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1-03-24 00:08:00

카사딘/배경

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카사딘

1. 장문 배경2. 이 사막이 인정하는 자는 누구인가?3. 구 배경

1. 장문 배경

카사딘은 원래 대사막을 오가는 상인 일행을 따라다니는 하찮은 떠돌이었다. 사나운 동물들이 귀중한 상품을 습격하지 않도록 관심을 끌고 그 대가로 푼돈을 벌었다. 하지만 그렇게 사막을 수없이 횡단하고 살아남으면서 차츰 미끼가 아닌 안내자 노릇을 하게 되었다.

“카스 사이 아 딘?”, 즉 “저 사막이 인정하는 자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외국인들이 어설픈 슈리마어로 발음한 “카사딘”은 그대로 그의 이름으로 굳어져 벨준의 뒷골목과 시장 바닥에서 통용되었다. 카사딘은 오랫동안 고향 땅 곳곳에 흩어진 고대 유적지를 탐험하면서 자신을 고용한 사람들이 엄청난 재물을 발견하게 해주었지만, 정작 자신이 진짜 보물을 찾은 것은 지리마 근처의 발굴 현장에서였다. 사막에 사는 어느 부족민 여성에게 첫눈에 반한 것이었다.

카사딘은 아내와 갓 태어난 을 데리고 남쪽으로 더 내려가 바위투성이 협곡에 자리한 조그마한 마을에 정착했다. 그는 안내 일 때문에 자주 집을 비워야 했고, 가끔은 먼 나라의 수집가에게 특별히 귀중한 유물을 찾아주고 돈을 벌기도 했다. 하지만 어디로 여행을 떠났든 간에 마을에 돌아오면 낯선 땅에서 겪은 흥미진진한 이야기보따리를 잔뜩 풀어놓았다.

어느 날, 상인들을 안내하여 머나먼 필트오버로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오아시스에서 가축들에게 물을 먹이던 카사딘은 잔뜩 겁에 질려 사막에서 도망쳐 나오는 생존자들을 만났다. 그들은 자기들 마을의 땅바닥이 갈라지더니 땅밑 세계가 순식간에 마을 전체를 삼켜버렸고 자신들은 간신히 목숨만 건져 도망쳤다는, 믿기 어려운 재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가족이 무사한지 걱정된 카사딘은 일행을 그대로 둔 채 미친 듯이 말을 몰아 집으로 향했다. 말이 지쳐 쓰러지기 직전에 바위투성이 협곡에 도착했지만, 마을이 있던 자리에는 음산한 분위기의 모래벌판과 돌무더기뿐이었다. 카사딘은 양손에서 피가 철철 흐를 때까지 잔해를 파헤치며 아내와 의 이름을 목이 터져라 불렀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며칠 후 카사딘과 함께 길을 떠났던 일행이 그를 따라 협곡에 도착했을 때, 그들이 발견한 것은 따갑게 내리꽂히는 햇빛을 그대로 받으며 넋 나간 채 멍하니 울고 있는 사내였다.

그들은 카사딘을 억지로 끌다시피 해서 지리마까지 데려갔지만, 그는 더 이상 다른 데로 가려 하지 않았다. 카사딘은 그 후 비탄에 잠겨 몇 년 동안이나 아무 일도 하지 않았으며, 구걸하는 부랑자 신세로 전락했다. 그러던 그에게 “예언자”에 대한 소문이 들려왔다.

말로 형언할 수 없이 공포스러운 존재들이 땅밑에 살고 있으니, 그들에게 제물을 바치라고 말한다는 예언자 이야기를 듣자 카사딘은 온몸이 얼어붙었다. 그는 옛날부터 전해져오는 이케시아 전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저주받은 장소가 어떤 운명을 맞이했는지도. 공허가 다시 한번 슈리마로 침입한 것이라면, 카사딘의 마을뿐 아니라 다른 수많은 마을을 집어삼킨 것도 공허의 짓이리라. 카사딘은 또한 알고 있었다. 공허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는 사실을.

