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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16 18:28:22

카로 파리시안

파일:20140414091518_1DX_2344.jpg
이름 카라페트 파리샨
([ruby(Կարապետ, ruby=K a r a p e t)] [ruby(Փարիզյան, ruby=P a r i s y a n)])
국적
[[아르메니아|]][[틀:국기|]][[틀:국기|]] |
[[미국|]][[틀:국기|]][[틀:국기|]]
출생지 예레반, 예레반
거주지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
생년월일 1982년 8월 28일 ([age(1982-08-28)]세)
종합격투기 전적 37전 24승 12패 1무효
3KO, 11SUB, 10판정
7KO, 1SUB, 4판정
체격 178cm / 77kg[1] / 192cm
링네임 The Heat
주요 타이틀 Kage Kombat 12 웰터급 토너먼트 우승
Kage Kombat 14 웰터급 토너먼트 우승
WEC 3대 웰터급 챔피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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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르메니아계 미국 국적의 전 UFC 웰터급 종합격투기선수.

2. 전적

3. 커리어

3.1. UFC 이전

1999년 2월 KK 12에서 데뷔하여 12와 14 Kage Kombat 토너먼트에서 모두 우승을 차지한다. 데뷔 이래 6개의 경기를 모두 서브미션승으로 장식한 파리시안이었지만 RSF 웰터급 토너먼트 1차전에서 션 셔크에게 첫 패배를 당한다. 박빙의 접전에 이은 판정패였기에[2] 2차전이 열렸으나 여기서도 KO로 패하고 만다.

3.2. UFC

셔크전의 연패로 조금 주춤했으나 RSF와 KOTC에서 좋은 활약을 이어간 끝에 2003년 UFC에 입성했다.

3.2.1. vs 데이브 스트레서

2003년 9월 UFC 44에서 데이브 스트레서를 기무라로 꺾었다.

3.2.2. vs 조르주 생 피에르

UFC 2전째인 2004년 1월 UFC 46에서 갓 입성한 조르주 생 피에르를 만나 모든 면에서 압도당하며 만장일치로 판정패했다.

3.3. WEC

2004년 5월에는 WEC로 내려갔다.

3.3.1. vs 쇼니 카터

WEC 10에서 쇼니 카터에게 판정승을 거두고 WEC 웰터급 챔피언에 오른다.[3]

3.4. UFC

이후 UFC로 돌아왔다.

3.4.1. vs 닉 디아즈

UFC 49에서 닉 디아즈를 상대로 스플릿 판정승을 거둔다.

3.4.2. vs 크리스 라이틀

UFC 51에서 크리스 라이틀을 만장일치 판정승을 거두었다.

3.4.3. vs 맷 세라

2005년 6월에는 라이트급에서 올라온 맷 세라를 상대로 1라운드 기습적인 라이트를 허용하며 다운되는 등 위기에 몰리기도 했으나, 체격차를 살린 클린치로 대미지를 회복한 후 연달아 테이크다운을 성공시키며 파운딩과 엘보우를 선사한 끝에 승리를 거두었다.

3.4.4. vs 닉 톰슨

UFC 59에서 2라운드 TKO승을 거두었다.

3.4.5. vs 디에고 산체스

그러나 2006년 8월 UFC-FN 6에서 디에고 산체스를 만나 일진일퇴의 공방을 벌인 끝에 아쉬운 패배를 당했다. 두 선수는 스탠딩과 그라운드에서 타격과 테이크다운을 주고받으며 치열한 경기를 벌였으나 승자를 가리지 못한 채 승부는 판정으로 넘어갔고, 3라운드 막판 대공세를 펼친 산체스의 우세가 선언되었다. 톱 컨텐더로의 진입을 노리던 파리시안으로서는 뼈아픈 패배였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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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6. vs 드류 피켓

2006년 12월 UFN 7에서는 드류 피켓을 상대로 화끈한 유혈매치를 벌였다. 그라운드에서 팔꿈치로 컷을 주고받는 혈전을 벌였으나 승부는 스탠딩 잽싸움에서 갈렸다. 카로는 잽과 거리싸움에서 피켓을 압도했고 만장일치 판정승을 얻었다.

3.4.7. vs 조쉬 버크먼

UFC 71에서 만장일치 판정승을 거두었다.

3.4.8. vs 초난 료

UFC 78에서 만장일치 판전승을 거두었다.

3.4.9. vs 티아고 알베스

2008년 4월 UFC-FN 13에서 티아고 알베스에게 통한의 니킥을 허용하며 다시 한번 정상권의 문턱에서 주저앉아 버렸다. 이 즈음 파리시안이 공황장애를 겪고 있다는 말도 나오게 된다.

3.4.10. vs 김동현

2009년 1월, 거의 1년만에 출전한 UFC 94에서는 "스턴건" 김동현과 대결했다. 1라운드를 김동현의 레슬링에 밀려 헌납하지만 2라운드에 우세를 보였고 3라운드는 박빙인 가운데, 파리시안이 업킥 반칙을 범하게 된다. 호각이거나 김동현의 근소한 우세가 예상되는 판정이었으나 의외로 파리시안이 3라운드를 가져가며 스플릿 승리를 거둔다. 당연히 판정에 논란이 일 수밖에 없었는데, 보름 후 더욱 엄청난 일이 터지면서 묻혀버렸다.

파리시안의 약물반응 테스트에서 진통제 성분이 양성반응을 보인 것이다. 규정으로 금지된 약물이었기에 자격정지와 벌금을 물게 되었다.

3.4.11. vs 더스틴 헤이질럿 (불발)

이후 UFC 106에서 더스틴 헤이질럿과 경기가 잡혔는데, 자격증 재발급에 드는 돈이 없다며 그만 펑크를 내버렸고[5] UFC에서 방출되었다.

