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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03 04:23:44

타케미나카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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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행적3. 분석

1. 개요

タケミナカタ(ミナカタトミ、タケミナカタトミ)

타케미나카타는 고사기에 등장하는 일본 신화의 군신이다. 스와 대사에서 모시는 최고위 신이며, 10세기 이후의 위작인 선대구사본기에는 겐고나카토노카미, 일본서기에는 미나카타토미노카미 등으로도 불린다. 고사기에 따르면 오오쿠니누시의 아들이다. 스와 대사에서 모시기에 스와신이라고도 불린다.

2. 행적

고사기에 따르면 아마테라스가 니니기의 천손강림 이전에 땅을 다스리던 이즈모의 오오쿠니누시에게서 지상의 통치권을 이양받기 위해 타케미카즈치를 내려보냈다. 오오쿠니누시는 자신의 두 아들인 타케미나카타와 코토시로누시(事代主神)에게 물어보았는데, 코토시로누시는 찬성했지만 타케미나카타는 반대하였다. 타케미나카타는 타케미카즈치에게 천 사람이 들어야 겨우 들 수 있을 만한 무거운 돌을 가리키며 힘겨루기를 벌여 패배하면 나라를 넘겨주는 것에 동의하겠다고 제안했고, 타케미카즈치가 이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타케미나카타가 타케미카즈치를 두려워하자 타케미카즈치는 타케미나카타의 손을 잡고는 마치 어린 갈대를 던져버리는 것마냥 던져버렸다. 이에 타케미나카타는 꽁지가 빠지게 도망갔는데, 얼마나 멀리 도망갔는지 스와 호수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결국 붙잡히자 지배권을 넘기는 것에 동의하고 니니기를 섬기기로 맹세했다. 반면 일본서기에는 타케미나카타가 등장하지 않으며, 오오쿠니누시는 코토시로누시의 말을 듣고 순순히 넘기는 것에서 끝이다. 이는 타케미카즈치를 씨족신으로 삼았던 나카토미 씨족의 입김이 들어간 왜곡일 가능성이 높다. 자세한 건 스와 대사 문서 참조.

한편 스와 지방에서 타케미나카타는 현지 신들을 정복하고 그 지방을 차지한 것으로 묘사된다. 스와 노부시게 상주문에 따르면 타케미나카타는 스와 지방 모리산에 내려와 원래 스와의 신이었던 모리야 대신(모리야 씨족의 씨족신으로 미샤구지님과 동일시된다.)과 싸워 이겨 그 지방을 차지한다. 이 전승은 현대 스와 대사에도 그대로 전해져 내려온다. 이외의 타케미나카타가 등장하는 다양한 지역 전승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전하는데, 에도 시대 이후에는 고사기가 시나노국에도 광범위하게 보급된 탓인지 이 시대 이후의 전승은 고사기와 비슷하게 스와 지방으로 도망쳐 미샤구지님과 싸운 것으로 변형된다. 메이지 시대에 작성된 모리야 씨족 가계도에도 이처럼 나와있다.

타케미나카타는 스와 대사의 대사직을 세습하는 가문이자 센고쿠 시대의 무가이기도 했던 스와 씨족의 씨족신으로서, 인근 시나노 지방 전역에 엄청난 영향력과 정통성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타케미나카타는 군신이기도 했기에 사무라이들에게도 타케미나카타와 스와 씨족은 신성하게 여겨졌다. 다만, 정작 무로마치 시대 이전의 스와씨 계보에는 타케미나카타가 등장하지 않는다...

타케미나카타가 매년 재앙을 일으켜 백성들을 괴롭히는 두꺼비신(蝦蟆神)을 물리치고 지역을 평안하게 했다는 전승이 전해내려온다.

타케미나카타가 군신의 성격을 가지게 된 것은 겐페이 전쟁 시대 이후의 일이며, 그 이전에는 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스와 지방의 뱀 신앙은 정말로 유구해서, 무려 고훈 시대인 5세기 초반의 것으로 뱀 모양의 검인 사행검(蛇行劍)이 발견되는 등, 본래 타케미나카타 신앙은 지역 토착 뱀 신앙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다 겐페이 전쟁 시기부터 군신으로서 신앙되어, 진구 황후의 삼한정벌에 아마테라스에 의해 파견되어 협력했다는 전설이 생겨날 정도였다. 게다가 현지 호족들이 타이라와 겐지 중 어느쪽에 설까 고민하다 타케미나카타의 조언을 받아 겐지 쪽으로 가담했다는 전승이 나오는 등, 신격이 이전과는 확연히 변화하게 되었다.