그때 카사딘은 결심했다. 그 음험한 예언자를 처치하고 그자가 심연에서 끌어내는 힘의 원천을 제거하여 아내와 의 복수를 하겠다고. 카사딘은 아무리 위험한 곳에서도 안전하고 확고한 길을 찾아내는 일을 업으로 삼았던 사내였다. 그는 발로란 역사를 통틀어 가장 신비스럽고 난해한 무기를 입수하여 자운의 천재성으로 개조하고 아이오니아의 영혼 치유사의 축복을 받았다. 고대 유물을 연구하는 학자에서부터 흔해빠진 밀수업자에 이르기까지, 그는 도움이 될 만한 지인이라면 누구든 찾아다니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손에 넣었다. 카사딘의 요청을 받은 사람들은 그가 미쳐도 단단히 미쳤으며, 이 친구의 살아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의 우려에 카사딘은 고맙다고만 말하고 작별을 고했다. 그는 혈혈단신으로 공허에 맞설 작정이었다.

마지막 준비로 카사딘은 제국의 말년에 수많은 기만자를 처치한 것으로 악명을 떨친 “호로크의 황천의 검”을 훔쳤다. 카사딘은 그 검날에서 자신을 차가운 망각으로 끌어들이는 힘을 느꼈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이미 자신의 목숨 따위는 걱정하지 않은 지 오래였으며, 지금까지의 삶에서 더 이상 잃을 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순례자의 예복으로 위장하고 황무지를 찾아 걸음을 내디딘 지 십 년, 카사딘은 드디어 이케시아에 닿을 수 있었다. 그는 그 누구도 발을 들여놓지 않으려는 곳으로 들어가려 한다.

그리고 복수하고야 말 것이다. 자신의 목숨을 내던지는 한이 있더라도.

2. 이 사막이 인정하는 자는 누구인가?

파일:카사딘 소설.jpg

슈리마는 죽어가고 있다. 슈리마가 다시 일어설 일은 없으리라.

고향 땅의 깊은 곳에서 형언할 수 없는 끔찍한 공허가 퍼져 나와 모든 것을 집어삼킨다. 닿기만 해도 죽음이 느껴진다. 수없이 많은 생명이 그것에 목숨을 잃었으리라. 이곳에서 공허와 대적했던 이들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목숨을 내놓아야 했다.

끝을 알 수 없는 심연에서 홀로 길을 걸으며 투구의 정교한 렌즈 사이로 공허를 바라본다. 한번 본 것은 쉽게 기억을 떠나지 않으며 한번 알게 된 것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곳에선 얘기가 다르다. 이곳에 지긋지긋한 염증을 느낀다.

그저 걸어갈 뿐이다.

더 이상 발아래 땅도, 동굴 벽의 바위도 느껴지지 않는다. 저 깊은 곳에서 불어오는, 온몸의 감각을 마비시키는 끔찍한 바람 또한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감사함을 느낀다. 사막의 밤과는 비교할 수 없는 한기니까. 끝이 보이지 않는 사이 파라지 사막에 앉아 첫 번째 겨울밤을 보냈을 때도 그런 한기는 느껴보지 못했다. 공허의 한기. 단순히 고대인들이 인간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악의 근원이자 저승 세계로 일컬은 공허 말이다.

사실 이곳은 더욱 끔찍한 곳이다.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무언가 '잘못된' 부자연스러운 느낌이 들고 정신을 쇠약하게 만드는 날카로운 보랏빛이 머리를 욱신거리게 한다.

렌즈로도 꿰뚫어 볼 수 없는 그 어둠 속에서 녀석들이 다가온다.

세 놈. 네 놈. 아니 다섯인가. 정확한 숫자는 모르겠다. 이런 부류의 녀석들은 지금껏 수백 마리쯤 해치워왔다. 녀석들의 괴성이 어둠 속에서 메아리친다. 하지만 두려움은 없다. 네 놈들이 내 모든 것을 앗아갔으니까.

나의 아내. '빈시키'이자 모험을 좋아하는 나의 딸. 늘 그렇듯 싸움의 이유를 되뇌기 위해 사랑하는 이들의 이름을 외치고, 건틀릿을 들어 올린다.

광기에 사로잡힌 네 놈들이 이빨과 발톱을 세우고 덤벼든다고 해도 날 이길 수는 없다. 내가 네 놈들의 숨통을 끊고 심연으로 되돌려 보내거나, 네 놈들이 나를 다른 세계로 보내주겠지. '사랑하는 이들'을 다시 만날 수 있는 안식처로 말이다.

어느 쪽이든 내가 유리하구나. 아니, 너희 무한한 심연에서 온 '샤야틴' 족속은 절대 나를 이길 수 없다.