3.5. UFC 이후

2010년 7월 오스트레일리아의 Impact FC에서 1승을 추가했다.

3.6. UFC

2010년 11월 UFC 123에 복귀, 데이나 화이트로부터 '이것이 그의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다'라는 최후통첩을 받았다.

3.6.1. vs 데니스 홀먼

결사의 각오로 임한 데니스 홀먼과의 대결이었으나 1분만에 라이트를 얻어맞고 다운, 이어지는 파운딩에 TKO패를 당하고 말았다. 이 패배로 또 다시 UFC에서 퇴출됐다.

3.7. UFC 이후

UFC 퇴출 이후로는 중소단체에서 승패를 반복하고 있다. 라이언 포드, 조던 스미스, 존 건더슨 등의 선수들과 만나기도 했으나 모두 졌다. 포드와 스미스는 파리시안을 이긴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벨라토르의 스카웃을 받았는데, 바꿔 말하면 여기서 이겼으면 카로가 갔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존 건더슨 전 이후 Gladiator Challenge에서 암바로 2연승을 거둔 후 벨라토르에 스카웃되었으나 2013년 4월 4일 가진 벨라토르 데뷔전에서 같은 유도 베이스의 선수인 릭 혼에게 2라운드만에 KO패를 당하고 말았다. 이후에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진 못하였다.

4. 파이팅 스타일

9세부터 유도를 수련해 왔으며, 각종 주니어 대회를 휩쓸며 일찍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유도를 베이스로 한 그래플링은 웰터급 내에서도 정상급. 클린치에서의 상체싸움이 발군에 주짓수도 블랙벨트인 만큼 그라운드에서의 서브미션 능력도 뛰어나며, 레슬링도 수준급이다. 특히 유도의 허리후리기식 테이크다운은 MMA 전 체급을 통틀어 단연 최고. 레슬링이 받쳐 준다는 전제 하에서의 타격도 나쁘지 않고 무엇보다 체력이나, 멘탈이 매우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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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게 MMA 시합에서 나온다

단점이라면 이런 장점들도 최강의 경쟁자들을 상대로는 통하지 않았다. 레슬링이 뛰어나긴 했지만 그것으로 최고가 되진 못했고, 일단 레슬링이 먹히지 않는 상대에게 타격으로 털리는 일도 많았다.

하지만 안정적인 그래플링을 바탕으로 오랜 기간 꾸준한 활약을 보였기에 그를 UFC 웰터급의 게이트 키퍼로 보는 시각이 있다. 사실 파리시안에게 이긴 상대는 모두 UFC에서 타이틀샷을 받은 선수들 뿐이다.

5. 기타

유도를 배우게 된 계기는 초딩 시절 누이를 때렸다가 아버지에게 혼나고, 정신수양 좀 하라고 도장에 보낸 것이라고 한다.

2007년 ~ 2008년 사이에 공황장애를 겪고 있다는 말이 나왔는데, 비슷한 시기에 알베스에게 패하는 등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한국에서는 김동현과의 시합을 통해 유명해졌는데, 약물복용이 밝혀진 후로는 엄청나게 까였다. 하지만 프로 파이터들은 거듭되는 시합으로 몸이 망가지기 때문에 베테랑 선수의 경우 진통제가 없이는 시합이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파리시안 역시 30전 가까이 치른 선수이다. 그리고 진통제의 경우는 '실력보다 더 강해지는 것'이 아닌, 실력을 제대로 내기 위한 경우이기 때문에[6] 다른 종류의 도핑보다는 조금 관대하게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그래도 해서는 안되는 짓이며, 컨디션을 100%로 끌어올리는 것 역시 선수의 능력이기 때문에 정상적인 몸을 만들지 못해 약물의 힘을 빌리는 것도 편법임을 잊어선 안된다.

본인의 주장에 의하면 2005년 무렵에 시합에서 오른쪽 허벅지에 부상을 입었는데 이것이 2008년 당시까지 완치되지 않았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용했다고 한다.

승부욕이 대단히 강해서 가끔 패배를 받아들이지 않는 모습도 보인다. TKO로 패한 경기에서도 레프리에게 격렬하게 항의를 하곤 한다.[7] 더불어 시합 중에 마우스피스를 뱉는 등 꼼수를 부리기도 하기 때문에 안티가 꽤 된다.

UFC 페더급에서 활약했던 매니 감부리안과 사촌지간이다.

6. 관련 문서



[1] 평체는 90kg[2] 셔크가 좀 많이 맞긴 했다. 파리시안은 자신이 이긴 경기였다고 셔크를 강도높게 비판했다.[3] 벨트는 UFC로 돌아갈 때 반납했다.[4] 이 경기는 레슬링 옵저버에서 뽑은 2006년 올해의 경기에 선정될 정도로 엄청난 명승부였다.[5] 하지만 주체육위원회측에서는 라이선스를 먼저 발급해 주고 돈은 대전료를 받은 후에 내도 좋다는 입장을 표명한 뒤였기에 금전 문제를 운운하는 것은 변명이라는 비판이 있었다. 근데 이 라이선스가 좀 비싸긴 비싸다. 무려 32000 달러였다.[6] 물론 이 양반처럼 진통제를 스팀팩으로 쓰는 사람들도 있었다. 근데 이건 위험성이 너무 높아서 90년대 이후로는 아무도 이렇게 안한다. 커는 이짓을 하다 죽을 뻔 하기도 했고.[7] 맷집이 강하긴 하지만 만약 속행하다 사고라도 나면 단체와 레프리가 홀랑 뒤집어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