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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9 06:56:22

연노

추코누에서 넘어옴
1. 개요2. 설명3. 구조4. 다양한 연발식 쇠뇌들
4.1. 서양의 연발 쇠뇌4.2. 한국 및 아시아의 연노
5. 창작물에서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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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중국 진나라의 연발 쇠뇌. 중국의 원조 제갈노들은 휴대성과 연사력이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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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중국 병서에 실린 제갈노의 설계도. 위 설계도 확대링크
連弩 (Chu-ko nu)
고대 중국에서 개발되어서 한자 문화권에 전파된 기계식 연발 쇠뇌.

2. 설명

"연노"(連弩), 혹은 제갈량이 개발하였다 하여 "제갈노"(諸葛弩), 손으로도 가볍게 쏠 수 있는 쇠뇌라고 하여 "수노"(手弩) 라는 명칭으로도 불렀다. 여자들도 쉽게 익힐 만큼 편하다고 하여 "부인노"라는 별칭도 있다. 제갈노의 현대 중국어 한어병음 표기는 Zhūgě nǔ(주거 누)이지만, 한어병음 제정 이전부터 쓰였던 웨이드-자일스 표기법으로는 이 주거누를 Chu¹-ko³ nu³라고 적었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웨이드-자일스 표기법에서 성조 번호를 생략한 표기인 Chu-ko nu가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고, 이걸 영어식으로 읽은 걸 한글로 옮긴 게 "추코누"이다.

상술하였듯 제갈량이 처음 만들었다는 전승이 있지만, 현대의 연노는 명나라 왕조에 들어서 만들어졌다. 제갈량이 발명한 쇠뇌는 쇠로 만든 8촌짜리 화살을 한번에 10개씩 발사하는 "원융"(元戎)이었다. 제갈량의 원융이 산탄총이라면, 연노는 리볼버에 해당할 정도로 다른 무기였다. 영화 적벽대전에서도 제갈량이 원융이 아니라 연노를 만든 것으로 나온다. 재현 오류.[1] 하지만 주변의 한자 문화권에서도 제갈량의 인기가 높았기 때문에 "제갈노"라는 명칭은 널리 퍼졌으며, 서양권에도 "추코누"라는 명칭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동아시아의 한자 문화권에서는 대다수가 연노를 도입했다. 중국과 가까운 나라일수록 많이 사용했으며, 심지어 기마 민족들도 연노를 편성했던 경우가 있었다.[2] 한국에서는 국궁의 사용폭이 워낙 넓어서 연노를 쓰지 않았다는 말도 있지만, 아래에서 설명하는 장점을 높이 평가하여 보조용/호신용으로 편성했다. 단, 일본에서는 쇠뇌 자체가 대중화 되지 못한 점도 있어서 잠깐 보이다가 사라졌다.

한국에도 신라시대부터 고려 시대까지, 각궁쇠뇌를 결합한 양식으로 여러발을 동시에 날리는 쇠뇌가 있었다고 한다. 물론 제갈노의 매커니즘만큼은 중국에서 수입한 양식을 그대로 적용했다. 그만큼 완성도가 높은 설계 구조를 지닌 무기였다.

대다수의 연노는 살상거리가 20~40m 내외를 오갔다고 한다. 하지만 바늘 같은 탄환이라도 수십명이 쏘면 적의 갑주가 보호하지 못하는 신체를 뚫을 수 있었으며, 한번 맞으면 불구가 되는 이나 드러난 팔다리를 제압하는 효과도 있었다고 한다. 본래 "화살"은 운동 에너지만 확보되면 각도에 따라서 관통력이 생기기 때문에, 경보병끼리의 싸움에서는 상당히 유용했다고 한다. 특히, 동아시아에서는 징집병들이 갑옷을 착용하는 비율이 낮아서 더욱 쓸만했다. 다만 제대로 된 전쟁에서 쓸 수는 없고[3], (힘 없는) 여자가 도둑 쫓는데나 쓸만하다는 악평도 있었다.

