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최석준(崔錫濬) |
이명 | 최석준(崔錫俊), 최석유(崔錫濡) |
생몰 | 1891년 10월 11일 ~ 1921년 10월 14일 |
출생지 | 평안도 삭주군 내동면 대대동 (현 평안북도 삭주군 대대노동자구) |
사망지 | 의주경찰서 |
매장지 | 국립서울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추서 | 건국훈장 독립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최석준은 1891년 10월 1일 평안도 삭주군 내동면 대대동(현 평안북도 삭주군 대대노동자구)에서 태어났다. 그는 독립유공자 최석순의 친동생이며 개신교 신자였다. 1919년 2월 고종의 국장일에 참례하기 위해 서울로 상경했다가 3.1 운동을 접한 뒤 귀향하여 4월에 삭주, 창성 등지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했다. 이후 일제 경찰의 추적을 피해 만주로 피신했고, 그곳에서 한족회에 가입해 독립운동을 전개했다.1920년 5월 14일, 최석준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연통제 삭주군 경감(警監)에 임명되어 안영호·강종문(姜從文)·김서준(金瑞俊)·김정로(金定魯) 등과 함께 활동하였다. 또한 동년에 광복군총영원(光復軍總營員)으로 김익준(金益俊)·박준모·김봉한(金鳳漢) 등과 함께 국내에 진입하여 밀정처단 주재소 습격 등 무장항일 활동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21년 이륭양행의 선편으로 임시정부에 다녀오는 길에 안동현에서 체포되어 의주로 압송되었고, 1921년 10월 14일 밤 의주서에서 동지 이호영(李浩英)이 모진 고문을 당하는 것을 보다 못하여 경찰과 난투극을 벌이다 이호영과 함께 피살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최석준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68년 그의 유해를 국립서울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