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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8 15:58:01

쿠도 마사토

일본의 前 축구선수
파일:테게바자로 미야자키 쿠도 마사토.jpg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쿠도 마사토
工藤 壮人 | Masato Kudo
출생 1990년 5월 6일
도쿄도 스기나미구[1]
사망 2022년 10월 21일 (향년 32세)
일본 미야자키현
국적
[[일본|]][[틀:국기|]][[틀:국기|]]
신체 177cm 72kg
주발 오른발
포지션 공격수[2]
소속 유스 가시와 레이솔 (2000~2008)
선수 가시와 레이솔 (2009~2015)
밴쿠버 화이트캡스 FC (2016)
산프레체 히로시마 (2017~2020)
레노파 야마구치 (2019 / 임대)
브리즈번 로어 FC (2020~2021)
테게바자로 미야자키 (2022)
국가대표 4경기 2골

1. 개요2. 생애3. 사망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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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전 축구선수이다. 선수 시절 포지션은 스트라이커.

2. 생애

3살 때 형의 영향을 받고 축구를 시작한 이후 초등학교 4학년 때 가시와 레이솔 유스에 입단해 9년간 국제 대회를 비롯해 제32회 유스 선수권 결승전까지 진출시키면서 대회 득점왕에 올랐다.

2009년에 성인 팀으로 올라갔으며 이듬해에는 U-21 국가대표에 발탁되어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기도 했다.

가시와 레이솔이 J1 리그로 승격한 2011년에는 시즌 초반 베테랑 선수들에게 빼앗겨 버렸지만 후반전부터 기회를 얻으며 J리그 팀 가운데 사상 최초로 J1에 승격한지 1년만에 우승으로 이끌었다.

2012년, U-23 대표에 뽑힌 이후 기회는 없었던데다 런던 올림픽에도 나가지 못했지만 세레소 오사카전에서 해트트릭을 달성하는 등 리그 커리아 하이 13득점을 올렸고, 천황배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활약을 내세웠다.

파일:2013 야마자키 나비스코컵 MVP 쿠도 마사토.jpg
2013년에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일본대표에 선발되어 동아시안컵 첫 우승에 기여했다. 그리고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와의 야마자키 나비스코컵 결승전에서 전반 종료 직전 선제 결승골을 넣어 팀을 우승시키며 MVP에 올랐고, 리그 전에서 누적 경고를 제외하고 모든 경기에 나서며 득점 랭킹 5위를 기록했다.

2014년, 우측 사이드로 뛸 기회가 많았기에 수비 부담이 늘어나 버리면서 전년보다 절반 이하로 내려간데다 시즌 막판 선발에 빠지기도 했지만 모든 경기에 출전한 공로를 인정받아 페어 플레이상을 수상했다.

2009년부터 2015년까지 가시와 레이솔에서 통산 262경기 92골 28도움을 기록하며 뛰어난 활약을 하였고 팀의 수많은 우승들을 이끌었다.

2016년에는 MLS의 밴쿠버 화이트캡스 FC로 이적했지만 시카고 파이어 FC전에서 상대 골키퍼와 교착 과정에서 턱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으며 2개월 동안 이탈하는 아픔을 겪었다.

2017년부터 다시 모국 일본으로 귀국함과 동시에 산프레체 히로시마로 이적했지만 출전 기회 부족과 성적 부진으로 실망감을 안겼다.

2019년에는 레노파 야마구치에서 임대로 뛴 뒤, 히로시마 복귀를 거절하고 오스트리아와 폴란드, 독일, 체코 등 여러 팀 입단을 시도해 보았지만 이르지 못하고 일본으로 돌아와 모교 닛타이 가시와고등학교 연습에 참가하기도 했다.

2020년 12월 10일, 마침내 호주 리그의 브리즈번 로어 FC에 입단했다. 그러나 입단 반년만에 14경기만 뛰고 구단과 상호 합의 하에 계약을 해지하면서 떠났다.

2022년에는 J3 리그의 테게바자로 미야자키에 입단했다.

3. 사망

2022년 10월 3일,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병원에서 검진을 받은 결과 수두증 진단을 받고 11일에 수술을 받았다. 이후 병세가 악화되어 집중 치료에만 전념하다가 21일 오후 2시 50분쯤 사망했다고 테게바자로 미야자키 구단측이 발표했다. 쿠도가 사망하면서 니무라 케이타 사장은 다음과 같이 부고를 남겼다.
私たちの大切な仲間である工藤壮人 が息を引き取りました。工藤選手を応援するサポーターや関係各所の皆様から、多くの励ましのメッセージをいただいたこと、クラブを代表し、御礼申し上げます。
工藤選手はJ1で活躍し、日本代表にも選ばれるなど、非常に実績がある選手です。それにも関わらず、驕りなどは一切なく、自分のことだけでなくチームメート、クラブ、そしてサポーターのことを大切にする素晴らしい姿勢の持ち主でした。クラブスローガン「真摯」をまさに体現してくれる存在でした。
そのような選手のあまりにも早い逝去は、無念で残念でなりません。
選手、スタッフ、クラブ一同はまだ気持ちの整理ができない状況もございますが、工藤選手が宮崎に、クラブに残してくれたものを大切に引き継ぎ、精進して参りたいと思います。そして、工藤選手が信頼してくれたクラブをより良いクラブにすることで、少しでも恩返しして参りたいと思っております。
工藤選手、テゲバジャーロ宮崎に来てくれて、力になってくれて、本当に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

우리들의 소중한 동료 쿠도 마사토가 숨을 거두었습니다. 쿠도 선수를 응원하시는 서포터와 모든 관계자들로부터 많은 격려 메시지를 주신 것에 대해 클럽을 대표해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쿠도 선수는 J1에서 활약하며 일본 대표에도 선발되는 등 상당히 실적이 있는 선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만함은 일절 없었고, 자신뿐만 아니라 팀원, 클럽, 그리고 서포터를 소중히 여기는 훌륭한 자세의 소유자였습니다. 클럽 슬로건인 '진지'를 바로 구현해 주는 존재였습니다.
너무 이르게 그런 선수가 서거한 것은 억울하고 안타깝습니다.
선수, 스태프, 클럽 여러분들은 아직 마음의 정리를 할 수 없는 상황도 있습니다만, 쿠도 선수가 미야자키라는 클럽에 남겨 준 것을 소중히 인계하며 나가고 싶습니다. 그리고 쿠도 선수가 믿고 의지해 주었던 클럽을 더 좋은 클럽으로 만들어 조금이나마 보답해 나가고 싶습니다.
쿠도 선수가 테게바자로 미야자키에 와서 힘이 되어줘서 정말 고마웠습니다.

파일:산프레체 히로시마 쿠도 마사토 현수막.jpg
파일:세레소 오사카 쿠도 마사토 현수막.jpg
쿠도가 사망한지 하루 뒤, 신국립 경기장에서 열린 산프레체 히로시마와 세레소 오사카의 YBC 르방컵 결승전에서 경기 전 묵념의 시간을 가졌고, 양 팀의 서포터들은 쿠도를 애도하기 위해 현수막을 내걸었다.[3] 이 날 경기는 생전 쿠도가 뛰었던 산프레체 히로시마가 2-1로 승리했다.

4. 여담


[1] 2살 때부터 아다치구에서 자랐다.[2] 스트라이커[3] 산프레체 히로시마는 "쿠도 마사토의 영혼은 우리와 영원히 함께", 세레소 오사카는 "우리도 쿠도 마사토를 잊지 않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