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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차가타이 울루스(차가타이 칸국)와 우구데이 울루스(오고타이 칸국) 사이에서 벌어진 내전이자 전쟁.2. 1차 전쟁
1259년 몽케 칸 붕어 이후 쿠빌라이 칸과 아리크부카가 대칸 지위를 두고 다투자, 카이두는 아리크부카를 지지했다. 그리고 아리크부카가 결국 쿠빌라이에게 패배하게 되자, 쿠빌라이 지지로 노선을 바꾼 차가타이 칸국의 알루구 칸[1]이 본격적으로 카이두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때 킵차크 칸국이 5만명의 병력으로 카이두를 지원했고 결국 차가타이 칸국의 공격을 막아내었다.
3. 2차 전쟁
몽골 제국의 내전 | ||||
주치인 울루스의 제2차 훌레구인 울루스 침공 (1265) | → | 제1차 차가다이인 울루스-우구데이인 울루스 전쟁 (1268~1269) | → | 차가타이 울루스의 훌레구 울루스 침공 (1269~1270) |
1266년 쿠빌라이는 바라크를 차가타이 울루스의 공동 칸으로 임명한다. 그러나 바락은 반란을 일으켜 무바라크 샤를 몰아내고 독자적인 칸의 위치에 오른다. 쿠빌라이는 화들짝 놀라 6천명의 군대를 파견했지만 바락이 3만명의 군대로 맞서면서 어떠한 전투도 치르지 못하고 돌아온다. 바락은 쿠빌라이의 모든 권위를 무시하겠다고 선언한다. 그런데도 쿠빌라이는 카이두를 견제하기 위해 차가타이 울루스에 지원금을 보낸다.
카이두 칸은 차가타이 칸국을 킵차크 칸국의 멩구티무르와 함께 압박해, 두 차례의 승리를 이끌어낸다. 1267년에는 차가타이 칸국의 상당한 영토를 얻고 같이 원나라-훌레구 울루스 동맹에 대응하자는 명분으로 평화 협상을 맺어 전쟁을 끝낸다.
4. 3차 전쟁
한편 영토를 잃은 바락 칸은 상당한 불만을 가지게 되었다. 1269년에는 멩구티무르와 바라크, 카이두가 모여 쿠릴타이를 개최하고 반원 동맹을 맺는다. 그리고 바락 칸이 훌레구 울루스를 침공한다면 동맹국들은 지원하기로 한다. 주치인 울루스와 우구데이 울루스의 병력 지원을 받은 바락 칸은 훌레구 울루스를 침공하고 초반에 많은 승리를 거두었다.(차가타이 칸국-일 칸국 전쟁, 1269~1270)하지만 그의 성공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멩구티무르가 파견했던 병력과 장수를 거두어 들였고, 카이두 칸도 그 소식을 듣고 병력을 물린다. 1270년, 지원병력도 없이 치룬 전투에서 대패하고 부상까지 입은 바락 칸이 1271년 카이두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카이두 칸은 우구데이인 울루스를 침공한다.
1271년, 헛된 동맹을 믿었던 바락 칸은 카이두의 군대에게 둘러싸인 막사 안에서 죽었다.
이후 차가타이 칸국은 우구데이인 울루스의 속국으로 전락해 카이두 칸이 마음대로 칸을 추대하게 된다. 그러나 이전 칸들의 아들들은 지속적으로 반란을 일으켰고, 이러한 반란은 1282년 카이두가 반란 세력과 타협하여 바락의 아들 두아를 차가타이 칸위에 올리면서 해결되었다.
5. 4차 전쟁
카이두 칸이 사망한 후, 원-오고타이 칸국 전쟁에 끌려다니던 두아 칸은 오고타이 울루스의 왕자들간의 갈등을 부채질했고, 울루스가 충분히 약해졌다고 느껴지자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원나라 지원군을 등에 업고 오고타이 울루스를 침공해 점령한다. 그후 탄압을 견디다 못한 오고타이 울루스인들이 봉기를 일으키자 잔혹하게 봉기를 진압하면서 오고타이 울루스는 역사에서 사라진다.[1] 재위 : 1260년 ~ 126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