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4-15 03:47:07

짐 모리스

짐 모리스의 역대 등번호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탬파베이 데빌 레이스 등번호 63번
팀 창단 짐 모리스
(1999~2000)
크리스 지메네즈
(2012)
}}} ||
파일:짐모리스.jpg
이름 제임스 새뮤얼 "짐" 모리스 주니어
(James Samuel Morris Jr.)
생년월일 1964년 1월 19일
국적 미국 파일:미국 국기.svg
신장 192cm
포지션 투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1983년 1월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4순위(MIL)
소속팀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 (1999~2000)

1. 개요2. 어린 시절3. 마이너리그 시절4. 고등학교 교사5. 메이저리그 시절6. 은퇴

1. 개요

전 메이저리그 투수, 고교 체육교사. 부상 때문에 젊은 나이에 야구선수에서 은퇴해 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다가 선수에서 은퇴한지 10년만인 35세의 나이로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

2. 어린 시절

텍사스주 브라운우드가 고향이지만 해군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에는 여러 차례 미국 각지로 이사를 다니다가 다시 브라운우드로 돌아와 정착했다.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고 야구는 3살 때 시작했는데, 브라운우드 고교로 진학하지만 학교에 야구부가 없어서[1] 미식축구 선수로 활동했지만 야구선수로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3. 마이너리그 시절

1982년 드래프트 때 18라운드 전체 466순위로 뉴욕 양키스에 지명되지만 입단하지 않았고, 이듬해인 1983년 1월 드래프트[2] 때 1라운드 전체 4순위로 밀워키 브루어스의 지명을 받고 입단했다.

부상과 부진으로 좀처럼 싱글A 위로 올라가지 못하다가 1986년에는 1경기도 못 나왔고 1987년에는 4경기 등판에 그치면서 그 해 6월 브루어스에서 방출됐다. 1989년 9월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지만 역시나 부상의 여파로 2경기 밖에 나오지 못하면서 1달만에 다시 방출됐다. 7년간 마이너리그 생활 동안 여러 차례 부상을 당한 끝에 모리스의 팔꿈치 인대는 끊어지고 말았고, 의사는 더이상 야구를 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진단했다. 결국 싱글A 위로는 올라가보지도 못한 채 모리스는 선수 생활을 포기했다.

4. 고등학교 교사

모리스는 야구선수의 경험을 살려 텍사스주의 빅레이크에 있는 레이건 카운티 고등학교[3] 화학 교사 겸 체육 교사로 재직하며 레이건 카운티 고등학교 야구부에서 학생을 지도했다.

그러나 레이건 카운티 고등학교 야구부는 리그 최하위를 심심찮게 기록할 정도로 최악의 상황이었는데[4], 1999년 봄에 모리스는 부진에 빠진 학생들에게 지역예선을 통과한다면 다시 야구선수로 도전해 메이저 리그에 데뷔하겠다라는 제안을 했다. 그런데 정말 레이건 카운티 고등학교 야구부는 지역예선을 통과하더니 3승 2패로 우승했다.

5. 메이저리그 시절

모리스는 학생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메이저리그 트라이아웃에 참가했는데, 다른 선수들보다 나이가 훨씬 더 많다 보니 스카우트의 반응은 싸늘했다. 그러나 마이너리그 시절 망가졌던 모리스의 팔은 그동안 받았던 여러 번의 수술로 인해 기적적으로 더 빠른 공을 던질 수 있게 바뀌었고, 12차례나 157km/h의 구속을 찍는 모리스의 모습에 스카우트는 돌변했다. 그리고 1999년 6월, 모리스는 탬파베이 데블레이스와 계약하면서 35세에 다시 야구선수가 됐다.

모리스는 과거 마이너리거 시절에는 단 한 번도 올라와보지 못했던 더블A에서 다시 선수 생활을 시작했는데 더블A는 물론이고 트리플A도 단숨에 거치면서 확장 엔트리가 적용되는 9월에 메이저리그로 올라와 9월 18일 텍사스 레인저스전에서 데뷔전을 가졌다. 1-6으로 뒤지고 있던 8회말 2아웃 상황에서 마운드에 올라와 타석에 들어선 로이스 클레이튼을 삼진으로 처리하고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끝내 학생들과의 약속을 지킨 것이다.

원 포인트 릴리프로 2000년에는 시즌 초부터 메이저리그 엔트리에 포함됐지만, 5월 9일 뉴욕 양키스전에서 연장 10회말 1사 만루 상황에서 등판해 폴 오닐에게 밀어내기 볼넷을 내주며 팀에 패배를 안긴 이후로 팔꿈치 통증이 재발하면서 남은 시즌 동안은 등판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모습이 모리스의 마지막 메이저리그 등판이었다. 2시즌 동안 21경기에 등판했다.[5]

6. 은퇴

2000년 11월 데블레이스에서 방출되면서 한 달 후인 12월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마이너리그 계약을 하지만, 2001년 스프링캠프 도중에 방출되면서 은퇴했다. 메이저리그 통산 기록은 21경기 0승 0패 15이닝 13탈삼진 ERA 4.80.

은퇴 후 자서전을 냈으며[6], 짐 "더 루키" 모리스(JTRM) 재단을 만들어 강연을 한다.

영화 루키의 주인공으로 알려져있다.



[1] 모리스가 재학할 당시에는 없었지만 이후 생긴 모양. 셸비 밀러가 고교 후배다.[2] 원래 MLB 드래프트는 6월에 하지만, 1986년까지는 이미 고교를 졸업한 선수, 전문대학 선수, 4년제 대학에서 중퇴한 선수 등을 대상으로 한 드래프트도 있었다.[3] 영화 루키에서는 빅레이크 고등학교로 나오는데, 실제 텍사스에는 빅레이크 고등학교가 없다.[4] 다만 영화 루키에서 묘사된 정도로 열악한 환경은 아니었다. 모리스의 자서전에 따르면 당시 50여명의 야구부원이 있었다고 한다.[5] 1999년 5경기, 2000년 16경기[6] 'The Oldest Rookie'라는 제목인데, 실제 역대 메이저리그 선수 중 최고령 데뷔 기록은 사첼 페이지갖고 있다. 다만 페이지는 누구나 인정하는 역대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하나임에도 극심한 인종차별 때문에 기회를 박탈당한 것이지만, 모리스는 정말 아무도 기대도, 예상도 안하던 선수의 인간승리이기 때문에 페이지와 다른 의미로 의미가 깊다고 할 수 있다. 페이지가 인종차별조차 끝내 덮을 수 없었던 전설이라면 모리스는 위대한 도전자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