3. 분석

고사기의 기록만 보면 타케미나카타는 전형적인 이즈모계 쿠니츠카미처럼 보이지만, 정작 이즈모국 풍토기를 비롯해 현지의 기록에는 타케미나카타가 일절 등장하지 않는다. 게다가 앞서 말했듯 일본서기의 국토 양위 신화에도 등장하지 않으며 현지의 전승에도 원래는 도망쳐서 스와 호수로 도달하긴 커녕 하늘로부터 스와 지방으로 내려와 현지신을 물리치고 정복한 것이기에 현재는 이즈모계 신이 아니라고 보는 견해가 통설이다. 고사기의 국위선양신화에 타케미나카타가 삽입된 이유에 대해 여러 견해가 있는데, 야마토 중앙 정권에 대항하기 위한 상징으로서 삽입되었을 것이라는 설, 오히려 타케미나카타가 패배하는 내용을 넣음으로서 야마토 정권의 지방 지배를 정당화한다는 설, 그저 스와 지방의 오래된 토착신으로 어쩌다 편입되었을 뿐이라는 설, 고사기의 국위선양 신화가 이즈모 이외의 다른 지역의 국위선양신화가 합쳐져 형성되었고 그 과정에서 스와 지방의 신으로편입되었다는 설 등등 정말 갖가지 견해가 난무한다. 이외에도 타케미나카타가 하늘에서 강림했다는 현지 전설에 주목해 타케미타카타를 오히려 야마토 중앙의 신으로 파악하여 스와 지방의 사람들을 복종시키기 위해 일부러 타케미나카타를 삽입했다는 설, 심지어 타케미나카타를 모노노베 씨족과 연관지어 해석한 설도 있으며, 고사기에 나타나는 지리 관념에서 스와 지방을 최동단으로 여겼음이 드러남에 주목해 이 기사가 7세기 후반에 성립된 것으로 파악한 가설도 있다. 또 타케미나카타가 모리야 대신(미샤구지님)을 이겼다는 지역 전설과 타케미카즈치가 타케미나카타를 이겼다는 고사기 기사 사이의 연관성에 주목해 스와 토착신을 기기신화에 끌어들이는 과정에서 창조된 신일 뿐이라는 견해도 존재한다.

그것과 별개로, 타케미나카타와 타케미카즈치의 겨루기를 스모의 원형을 반영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견해가 있다.

한편 고사기의 기록과는 별도로, 타케미나카타가 모리야 대신을 물리쳤다는 지역 전설을 고고학과 연결지어 역사적 사실을 반영한 것으로 파악하는 연구가 오래전부터 진행되어왔다. 모리야 대신을 씨족신으로 모시는 모리야 씨족이 스와 지방의 토착 씨족으로 보아 고훈시대 중기인 5세기 이전부터 축조되어 6세기 후반 외부세력의 유입으로 맥이 끊기기 이전까지 지속된 재지계 고분군을 모리야 씨족으로, 6세기 후반 이후 그 자리를 대체한 외래계 고분군을 타케미나카타를 상징하는 외부 씨족으로 보아 재지계 모리야 씨족과 외래계 씨족(아마도 야마토 정권과 밀접하게 연관된 호족)의 대결과 모리야 씨족의 쇠퇴를 반영한다는 학설이다. 이 학설은 금방 통설의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고, 이 신화가 역사적 사실을 반영한 것이라는 학설은 거의 상식이 되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에 반기를 드는 학설들이 나타났는데, 우선 모리야 씨족을 6세기 이전의 토착 씨족으로 파악한 근거가 거의 없으며 모리야 씨족은 오히려 외래 씨족인 모노노베 씨족의 방계로 파악할 수도 있다는 점, 타케미나카타가 인격신으로서의 지위를 갖게 된 것이 헤이안 시대 극말기 이후부터이므로 타케미나카타가 인격신으로 나타난 이 신화를 고고학과 연관지어 해석하려는 시도가 무리하다는 점 등을 들어 이 신화가 기록된 스와 상주문이 중세 일본에 널리 유포되었던 쇼토쿠 태자 관련 정미의 난 전설에 영향을 받아 편찬된 것이라는 설이 제기된 바 있다. 이외에는, 타케미나카타가 강림할 때 방울, 말안장, 말재갈 등을 가지고 내려와 문명을 전해준 것처럼 묘사된다는 점에서 니니기 천손강림 신화의 번안판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이전에는 6세기 후반 이후 축조되는 요코하마식 고분에 말 관련 마구가 풍부하게 출토된다는 점을 들어 타케미나카타가 이주민을 상징하는 것이라는 해석의 결정적인 근거로 여겨졌는데, 그게 아니라 그냥 천손강림 신화 스와 버전 아니냐는 것이다.

군신 이외에는 바람의 신이나 수렵, 농경의 신으로 여겨졌다. 특히 후자의 경우 수렵이 위주였던 스와 지방에 농경이 보급됨에 따라 변하는 생활 양식에 따라 자연스레 농경신으로서의 신격이 나타났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