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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11-13 22:07:10

카시벨라우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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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드 압 그리퍼드 마독 압 허웰린 오와인 글린두르 웨일스 공으로 계승
밑줄: 브리타니아 열왕사에 등장하는 전설 속의 왕이나 왕으로 서술된 실존인물
귀네드 국왕·웨일스인 웨일스 공 · 영국 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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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ad36><colcolor=#fff> 브리튼 제75대 브리튼인의 왕[1]
카시벨라우누스
Cassivellaunus
파일:카시벨라우누스.jpg
이름 카시벨라우누스
(Cassivellaunus)
출생 미상, 브리튼 섬
사망 미상, 브리튼 섬
직위 브리튼 연합군 사령관

1. 개요2. 행적3. 전설

[clearfix]

1. 개요

브리타니아 섬의 켈트족 장군.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브리타니아 침공에 맞서 항전한 인물이다.

2. 행적

템스 강 북쪽의 영토를 다스린 켈트 부족장으로, 기원전 54년 율리우스 카이사르브리타니아를 두 번째로 침략했을 때 브리튼 연합군 사령관으로서 맞섰다. 그가 이끈 부족의 이름은 《갈리아 전기》에 언급되지 않지만, 훗날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 1세의 치하에 들어간 템스 강 북쪽의 카투벨라우니족이 그와 관련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갈리아 전기》에 따르면, 그는 로마인들이 상륙하기 전 다른 브리튼 부족들과 전쟁을 벌여 언제나 승리했으며, 에식스를 지배하던 트리노반테스족의 왕 이마누에테우스(Imanuentius)를 전사시켰다고 한다. 이마누에테우스의 아들인 만두브라키우스(Mandubracius)는 갈리아로 도망쳤고, 카이사르에게 투항했다. 카이사르는 브리튼인이 카이사르에 대항하는 갈리아의 켈트족을 지원한 걸 응징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브리타니아 침공을 단행하기로 했다.

기원전 55년, 카이사르는 오늘날 켄트 지방의 도버에서 약 6마일 떨어진 곳에 상륙하여 2개 군단을 이끌고 브리타니아 남부의 켈트 부족들과 여러 차례 전투를 치러 승리했다. 그러나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아 기병대가 오지 못해 패주하는 적을 제대로 섬멸하지 못했고, 설상가상으로 폭풍으로 인해 여러 배가 파손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결국 카이사르는 배를 수리한 뒤 인질과 공물을 받아낸 후 갈리아로 돌아갔다. 그러나 카시벨라우누스는 인질을 보내라는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기원전 54년, 카이사르는 제2차 브리타니아 침공을 단행했다. 이번에는 일전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로 하고 5개 군단과 2,000명의 기병대를 이끌고 상륙했다. 카이사르가 별다른 저항없이 상륙한 후 템스 강으로 진군하자, 카시벨라우누스는 브리튼 부족 연합군의 사령관으로 추대되어 이에 항전했다. 그는 로마군과 전면전을 벌이는 건 자살 행위라 보고, 전차 부대를 활용해 진군하는 로마군 주변을 맴돌며 화살을 퍼붓다가 로마군의 기병대가 쫓아오면 잽싸게 후퇴한 뒤, 다시 행군하는 로마군을 공격하고 빠지는 게릴라 전술을 구사했다. 또한 식량을 마련하기 위해 주변 지역으로 흩어진 로마군 병사들을 습격하여 사상자를 늘렸다.

하지만 로마군은 적의 연이은 습격에 굴하지 않고 템스 강에 도달했다. 템스 강의 유일한 건널목엔 말뚝이 박혀서 바리케이드 역할을 하고 있었지만, 로마군은 끝내 이를 돌파하여 강을 건넜고, 이를 저지하려고 했던 브리튼군을 격파했다. 이에 카시벨라우누스는 대부분의 병력을 해산시키고 전차 부대만 남긴 뒤, 숲속으로 진입한 로마군을 상대로 게릴라 전술을 계속 이어나갔다. 지리를 잘 몰랐던 로마군은 전혀 예상하지 않은 곳에서 출몰해 습격했다가 빠져나가는 적에게 시달렸고, 이를 추격했던 기병대 다수가 매복에 걸려 죽거나 사로잡혔다.

카시벨라우누스의 게릴라 전술로 인해 손실이 갈수록 커지자, 카이사르는 이대로 끌려가기만 하면 답이 없다고 판단한 후 카시벨라우누스의 본거지를 공격하기로 했다. 마침 케니마니족, 세곤티아키족, 안칼리트족, 비브로키족, 카시족 등 5개 부족이 카이사르에게 귀순하면서, 카시벨라우누스의 거점 위치를 알려줬다. 그들은 지난날 카시벨라우누스에게 연전연패했던 전적이 있었기에, 카이사르의 힘을 빌려 그에게 복수하고 싶어했다. 이에 카이사르는 그들이 가르쳐준 곳으로 진군해 약탈과 방화를 자행했고, 뒤이어 카시벨라우누스의 요새를 포위했다.

카시벨라우누스는 싱테토릭스족, 카르빌리아족, 타시마구이족, 세고박스족에게 해안가에 있는 로마군 숙영지를 공격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들은 이에 따라 공격했지만, 그곳에 주둔하고 있었던 로마군에게 격퇴되었고, 지휘관 중 한 명인 루고토릭스가 생포되었다. 공격이 실패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영토가 파괴되자, 카시벨라우누스는 결국 카이사르에게 협상을 요청했다. 카이사르는 인질과 조공을 바치고, 만두브라키우스가 트리노반테스족의 부족장으로 복귀하는 걸 허용하며, 다시는 트리노반테스족과 싸우지 않기로 맹세하는 조건을 내걸었고, 카시벨라우누스는 이를 받아들였다. 카이사르는 이에 만족하고 갈리아로 돌아갔으며, 이후 카시벨라우누스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3. 전설

몬머스의 제프리가 쓴 브리타니아 열왕사에서 제75대 브리튼인의 왕으로 등장한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조공을 요청해 오자 브루투스 1세의 후손인 그는 브리튼이나 로마나 같은 트로이의 후예라며(...) 그럴 수 없다고 거절한다.


[1] 브리타니아 열왕사를 따른 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