왼손에 움켜쥔 마법석의 이질적인 마력이 내 생명을 연장해주고 있다. 옛 이케시아의 불모지를 계속 헤쳐나갈 수 있도록 말이다. 내 육신과 영혼을 바쳐서라도 이 마력으로 추악한 네 놈들을 제압하리라. 갑자기 크기가 제일 작은 장신구 하나가 내 심장 박동에 맞춰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이 두려움의 박동은 삶이나 마법과 같은 긍정의 박동이 아닌 망각의 고동이리라. 분명히 느낄 수 있다.

물러서라, 괴물들아.

손목에서 황천의 검이 번쩍하고 뽑히며 네 놈들과 나 사이의 바람을 가른다.

그래, 그래. 이 검이 기억날 테지. 잊을 리가 없지.

조금 전에는 내 살점을 원하더니 이젠 너희가 몸을 사리는구나. 어쩔 줄을 몰라 주위만 둘러싸면서 말이지. 희미하게 빛나는 칼날 끝에서 눈길을 떼지 못할 거야. 그래. 이 검은 인간의 육신이 감당할 수 없는 무기라는 걸 알고 있겠지. 더 이상 인간이 아닌 자들이 교묘한 마법을 부려서 만들었던 무기지. 그자들이 누군지 기억날 거야. 그렇지?

괴성을 질러대면서 거친 땅에 발을 구르는구나. 네 놈들은 살아있는 모든 존재를 증오한다고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네 놈들은 증오가 무엇인지 모르니까.

증오란 너희가 세상에 들이닥쳤을 때 신성전사들의 심장에서 타오르던 끝없는 불길이다. 그들은 죽음을 예감했음에도 몇 번이고 네 놈들과 맞서 싸웠다. 증오란 그런 것이다.

그래. 이 검이 네 놈들을 기억하는구나. 너희의 숨통을 끊는 법도 말이야.

호로크란 인물이 있었다. 네 놈들이 섬기는 자들에게 최초로 엄청난 타격을 준 인물이지. 초월체 군단의 전지전능한 그는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호로크는 심연의 발견자이자 뒤를 쫓는 자이다. 바로 여기서 그가 네 놈들과 정면으로 맞서 싸웠지. 태양의 힘을 받을 수 없는 이 어둠 속에서 말이야. 호로크는 황천의 검으로 심연의 끔찍한 심장부까지 돌파한 자였다.

심연을 헤쳐나갈 방법을 알려준 것도 바로 그였지.

나는 슈리마의 초월체 영웅도, 폐허가 된 제국의 명예 전당에 오를 신성전사도 아니다. 딸을 잃은 비통한 아버지이자 사막의 자손인 한낱 인간일 뿐. 한 줌의 모래에서 왔으니 한 줌의 모래로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이르다. 나는 호로크의 뜻을 이어받아 그의 검이 내 손에 있는 한 해야 할 일을 할 것이다.

가장 가까운 놈이 덤벼들었다. 몸을 비틀자 녀석의 뿔과 날카로운 발톱이 옆구리를 스친다. 투구의 관을 통해 거친 입김이 새어 나온다. 순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내가 만든 조잡한 갑옷에 발목을 잡힌 꼴이다.

급히 황천의 검을 뽑아 들어, 목이라고 할 만한 부위를 노려 베어버린다.

녀석의 구불구불한 몸이 쓰러진다. 오른팔의 황천의 검이 더 많은 피를 원하고 있다. 혀의 뒷부분에선 신맛이 느껴진다. 비명이라도 지른 것처럼 말이다. 다음은 누구지? 어떤 놈이 덤빌 테냐?

슈리마 사막은 호로크를 인정한다. 그의 이름은 영원할 것이다. 폭군 네죽에게 배신당해 살해당했을 때도 그 누구도 호로크의 칼날 건틀릿을 차지하려 하지 않았다. 신성전사들이 쓰러진 한, 그들도 언젠간 공허 태생이 인간 세계를 다시 위협할 것을 부인하진 못하리라. 그 때문에 이 황천의 검이 세상에 필요한 것이다.

이곳은 나의 땅. 공포가 도사리는 이 땅에서 그런 일은 용납할 수 없다. 황천의 검을 들고 슈리마의 심연으로 향하리라. 이미 수십번도 더 해온 일이다.

