 이렇게 꼬여버린 것.[2] 이보다 앞서 지금의 기타큐슈시 와카마츠구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악어의 것으로 추정되는 화석이 발견되었다는 보고가 있긴 했지만, 이후 이 화석은 돌고래의 일종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기 때문에 논외.[3] 당초 말레이가비알의 것으로 분류되었던 화석으로, 발굴 후 와세다대학의 아이즈 야이치(會津八一) 기념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었다가 1945년 도쿄 대공습으로 소실되었다고 알려졌었다. 이후 박물관 수장고에서 두개골 일부가 재발견되었는데, 공습 당시 발생한 열기에 녹아서 눌어붙은 것으로 보이는 유리 조각이 확인된 덕에 해당 표본임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4] 간과하기 쉽지만 이는 매우 거대한 사이즈다. 유사한 형태의 친척인 말레이가비알은 현생 악어들 중 두개골이 가장 긴 편인데, 최대 길이가 84 cm다.[5] 처음 모식종이 보고되었을 당시에는 몸길이가 8미터로 추정되었지만, 이는 불완전한 꼬리 표본의 전체 길이가 4미터였을 것이라는 추측을 바탕으로 하였기에 정확하지 않다.[6] 미시시피악어같은 경우에는 수면이 얼어붙을 정도의 저온에서도 생존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