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3-12-07 19:26:28

진(리그 오브 레전드)/배경

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진(리그 오브 레전드)
1. 장문 배경2. 강철 지팡이를 짚은 남자 (1~3막)3. 강철 지팡이를 짚은 남자 (4막)4. 구 장문 배경

1. 장문 배경

아이오니아 어디를 가더라도 황금빛 악마를 붙잡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다양한 연극과 서사시에서 묘사되는 이 잔혹한 악마의 퇴치는 이날 이때까지도 경사스러운 일로 기억된다.

모든 신화의 중심에는 진실의 일면이 있기 마련이지만, 황금빛 악마의 진실은 알려진 것과 크게 달랐다.

한때 아이오니아의 남부 산악 지대에서는 황금빛 악마가 악명을 떨쳤다. 놈은 주운 주의 전역뿐 아니라 숀산과 갈린에 이르는 지역에서 여행자들을 숱하게 살해했고, 때로는 농장을 통째로 쑥대밭으로 만드는가 하면 기괴한 몰골의 사체들을 지천에 늘어놓은 채 사라지곤 했다. 민병대가 숲을 수색하고, 각 마을에서 괴물 사냥꾼을 고용하고, 우주류 검술의 고수들이 순찰을 돌았지만, 그 살인 행각을 막을 수는 없었다.

절박해진 주운 주의회에서는 킨코우 결사단의 쿠쇼 대사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사절을 보냈다. 영혼 세계와 물질 세계 사이의 균형을 유지할 의무를 지닌 쿠쇼는 악마 퇴치에 도가 튼 인물이었다. 쿠쇼는 황금빛 악마가 계획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아직 십 대인 아들 과 젊은 수련생 제드를 데리고 은밀히 주운으로 떠났다. 세 사람은 끔찍한 사건 현장을 조사하고 충격에 빠진 유족들을 만나 보며 사건들 사이에 어떤 연결 고리가 있는지를 추적해 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쿠쇼는 이전에도 이 살인자를 추적하려던 자가 많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사건을 조사할수록 악마의 소행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후 4년간 황금빛 악마는 수색망을 이리저리 빠져나갔고, 길어지는 조사에 세 사람은 변했다. 쿠쇼의 유명한 붉은 머리는 백발이 되었고, 재기 넘치고 익살스러운 성격이었던 쉔은 침울해졌으며, 쿠쇼의 문파에서 가장 전도유망한 샛별이었던 제드는 수련에 집중하지 못했다. 악마는 마치 그들이 자신을 찾는다는 사실을 알고, 실패로 괴로워하는 그들의 모습을 즐기는 것 같았다.

마침내 살인 사건의 패턴을 발견해 낸 쿠쇼는 이렇게 말했다고 전한다. "선과 악은 실재하지 않는다. 그건 인간이 만들어 낸 개념에 불과하며, 그 개념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다." 쿠쇼는 조사에서 손을 떼려고 했다. 그들이 쫓는 것은 악마가 아닌 사악한 인간이나 바스타야였다. 그렇다면 킨코우 결사단이 간섭할 수 없는 문제였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노력을 허사로 만들고 싶지 않았던 쉔과 제드는 추적을 계속하자고 쿠쇼를 설득했다.

지옴 협로에서 열리는 영혼의 꽃 축제 전야에 쿠쇼는 이름난 서예가로 위장하고 축제에 초대받은 예술가들 틈에 섞여들어 기다렸다. 쉔과 제드는 주도면밀히 준비한 함정을 놓았다. 마침내 그들은 증오스러운 범인을 마주했다. 쿠쇼의 예상대로 그 유명한 '황금빛 악마'는 주운의 여러 유랑 극단과 오페라하우스에서 무대 담당자로 일해 온 카다 진이라는 이름의 사내일 뿐이었다.

세 남자에게 붙잡힌 진은 몸을 잔뜩 움츠렸고, 제드는 젊은 혈기에 불타올라 진을 죽이려 했다. 하지만 쿠쇼가 제드를 제지했다. 쿠쇼는 두 제자에게 이번 일이 이미 자신들의 소관을 벗어났으며, 진을 죽이면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쿠쇼는 진이 인간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아이오니아 문화를 정의하는 조화와 신뢰가 허물어질 것을 걱정했다. 어쩌면 비슷한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이 나올지도 몰랐다. 결국 진의 만행에도 쿠쇼는 진을 생포해 투울라에 있는 수도원 감옥에 가두기로 했다.

쉔은 반발했지만, 감정을 배제한 아버지의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반면 그동안 참상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던 제드는 스승의 자비로운 행위를 이해할 수도, 용납할 수도 없었다. 그때부터 제드는 가슴에 원망이 쌓여가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투울라에 수감된 진은 비밀을 감추고 수년이 지나도 속내를 좀처럼 드러내지 않았다. 진을 감시하는 수도승들은 진이 금속 공예, 시, 춤을 비롯한 여러 과목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두는 총명한 학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살인에 대한 진의 병적인 집착을 고칠 수는 없었다. 한편 수도원 밖에서는 아이오니아가 녹서스 제국에 침공당하면서 혼란에 빠졌다. 평온했던 아이오니아인들은 전쟁을 겪으면서 살생의 쾌감에 눈뜨게 되었다.