운명이었나? 아니. 운명이란 고귀한 단어는 걸맞지 않다. 어쩐지 나는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이것이 어디에서 발견될지. 오래전 외지에서 온 보물 사냥꾼들을 사이 칼리크에 있는 호로크의 묘로 안내한 적이 있다. 당시 나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필트오버 금화만을 원했다. 기쁜 마음으로 수천 년 동안 봉인됐던 호로크의 묘를 열었지만, 황천의 검은 그들이 찾는 물건이 아니었다. 제법 값이 나갈 무기 정도로 여겼다.

그들 중 어떤 이는 나를 돈에 눈먼 자라고 했고, 어떤 이는 배신자라고 불렀다. 그날 이후 호로크의 묘가 공허의 존재에게 완전히 파괴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당시 보물 추적자들과 그들이 내게 쥐여준 돈이 없었더라면 그 검은 사라져 버렸을 것이다. 내 고향 사람들과 내 가족처럼.

결국 때가 되자 황천의 검은 내 손에 들어왔다.

'카스 사이 아 딘'. 이 사막이 인정하는 자는 누구인가?

이 사막은 네 놈들을 인정하지 않는다. 신과 인간의 고대 영토에서 길을 잃은 네 녀석들이 있을 곳이 아니다.

하지만 이 사막은 내 이름을 알고 있다. 그것이 바로 내 이름이기 때문이다.

난 단 한 번도 삶의 방향을 잃은 적이 없다. 내가 어디에 있으며, 얼마나 더 가야 이 모든 것이 끝날지 알고 있다. 내가 했던 일과 하지 못했던 일에 대해 속죄하며 살아갈 것이다.

내 삶이 다할 때까지 너희의 존재를 부정하리라.

3. 구 배경

세상과 차원 사이에도 공간이 존재한다. 혹자는 이런 공간을 외계 또는 미지의 공간이라 부른다. 하지만 이 공간의 본질을 아는 사람들은 이곳을 공허라 부른다. 이름과는 달리 공허는 정말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 아니다. 사실 이곳은 입에 담기조차 거북한 흉측하고 무시무시한 생명체들이 사는 곳이기 때문이다. 우연일까 필연일까? 사람들은 종종 공허를 발견하곤 했다. 미지의 신세계를 발견한 이들 중 대부분은 공허에서 벗어날 수 없었으며 공허의 힘을 찬미하게 되었다. 그러나 카사딘은 조금 달랐다.

카사딘은 금지된 지식을 탐구했다. 그는 자신이 찾아 헤매던 지식이 이 세상의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카사딘은 고대로부터 전해져 왔다는 책 한 권을 통해 잊혀진 왕국 이케시아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카사딘은 각고의 노력 끝에 책 속의 숨겨진 단서를 읽어냈고, 마침내 잊혀진 왕국 이케시아로 가는 길을 찾아낸 몇 안 되는 인간들 중 한 명이 되었다.

그는 몰락해 가는 거대한 도시에서 엄청난 비밀을 발견했다. 그 비밀은 그 자신에 관한 것이었다. 카사딘은 앞으로 자신에게 닥칠 '운명'과 '미래'를 두 눈으로 직접 목격했다. 형언할 수 없이 무섭고,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이었다. 카사딘은 공포에 질려 벌벌 떨었다. 저 자신의 미래가 그 누구에게도 발설할 수 없는 비밀이 되다니! 이케시아의 힘은 그를 영원히 집어삼킬 듯 했고 카사딘은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공허를 받아들였다.

카사딘은 더 이상 보통 인간이 아니었다. 공허는 이계의 추악한 욕망들을 카사딘의 정신 속에 섞어 놓았다. 그러나 카사딘은 초인적인 힘으로 추악한 욕망을 억눌렀으며 이계에서 탈출하였다. 카사딘이 인간 이상의 존재로 이 세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기적 같은 일이었다. 비록 이날 기억과 신체의 일부를 잃긴 했지만, 차원문을 긁어대며 이 세계로 넘어와 공포를 퍼붓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존재로부터 발로란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만은 분명히 간직하고 있었다. 이 세상엔 이미 초가스라는 이계의 혐오스러운 괴물이 돌아다니고 있다. 초가스처럼 '그들'도 불과 몇 발자국 밖까지 와 있다.

공허를 들여다보면 자신이 본 광경을 절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카사딘을 쳐다본다면 그는 이미 당신 옆에 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