성벽 위에서 쏘는 용도로 사용되기도 했는데 위치에너지가 추가되면 위력이 좋아지기도 하고, 석궁은 성벽위나 탑안에서 좁은 구멍으로 쏘기에는 활보다 더 사격에 유리한데다 사격난이도가 활에 비해 훨씬 낮아서 급히 징집된 성벽 수비병들에게 쥐어주기에도 좋았다.

제갈노는 고대부터 만들어진 연발장치가 달린 제식무기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발명자인 중국인들 뿐만 아니라, 다양한 한자 문화권에서 제갈노의 성능을 인정하고 도입했을 정도였다. 서양에서 "추코누"라는 명사까지 써가면서 관심을 보인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위력은 약한 편이지만 연발이 가능해 순간적인 화력투사에 능하다는 특징 때문인지 청일전쟁 때 청의 군사 중 일부가 이 무기를 썼으며 의화단 운동 당시에도 이 무기가 사용되었다.

3.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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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그림과 같이 지렛대를 이용해서 펌프질 하듯이 왕복운동을 해서 발사한다. 탄창과 몸체, 그리고 활대에 달린 시위가 지렛대의 힘으로 'ㄱ' → 'ㄷ' 자로 맞물리면서 탄력이 발생한다. 몸체의 상단의 전갑(탄창+방아)에는 화살이 가득차 있으며, 발사할 때마다 위의 화살이 계속 내려오면서 재장전된다.

연노에 쓰이는 화살은 탄(彈)에 가까운데, 전갑 속에 쌓아놓고 중력에 의해 내려오는 것을 자동으로 발사하는 방식이었다. 그 때문에 깃이 없거나 매우 작았고, 밋밋한 침 형태로 만들어졌다. 이는 사거리가 짧은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 단, 진짜로 탄환을 쏘는 탄노(彈弩)도 따로 존재했다.)

또한 연노는 앞부리가 짧다. 이는 재장전의 안정성을 극도로 높여서, 걸림 현상(Jam)을 원천봉쇄하기 위한 설계였다. 따라서 탄도를 안정시킬 설계가 부족했고, 이는 비거리와 정확성이 감소하는 결정적인 이유였다. 심지어 연노를 크게 만들 때도 앞부리는 짧은 편이었는데, 연노는 비거리보다는 걸림 현상에 대한 대처력을 높여서 화살의 숫자로 적을 제압하는 무기였기 때문이다. 그와 반대로 조선식 연노는 앞부리가 길고 여러면에서 독특한데, 이는 두 나라의 지형과 전술에서 생긴 차이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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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위에 나온 중국 진나라의 연노는 보다시피 일반적인 연노들과는 구조가 약간 달랐다. # 뒤로 뻗은 손잡이를 앞뒤로 움직이기만 하면 되니 조준성은 높지만 구조가 복잡하다.

4. 다양한 연발식 쇠뇌들

4.1. 서양의 연발 쇠뇌

서양에서도 "리피팅 크로스보우"(Repeating Crossbow)라고 하는 비슷한 물건이 존재했다. 이미 고대부터 대형연발 발리스타인 폴리볼로스[4], 파트로클로스가 존재했다. 하지만, 서양에서는 갑주가 발달했기 때문에, 도르래나 톱니장치를 이용하여 엄청난 운동 에너지를 지닌 쇠뇌들만이 살아남았으며, 연발장치의 재료강성이 이러한 대형화 흐름에 맞지않다보니 오작동 등으로 쉽게 도태되었다. 즉, 중국의 제갈노처럼 편의성을 중시한 무기들은 사용하기가 어려웠다.