녹서스가 침공한 후 진은 투울라에서 자유의 몸이 되었다. 전쟁이 끝나면 최초의 땅에서 권력을 차지하려는 여러 과격분자 중 하나가 진을 이용하기 위해 풀어 줬을 가능성이 컸다. 이제 진은 카슈리 병기창에서 개발한 새로운 무기를 마음껏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진이 어떻게 이런 파괴의 도구를 지니게 되었는지, 카슈리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베일에 싸인 진의 후원자들은 진에게 무한에 가까운 자금을 후원했다. 점점 커져만 가는 진의 '공연' 스케일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최근 진은 제드의 얀레이 결사단 단원을 공격하고 대량 학살과 암살을 일삼으며 자신의 재주를 뽐냈다. 이러한 진의 행각은 아이오니아 전역을 넘어 머나먼 필트오버와 자운까지 뻗어 나갔다.

카다 진에게 룬테라는 예술이라는 이름의 만행을 저지를 캔버스에 불과한 듯하다. 다음으로 붓질할 곳이 어디인지는 오직 그만이 알 것이다.

2. 강철 지팡이를 짚은 남자 (1~3막)

파일:jhin-color-bg.jpg

공개 당시에는 장문 배경과 이 단편소설이 4막으로 이어진 하나의 스토리였다. 제드 코믹스와 같은 시간대에 벌어진 일로 이야기가 연계된다.
하나.

그의 손에 들린 총은 단순한 도구에 불과했다. 하지만 결점 하나 없이 완벽하게 다듬어진 도구였다. 검은색을 띠는 녹색 금속 표면에 황금으로 상감 세공을 한 글자는 장인의 이름이었다. 그 섬세한 솜씨야말로 이 도구를 만든 이의 자긍심과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총은 필트오버의 무기는 아니었다. 그 땅에 극소량 존재하는 마법의 힘을 끌어내려 기를 써서 만드는, 그런 천박한 무기와는 달랐다. 이 총은 순수한 주조술의 걸작이었다. 청동으로 만든 아이오니아의 심장에는 마법이 맥박치고 있었다.

그는 총대를 벌써 네 번째 닦았다. 네 번째로 닦기 전까지는 총이 제대로 정비되었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아직 이 총을 써 보지는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침대 아래 둔 가방에 다시 넣어버릴 것이지만 상관없었다. 정비가 다 되었다는 확신이 설 때까지는 손에서 놓지 않을 작정이었고, 네 번째로 닦기 전까지는 그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더 이상 손질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가 되었다. 네 번을 닦았으니까.

정비된 총은 아름다웠다. 이번에 그를 고용한 고객들은 인심이 후했다. 하지만 어찌 보면 당연한 일 아닌가? 가장 훌륭한 화가가 가장 훌륭한 붓을 가지는 것은.

새로 갖게 된 장비의 정교함과 묵직함과 비교해 보니, 이전에 칼을 가지고 완성했던 작품들이 상대적으로 부질없었다고 느껴졌다. 총기의 구조와 다루는 법을 익히는 데는 몇 주가 걸렸지만, 검으로 기(氣)[1] 기법을 익히는 것은 몇 달이 걸렸다.

총에는 4발이 들어 있었다. 그 총탄 하나하나에는 마법의 에너지가 깃들어 있었다. 그 총탄 하나하나는 라실라 수도승의 검날만큼이나 완전무결했다. 총탄 하나하나는 이제부터 그가 선보일 작품에서 물감 노릇을 할 것이었다. 총탄 하나하나가 걸작품이었다. 단순히 상대를 박살내는 것이 아니라, 그 구조를 재배치할 테니.

제재소가 있는 마을에서 예행 연습을 했을 때 총은 그 위력을 충분히 보여주었다. 그를 새로이 고용한 고객들은 작품의 수준에 만족했다.

손질하고 광택내는 일은 다 마쳤지만, 총은 아직 그의 오른손에 들려 있었다. 유혹은 너무나 강렬했다.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뱀장어 껍질로 만든 흑색 전신 의상을 꺼냈다. 그러고는 왼손 손가락 끝으로 그 반드르르한 표면을 쓸었다. 기름을 바른 듯 미끌미끌한 감촉이 느껴지자 호흡이 가빠졌다. 그는 딱 달라붙는 가죽 가면을 꺼냈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얼굴에 썼다. 가면은 오른쪽 눈과 입 부분을 덮었다. 호흡이 약간 답답해졌고, 거리 감각이 없어졌다…

마음에 들어.

그가 어깨 방어구를 착용하고 있는데, 방으로 올라오는 계단에 몰래 설치해 두었던 종이 짤랑짤랑 소리를 냈다. 그는 민첩한 동작으로 총을 치우고 가면을 벗었다.

