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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아누 호날두|크리스티아누 호날두]]
1. 개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클럽 경력을 서술하는 문서다.2. 스포르팅 CP
호날두는 브라질 선수들의 기술을 보면서 따라하려고 노력했고, 그 덕분에 화려한 드리블 기술을 갖추게 됐다. 이에 호날두가 16세가 되자 당시 스포르팅 CP의 1군 감독이었던 라슬로 뵐뢰니 감독은 호날두의 드리블 능력을 높이사 1군으로 승격시켰다. 그리하여 호날두는 스포르팅의 U-16, U-17, U-18, 리저브, 그리고 1군 경기를 단일 시즌에 뛴 최초의 선수가 됐다. 참고로 이 시기에 훗날 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으로서 본인을 지도하기도 하는 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파울루 벤투와 함께 뛰기도 했다.[1]폭발적인 스피드와 드리블 능력을 갖춘 호날두는 많은 빅 클럽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특히 호날두는 본인의 1군 데뷔전인 2002년 10월 7일 모레이렌스 FC와의 프리메이라 리가 경기에서 2골을 넣어 팀의 3:0 완승을 이끌었는데, 이후 구단 관계자는 리버풀 FC와 FC 바르셀로나에 호날두를 추천하기도 했다.
31경기 5골 6도움 |
사실 A급 유망주임은 분명했지만 당시 포르투갈 리그에서 뛰던 호날두는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아르센 벵거도 맨유랑 비슷한 시기에 호날두를 영입하려고 노력했지만 스포르팅이 제시한 이적료 1224만 파운드(맨유가 지불한 이적료)는 비싸다고 생각했다.
여담으로 유벤투스 FC도 이때 마르셀로 살라스를 내주는 조건으로 호날두를 데려오기로 했고, 실제로 메디컬 테스트까지 받았다. 그러나 살라스가 갑자기 스포르팅으로 가는 것을 거절하였고 그 사이 이적료 1224만 파운드를 제시한 맨유가 호날두를 데려갔다.
2020년 9월 23일, 구단은 호날두를 구단 레전드로 인정하면서 팀 유스팀 이름을 호날두 아카데미로 변경하였다.[3]
3.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1기
<nopad> |
292경기 118골 53도움 |
참고하십시오. |
4. 레알 마드리드 CF
<nopad> | |
438경기 450득점 131도움 | |
참고하십시오. |
5. 유벤투스 FC
| |
134경기 101득점 20도움 | |
참고하십시오. |
6.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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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경기 27골 5도움 |
참고하십시오. |
7. 알 나스르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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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1] 물론 당시 호날두는 만 18세도 되지 않은 어린 유망주였고, 벤투는 은퇴를 고려해야 하는 30대 중반의 노장에 바로 직전까지만 해도 포르투갈 대표팀의 중심 멤버 중 한 명이었기 때문에 당시 기준으로 두 선수간의 위상의 차이는 상당했다. 실제로 벤투는 호날두가 이적한 바로 다음 시즌이 끝난 후 현역에서 은퇴했다. 물론 호날두의 커리어가 말엽에 접어든 현 시점에서는 평가가 완전히 반전되었다.[2] 당시 맨유 주전 우측 풀백이었던 게리 네빌은 부상으로 경기에 나서지 못하고 텔레비전으로 경기를 지켜봤는데, 존 오셔를 탈탈 터는 호날두의 모습을 보고 당시 팀 동료이기도 했던 동생 필 네빌에게 '저 친구 당장 영입해야 한다'는 문자를 보냈다는 일화가 있다.#[3]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