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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6-07-12 16:12:46

최원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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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최원배
崔源培 | Choi Won-bae
출생 1904년 12월 17일
강원특별자치도 김화 근동 하소
사망 1946년 7월 12일 (향년 41세)
서훈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2. 생애

그는 1904년 12월 17일 강원도 김화 근동 하소에서 태어났다. 그는 1928년 음력 12월 중순경 강원도 김화군에서 심능필의 권유로 조선공화정치국[1]이라는 비밀결사에 가입한 후, 입적원 용지를 가지고 다니면서 동지를 규합하는 등으로 활동하였다. 강원도 김화를 비롯해 통천, 화천, 회양, 평강, 횡성, 홍천, 양구 등지에 지부가 설치되었다. 여기에 참여한 사람이 무려 1,000여 명에 달할 정도였는데 대부분 농민과 노동자였다. 별도로 100여 조목에 달하는 법률 조문을 제정했으며, 이동휘를 수석으로 내세운 아래 군무부 등 8개 부서를 두고 활동하였다. 또한 국외에서 권총과 탄약을 들여와 장차 거사를 실행하려는 계획도 세우고 각지에서 단원을 모집하였다.

이와 같이 활동하다가 1929년 5월 김화경찰서에 조직이 발각되어 150여 명의 동지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최원배는 5월 22일 김화경찰서에 유치되어 취조를 받고, 5월 말 기소되었다. 1930년 5월 31일 예심이 종결되어 공판에 회부되었다. 1931년 2월 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다음날인 2월 10일에 풀려났다. 이후 광복 후, 1946년 7월 12일 사망했다.
[1] 조선공화정치국은 1924년 중국 훈춘에서 이동휘의 명으로 국내로 들어온 김중산, 원길흥과 1927년에 국내로 들어온 진홍거 등이 중심이 되어 강원도 일대의 농민들 중 수운교도를 규합하여 결성한 단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