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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6-04-10 21:04:05

청묘법


1. 개요2. 역사
2.1. 배경2.2. 예상2.3. 구상2.4. 현실

1. 개요

북송의 정치인 왕안석이 추진한 신법들 중 하나다. 춘궁기에 정부가 백성들에게 낮은 이자로 곡식을 빌려주고 추수기에 이자를 붙여 상환받는 방식의 금융 제도다.

고리대금업자들에게 시달리던 빈농들을 보호하고 국가 재정을 확충하고자 시행되었으나 지방 관리들의 부정부패로 강제 대출 및 높은 실제 이자율 등으로 북송의 폐해가 된 법이 되었다.

2. 역사

2.1. 배경

북송 시기 참파 벼의 보급과 신종 농법들의 도입으로 농업이 획기적으로 발전했으나, 여전히 빈농들이 많았고 북송에 들어 문치주의 정책으로 권력을 장악한 신흥 계층 '사대부'는 대토지를 소유한 대지주로 소작농들을 휘하에 대거 부리는 방식으로 경제력을 얻어 기득권을 형성했다.

자영농들도 상황이 좋지만은 않았던 것이 이미 기름진 토지는 사대부들이 싹 가져가서 척박한 땅밖에 없었고 나라 주도로 개간한 황무지에서도 좋은 땅들은 고위직들이 싹 쓸어가기에 바빴기에 자영농들은 고리대금업자에게 초고이자율로 돈이나 곡식을 빌리고 무지막지한 이자에 시달리며 빈곤할 수밖에 없었다.

2.2. 예상

이에 따라 왕안석은 지방 빈농을 구제하기 위해 청묘법을 구상했는데, 관청에서 춘궁기[1]에 싼 이자로 곡식을 빌려주고 수확기에 약간의 이자를 덧붙인 곡식을 돌려받으면 빈농을 구제하고 이자로 받은 곡식으로 국가 재정도 든든히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동시에 기존에 소작 제도를 통해 경제력을 과독점하던 기득권과 고리대금업자들의 권력을 약화시키는 추가적인 효과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무엇보다 왕안석은 지방 관리로 재임하던 시절에 이 정책을 실제로 시행해 효과를 봤던 경험이 있어서 정책의 효율성을 매우 높게 평가했다.

2.3. 구상

왕안석의 청묘법은 다음과 같았다.

* 정부가 곡식이 아직 여물지 않은 청묘기에 상평창의 곡식 및 재정을 활용해 백성들에게 돈과 곡식을 빌려준다.
* 가을에 곡식을 돌려받을 때 2할의 이자를 더 붙여서 받는다.
* 이를 통해 국고와 상평창의 재정을 개선하고 빈농들의 빈곤을 해결한다.
* 동시에 그동안 부를 독점한 대지주와 고리대금업자를 점진적으로 약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2.4. 현실

성공만 한다면 그야말로 만능에 가까운 정책이었으나 지방의 관리들은 청묘법의 시행을 권고받았고 성과가 좋을 시 여러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이로 인해 빈농은 물론아고 평범한 농민들에게꺼지 강제로 곡식을 빌려주는 사태가 발생했고 이 과정에서 제대로 된 양의 곡식을 주지 않거나 모래와 섞어주는 등의 비리도 발생했다.

그리고 이자도 2할보다 훨씬 높게 책정해 차액을 빼돌려 자신들의 배를 불렸고 제도의 복잡함과 관리의 부패로 행정 비용은 날로 늘어만 갔다.

이러한 정책의 대실패로 인해 구법당[2]관려들의 거센 비난을 받은 왕안석은 결국 해임당하는 결말을 맞이했다.

[1] 봄과 가을[2] 왕안석의 신법을 반대하는 계층.주로 기존의 기득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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