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리원군 출신 독립운동가, 최병원
| 성명 | 최병원(崔秉元) |
| 생몰 | 1879년 ~ ? |
| 출생지 | 함경남도 리원군 동면 대화리 |
| 사망지 | 미상 |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최병원은 1879년생이며 함경남도 리원군 동면 대화리 출신이다. 1919년 3월 7일 서울의 기독교 신자 박용해(朴龍海)가 이원군 천도교구장 김병준(金秉濬)에게 조선독립선언서를 전달했다. 이에 최병원 등 15명은 다음날인 8일 자신들의 명의를 넣어 독립선언서 500매를 인쇄했다. 그들은 조선독립단의 이름으로 3월 10일 이원에서 만세시위를 벌이기로 했다. 10일 아침, 700여 군중이 읍내 시장으로 몰려 나와 독립만세를 소리높이 부르고 행진에 들어갔다. 급히 출동한 경찰은 최병원 등 6명을 현장에서 체포하고 군중을 해산시켰다.
이 일로 재판에 회부된 그는 1919년 6월 30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2월을 받고 공소했으나 경성복심법원과 고등법원에서 각각 기각되었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최병원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2. 길주군 출신 독립운동가, 최병원
| 성명 | 최병원(崔秉元) |
| 생몰 | 1877년 ~ ? |
| 출생지 | 함경북도 길주군 양사면 양흥리 |
| 사망지 | 미상 |
| 추서 | 대통령표창 |
최병원은 1877년생이며 함경북도 길주군 양사면 양흥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15일 주민 300명을 마을의 중심지에 집합시키고 태극기를 앞세우고,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후 최병원은 시위대를 이끌고 합수(合水) 헌병주재소로 몰려가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 일로 체포된 그는 1919년 7월 19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았고, 고등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었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최병원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3. 충청북도 청주시에 위치했던 병원
| <colbgcolor=#FFD700,#2d2f34><colcolor=#333,#fff> 최병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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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업년도 | 1986년 |
| 폐업년도 | 2017년 |
| 창업주 | 최헌식 |
| 규모 | 약 1,846평[1] |
| 위치 |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사직대로 49[지번] |
1986년, 최헌식 원장이 청주시청 인근에서 문을 열면서 개업하여 정형외과·재활의학 분야에서 이름을 떨쳤다. 이후 1996년 복대동으로 확장 이전하며 성장세를 가했다.
한때 청주시내에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찾았으나 2007년 최헌식 원장이 사망하여 최헌식기념의료재단으로 명칭을 변경해 새로운 운영체계를 꾸렸다. 그러나 최 원장의 사망 이후 병원을 찾는 이들이 급속도로 감소하면서 재무구조가 악화되고 결국 2016년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지만 1년 만에 종료해 문을 닫았다.
그 뒤로 2020년 건물을 경매에 내놓았고 최종적으로 2025년 하반기, 사창동에 위치한 김안과가 매입하면서 최병원은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