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1. 개요
갈리아족의 한 부류인 아트레바테스족의 족장인 동시에 브리타니아에서 상당한 세력을 가진 자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기원전 55년에 브리타니아에 상륙하자 사절단으로 파견되었으나 구금되었으며 브리튼에 상륙하여 원정을 하여 브리튼인들이 패배하자 브리튼족이 석방하여 돌아왔다.브리튼인들이 카이사르에게 복종을 맹세하게되자 아트레바테스족을 정복한 카이사르에게 브리타니아 원정의 공로에 대한 보답으로 지금의 프랑스 북부인 아트루아 지방 아트레바테스족의 족장으로 임명된다.
그러나 기원전 52년에 베르킨게토릭스가 갈리아의 민족주의를 부활시키고 갈리아 전역에 총봉기를 주도하자 카이사르를 배반하고 베르킨게토릭스에 호응하였으며 이를 탐지한 카이사르의 부사령관 티투스 라비에누스가 부하 대대장 가이우스 볼루세누스 콰드라투스[1]를 보내 그를 암살하게 했지만 콰드라투스가 콤미우스와 악수한 사이 콤미우스를 찔러죽이려던 백인대장의 칼이 빗나가 콤미우스는 머리에 상처만 입고 도주하였다.
이후 본격적으로 로마와 카이사르에 대해 반기를 들었으며 9월에 알레시아에서 아이두이족의 비리도마루스, 에포레도릭스, 아르베니족의 베르카시벨라우누스와 함께 사령관이 되어 카이사르가 이끄는 로마군에게 저항하였지만 패배한다.
기원전 51년에는 벨로바키족의 코레우스와 함께 수에시오네스족을 침공하려고 했으나 레미족에게 발각되었고 이들이 카이사르에게 즉시 보고한 결과 로마군, 레미족과 전쟁을 하게 되었는데 이 와중에 게르만에게서 500명의 기병을 지원받았으며 또한 레미족의 족장인 베르티스쿠스를 전사시키는 활약을 보인다.
그러나 로마군의 원군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군수물자와 사람들을 도시 밖으로 빼돌린 후에 로마군의 마초와 곡물의 수집이 예상되는 지역에 매복하였지만 로마군은 오히려 많은 군사들을 동원하여 마초와 곡물을 동원하였기 때문에 이 사실을 모르고 기습하였다가 패했다. 이때 자신을 암살하려 했던 가이우스 볼루세누스 콰드라투스와 일기토를 벌여 볼루세누스의 허벅지를 창으로 찔러 낙마시키고 도주했으며,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에게 편지를 보내 로마와 더이상 적대하지 않을테니 어떤 로마인도 자기 앞에 나타나지 않게 해달라고 했으며, 안토니우스는 그를 추격하는 것을 중단시켰다.
갈리아 전기에 따르면 그 후 브리타니아로 다시 건너가 한 부족의 왕이 되었다고 하며, 그 후의 행적은 알려지지 않는다. 로마와 적대하지 않기로 맹세한데로 조용히 살다가 세상을 떠난 것으로 보인다.
[1] 카이사르의 1차 브리타니아 침공 당시 선견 정찰대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