4.2. 한국 및 아시아의 연노

아시아권에는 중국의 영향을 받아서 지렛대+배에 대는 몸체를 지닌 제갈노들이 전파되었다. 대표적으로, 가장 가까운 한반도에서는 조선시대의 연노들이 전해지고 있는데, 연발장치의 구조는 같지만 형태나 활용법에서 미묘한 차이점이 존재한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00px-Navalzhugenu.jpg
임진왜란에서 제갈노의 일종이었던 용두삼시수노(龍頭三矢手弩)로 추정되는 무기를 사용하는 조선군
조선시대의 수노기(手弩機)들은 중국식 연노 장치를 그대로 얹어놓은 모양이지만 약간의 차이점도 있었다. 활대는 한국의 각궁을 올려놓은 것이었다. 또한, 탄창(彈倉)이 후방에 있어서 드로우 렝스(Draw Lenth)가 1.5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는 연노의 연사력과 편의성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었지만, 사정거리가 늘어나는 동시에 앞 부분의 배럴(Barrel)이 길어서 탄도의 안정성이 생겼다.
파일:external/blogfiles5.naver.net/3.jpg 파일:external/www.gasengi.com/53df2cc533b5cd2b06634992f6a8b8f2_1393581374.88.jpg
인간문화재 유영기의 수노기 복원품 출처 조선시대의 일반적인 수노기. 장전부의 모습이 잘 보인다.
여러모로, 조선의 연노는 연사력을 강조한 중국의 원조보다 비거리에 설계자의 노력이 쏠려있는 설계품들이 눈에 띈다. 또, 조선시대에는 연노가 전투를 보조하는 용도 이외에도, 사냥용/호신용으로 사용된 기록들이 많다. 참고로, 한국의 연노는 초소형 각궁에다가 연발 장치를 합친 개념이었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불과 이웃나라에 전파되었음에도 나름대로 개성이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중국에서는 익숙하게 사용했던 전통무기일 뿐만 아니라, 현대에는 장난감으로도 취급되기에 제갈노를 취미 삼아서 만드는 장인들이 존재한다예시.[5] 중화권에서는 심지어 나무젓가락으로도 만들면서 놀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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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시기의 탄노 출처
탄환을 발사하는 연발식 탄노도 존재한다. 탄노는 일반적으로 큰 살상력을 기대하기 힘들었으므로, 연노와 설계이념이나 역할이 일치했다. 현재에도 은근히 매니아층이 있는 무기라고 한다. 심지어 서양에서도 양덕후들이 공작숙제로서 자주 만드는 무기이다.

일본의 경우는 쇠뇌 자체가 그다지 인기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제갈노는 널리 보급되거나 연구되기 어려웠다. 일본에서는 순전히 호신용에 불과하다며 서술하는 경우가 많으며, 실제로도 한국의 기록 등에서도 부인들이 사용하는 호신용무기 정도로 적는 기록이 많아서 큰 차이는 없는 편이다.

5. 창작물에서

석궁의 캐릭터 문서를 같이 참조할 것.

[1] 다만 연의 원작에서는 제갈량이 임종 시에 자신이 개발한 무기가 '연노'라고 설명하는 장면이 있는데, 제갈량 생전에는 사용되지 않았다. 훗날에 강유가 패전하고 위군이 쫓아올 때 연노로 격퇴시키는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2] 단, 기마 민족들은 말 위에서 쏘았던 것이 아니고, 경보병들끼리의 싸움에서 연발 무기로서 사용했다. 연노는 배 위에 대고 당기도록 되어 있는 구조였기에 철저하게 보병용이었다.[3] 위력은 약한 주제에 복잡한 기계 구조 탓에 비용과 정비 난이도는 높음.[4] 이쪽은 단순 회전운동만으로도 급탄및 발사가 이루어진다. 모터만 달아주면 쉽게 자동화도 가능하다.[5] 해당 영상은 중국인이 아닌 한국인이 만든 것이다.[6] 그런 데다, 추코누는 문명 4에 등장하는 모든 궁수, 화약 보병 유닛 가운데 유일하게 공격한 유닛과 같은 칸에 있는 모든 적 유닛에게 데미지를 줄 수 있었다. 추코누 이외에는 투석기나 대포 등 공성병기에게만 있는 특징. 때문에 도시의 방어력을 깎지 못하지만 망치가 비교적 적게 들기 때문에 궁병이 아닌 공성기를 운용한다는 느낌으로 끌고다닐 수 있었다.[7] 물론 유닛 겹치기가 안되고, 무엇보다 "공군!"이 있기 때문에 실 활용성이 썩 높진 않다[8] 전근대시절 중국에서 쓰던 일종의 박격포이다.[9] 정발판에는 오타로 하비의 전투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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