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coma Narrows Bridge
1. 개요
이 붕괴 사건은 아서 C. 클라크의 ‘낙원의 샘’에 일정 부분 모티브로 사용되었다.
2. 붕괴
미국 워싱턴 주 타코마 시[1]에서 현수교가 유행하던 1930년대에 당시 최고의 교량 설계자로 알려진 레온 모이쉐프(Leon Moisseiff)에 의해 설계되었고, 1938년 착공되어 1940년 7월에 개통되었다. 그 뒤 별 거 아닌 바람에도 큰 흔들림을 계속 보이더니 고작 개통 넉 달만인 11월 7일 오전 11시에 결국 붕괴되었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전혀 없었고, 사고 직전 다리를 마지막으로 통과한 지역 일간지 편집자 레너드 코츠워스(Leonard Cotsworth, 1895~1956)의 코카 스파니엘 한 마리[2]가 유일하게 목숨을 잃었다. 그가 다리에 진입할 당시에 이미 정상 주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진동이 심한 상태였고, 결국 운전을 포기하고 차에서 빠져나왔는데 다리가 구불텅거리며 얼굴까지 치고 오는지라 500m 가량을 거의 기어오다시피 해야 했다고.
붕괴 이전부터 출렁이는 다리 모습을 대학 연구팀이 카메라로 촬영했고, 붕괴되는 상황도 타코마 시내의 카메라 가게 주인인 버니 엘리엇이 소유한 카메라에 담기면서, 흔들림과 붕괴 모습은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3. 붕괴 원인
타코마 다리 하면 일반적으로 공진 현상으로 인한 구조물 붕괴의 예로 잘못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는 공력탄성적인 플러터(aeroelastic flutter)가 원인이다. 바람에 의해 한쪽이 약간 들리면 중력에 의해 다시 떨어지는데, 이번엔 너무 떨어져서 반대쪽이 바람+중력에 의해 떨어지고를 반복하다 구조물에 축적된 저사이클 피로(low cycle fatigue)로 인해 파괴된 것이다. 예를 들자면 고속으로 나는 전투기의 양 날개가 바람에 의해서 떨리는 것과 같거나, 종이를 선풍기에 수직으로 가져다 대면 떨리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또한 껌 종이를 수직으로 두고 바람을 불어 소리를 내는 것도 이 원리이다.영문 위키백과#는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카르만 보텍스에 의한 공진설을 부정하고 있다. 결론부를 요약하자면
그간 바람의 스트로홀 수(Strouhal number)가 다리의 고유 진동수과 비슷해서 공진과 그에 따른 와류 진동을 일으켰던 것으로 추측되어 왔다. 그러나 타코마 다리의 경우에는 이것이 원인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 대학 교수이자 붕괴 원인의 조사자 중 한명인 프리드릭 버트 파큐하슨(Frederick Burt Farquharson, 1895~1970)에 의하면, 바람은 68km/h[3]의 일정한 속도로 불고 있었고 파괴를 일으킬 진동수는 0.2 Hz였다. 이 진동수는 구조물 자체만의 고유진동(natural mode)과도 맞지 않았고, 다리에서 비유선형 물체의 와류 흘림(blunt-body vortex shedding)을 일으킬 진동수도 아니었다. 따라서 와류 흘림은 붕괴의 원인이 아니다.
(중략)
어쩌다가 공진이 원인이라고 잘못 알려졌는지 그 유래는 알려져 있지 않다. 관련 사항으로, 리 에드슨(Lee Edson)이라는 사람이 유체 역학의 대가인 테오도르 폰 카르만[4]의 전기를 썼는데, 그 책에서 "카르만 보텍스가 원인이다(The culprit in the Tacoma disaster was the Karman vortex Street.)"라는 언급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카르만이 참여했던 진상 조사단에서는 공진이 원인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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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가 공진이 원인이라고 잘못 알려졌는지 그 유래는 알려져 있지 않다. 관련 사항으로, 리 에드슨(Lee Edson)이라는 사람이 유체 역학의 대가인 테오도르 폰 카르만[4]의 전기를 썼는데, 그 책에서 "카르만 보텍스가 원인이다(The culprit in the Tacoma disaster was the Karman vortex Street.)"라는 언급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카르만이 참여했던 진상 조사단에서는 공진이 원인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고하고 있다.
