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즈키 가문|]] 와노쿠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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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군 코즈키 모모노스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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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즈키 가문의 문장 |
1. 개요
光月家[1]원피스에 등장하는 성씨.
대대로 와노쿠니의 석공 가문이었다. 포네그리프를 제작한 일족이며, 포네그리프를 읽는 방법도 대대로 전수되었다.
2. 역사
공백의 100년이 끝날 무렵인 약 800년 전, 파괴되지 않는 석비 포네그리프를 제작하고 쇄국을 단행했다.최소 100년 전부터 와노쿠니의 쇼군 가문이었다. 그런데 쇼군의 후계자가 도통 태어나지를 않아 대가 끊기면 쇼군의 지위는 다섯 다이묘 가문 중 하나에게 넘어갈 터였다. 때문에 쿠로즈미 가문의 다이묘는 코즈키 쇼군의 대가 끊길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차기 쇼군이 되기 위해 다른 다이묘들을 몰래 제거하기 시작했다.
81년 전, 기적적으로 쇼군의 늦둥이 아들 코즈키 스키야키가 태어나 즉시 후계자로 지명되었다. 한편 쿠로즈미 다이묘의 계획은 스키야키의 출생으로 단숨에 무너졌으며, 그동안의 악행도 낱낱이 밝혀져 쿠로즈미 다이묘는 할복하고 쿠로즈미 가문도 개역되었다.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81년 전과 59년 전 사이에 스키야키가 쇼군직을 물려받았다.
59년 전, 쇼군 스키야키의 아들 코즈키 오뎅이 태어났다.
30년 전, 오뎅은 와노쿠니에 잠시 머물렀던 흰 수염 해적단을 무작정 따라가 불법 출국하였다.
28년 전, 흰 수염 해적단의 해적선 모비 딕에서 오뎅의 아들 코즈키 모모노스케가 태어났다.
26년 전, 흰 수염 해적단의 해적선 모비 딕에서 오뎅의 딸 코즈키 히요리가 태어났다. 한편 와노쿠니에서는 스키야키가 복수의 칼을 갈던 쿠로즈미 가문의 계략으로 유폐되었다. 쿠로즈미 가문의 일원 쿠로즈미 히구라시는 복사복사 열매의 능력으로 스키야키를 사칭하고, 할복했던 쿠로즈미 다이묘의 손자 쿠로즈미 오로치를 부재중인 오뎅의 대행이라는 명분으로 임시 쇼군으로 임명했다. 쇼군직을 받은 오로치는 카이도의 백수 해적단을 와노쿠니로 불러들여 폭정으로 다스리기 시작했다.
25년 전, 오뎅이 귀국했다.
20년 전, 오뎅이 아홉 명의 심복을 데리고 오로치와 백수 해적단의 토벌을 꾀했으나 실패했다. 오뎅은 팽형을 선고받고 사망했다. 모모노스케는 시간시간 열매의 능력으로 20년 후의 미래로 이동했다.
와노쿠니 편 시점, 오니가시마 결전을 통해 밀짚모자 일당을 위시한 닌자 해적 밍크 사무라이 동맹이 오로치와 카이도를 무찔러 백수 해적단을 토벌하였다. 모모노스케가 쇼군직에 오름을 선언함으로써 코즈키 가문은 26년 만에 와노쿠니의 쇼군직을 수복하였다.
3. 계보
- 볼드체는 쇼군직을 재임한 인물.
코테츠[2] | |
- | |
스키야키의 아버지 | |
스키야키 | |
오뎅 (처: 토키) | |
모모노스케 | 히요리 |
[1] 한국어 정발판의 경우 코즈키 가문이 처음 언급된 816화에서는 '코게츠'라고 나왔다. '光月'을 그대로 독음으로 읽은 것으로 보이는데 오역이라는걸 깨달았는지 다음화인 817화부터는 '코즈키'로 정상적으로 수정되었다.[2] 텐구야마 히테츠가 코즈키 스키야키로 밝혀지면서 조상이라고 밝힌 코테츠도 코즈키 가문일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