관련 내용은 논문 Green, D., & Unruh, W. G. (2006). The failure of the Tacoma Bridge: A physical model. American journal of physics, 74(8), 706-716.에서도 다시 찾을 수 있다.
유튜브에 카툰 비슷하게 만든 설명 동영상이 올라와 있다.
3.1. 근본 원인: 설계 결함
설계 당시 레온 모이쉐프(Leon Moisseiff)는 1872년 라트비아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민와서 겨우 29살의 나이로 뉴욕의 맨해튼교도 설계한 건축업계의 유대인 인재 중 하나였다. 그는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면서 현수교의 다리 부분을 얇고 가볍게 만들어도 충분한 강도를 얻을 수 있으면서 돈도 아낄 수 있다고 보고, 타코마 다리를 얇고 가벼운 형태로 하되, 강한 바람에 충분히 견딜 수 있을 정도의 배려 역시 충분히 하는 형태로 설계를 했다. 헌데 문제는 바람 자체의 힘이 아니라 바람이 만들어내는 진동이었다.이전부터도 이 다리는 가볍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작은 바람에도 크게 흔들렸지만, 평소 상황에서는 다리의 고유 진동수와 바람에 의해 만들어지는 진동의 진동수가 다르고 진동 자체도 감쇠진동이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사고 당일에 불던 약 47mph(≒ 21m/s ≒ 75.6km/h)의 바람이 다리에 진동의 형태로 계속해서 공급하는 에너지가 자체 감쇠로 인해 사라지는 에너지보다 컸기 때문에 다리가 버틸 수 있는 이상의 진동 에너지가 계속 쌓이게 되어 무너진 것이다. 이런 바람의 흐름이 원인이 되는 공기역학적인 부분은 당시 토목건축에선 미지의 영역이었기에 이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었다.
만약 다리가 기존 현수교처럼 무겁고 두텁게 만들어졌다면 고유 진동수가 크기 때문에 저렇게 진동이 생긴다 해도 플러터가 일어나지 않고 에너지가 점차 감소하면서 말 그대로 진동으로 끝났겠지만, 얇고 가볍게 만들어진 타코마 다리는 상대적으로 낮은 고유 진동수 때문에 바람이 공급하는 진동 에너지를 적절히 외부로 배출하지 못하고 고스란히 다리 전체의 뒤틀림으로 만들어 갔고, 결국 계속된 뒤틀림은 다리 구조물의 한도를 훨씬 뛰어넘은 스트레스를 가했다. 결국 그로 인한 피로 파괴로 다리가 붕괴되고 만 것.
타코마 다리 붕괴 이후 토목건축에는 공기역학적인 문제에 대한 고려가 필수적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현수교 제작에 있어서도 타코마 다리 붕괴는 어느 정도 튼튼하게 만들어야 할지에 대한 예시가 되었다.
4. 붕괴 이후
설계자 모이쉐프는 타코마 다리 붕괴 건으로 인해 언론과 세간에서 크게 비난받았고 건축업계에서도 추방당해 여생을 가난하게 살다가 1943년 71세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개인적으로도 자기가 설계한 다리가 그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고, 그 사건이 상당히 자기 커리어에 오점은 물론이고 자신에게도 상당한 트라우마가 되었다고 한다.그 뒤 타코마 다리는 1950년에 새로 개통되어 현재까지도 잘 남아 있다. 2007년 7월에는 도로 확장 공사 겸 구대교 옆에 거의 비슷한 디자인의 새 다리를 건설하였고, 두 다리를 각각 편도 통행시켜 사실상 한 교량처럼 굴리고 있다.[5] 구대교는 내로우스 공항 방향으로만, 신대교는 중심가 방향으로만 통행시키고 있다.
구대교 구글 스트리트 뷰
당시 붕괴된 잔해는 현재 워싱턴 주립 박물관에 전시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