"실례합니다." 방문 너머에서 하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명랑한 억양으로 미루어 보아 이곳에서 훨씬 남쪽 지역에서 자란 듯했다.

"내가 시킨 대로 했나?" 그가 말했다.

"네, 손님. 4미터마다 하얀색 등불, 16미터마다 빨간색 등불을 놓아 두었어요."[2]

"그럼 시작하면 되겠군." 카다 진은 그렇게 말하며 방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진이 방에서 나오자 하녀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진은 하녀의 눈에 자신이 어떻게 보일지 잘 알고 있었다. 평소대로라면 자의식 강한 혐오감에 격렬한 통증 같은 감정이 일었겠지만, 오늘은 공연을 펼치는 날이었다.

오늘 카다 진은 지팡이를 짚고 걷는 늘씬하고 품격 있는 몸가짐의 인물이었다. 등은 약간 굽었고, 망토의 어깨 부분이 불룩한 것이 무언가 커다란 기형이 있는 듯했지만, 경쾌한 걸음걸이 때문에 도무지 장애가 있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는 지팡이를 딱딱 소리가 날 정도로 힘차게 짚으며 창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고는 리듬에 맞추듯 창틀을 두들겼다. 탁 탁 탁, 그리고 한 번 더 탁. 그에게서 황금빛이 반짝거렸고, 크림색 망토가 부드럽게 펄럭였고, 장신구가 햇빛을 받아 빛났다.

"그… 그게 뭔가요?" 하녀가 진의 어깨를 가리키며 물었다.

진은 동작을 멈추고 잠시 하녀의 순진한 얼굴을 관찰했다. 아기천사처럼 토실토실하고 둥글었으며, 대칭이 완벽했다. 정말 따분하고 뻔한 형상이군. 볼품없는 가면이 되겠어.

"크레센도… 최고조를 위한 것이지, 어여쁜 아가씨." 카다 진은 말했다.

여관 창문으로 내다보니 발 아래 계곡에 자리한 마을 전체가 한눈에 들어왔다. 오늘 공연은 훌륭하게 마쳐야 해.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았군. 의원은 오늘 저녁에 돌아올 테고… 오늘 밤을 위한 카다 진의 계획은 지금까지는… 독창성이 모자랐다.

"선생님 방에 놓을 꽃을 가져왔어요." 하녀가 말하며 그의 곁을 지나쳤다.

다른 사람을 시켜서 등불을 놓게 할 수도 있었지만, 진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방문을 열기 전에 옷을 갈아입을 수도 있었지만, 진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래서 하녀는 진이 한껏 갖춰입은 모습을 목격했다.

이제 진이 필요로 했던 영감이 무엇인지 확실해졌다. 운명이었다. 선택이란 없다. 이 예술 작품에서는 도피란 없다.

이 하녀의 얼굴을… 좀더 흥미롭게 만들어주어야만 한다.

둘.

달달하게 조린 돼지고기가 오향장육 위에 얹힌 채 윤기를 뽐냈다. 쉔은 그 냄새에 입맛이 당겼지만 오히려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여급은 잘 했다는 듯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돌아섰다. 돼지고기의 지방이 아직 오향장육에 녹아들지 않았다. 오향장육은 지금도 충분히 맛있을 터이지만, 조금만 더 기다리면 그 맛이 절정에 달할 것이었다. 참고 기다려야 한다.
쉔은 하얀 절벽 여관의 실내를 둘러보았다. 언뜻 보기에는 대충 만든 듯 단순하고 조악했다. 벽은 원래 돛대였던 나무로 만들었고, 꼭 필요한 경우에만 가지며 나뭇잎을 쳐낸 솜씨였다.

쉔이 앉은 탁자의 촛불이 깜빡깜빡 흔들렸다… 무언가 잘못되었다. 쉔은 탁자에서 슬쩍 몸을 떼며 망토 아래에서 검을 잡았다.

"네 제자들은 새끼 밴 워락스만큼이나 은밀하게 움직이는군." 쉔이 말했다.

상인 옷차림을 한 제드가 혼자서 여관으로 들어섰다. 그는 여급의 곁을 스쳐지나가 쉔으로부터 세 번째 떨어진 탁자에 앉았다. 쉔의 온몸은 당장에라도 제드에게 달려들어 아버지의 복수를 하고 싶어 안달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황혼의 길이 아니었다. 그는 거리가 너무 멀다고 판단하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집게손가락 정도만 가까웠다면…

쉔은 제드를 바라보았다. 제드가 씨익 웃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숙적은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이제 보니 혈색이 누르께했고 눈 아래에는 짙은 그늘이 내려와 있었다.

"난 몇 년이나 기다렸어." 쉔이 말했다.

"내가 거리를 잘못 판단했나?" 제드가 녹초가 된 목소리로 물었다.

"내 목이 날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접근해서 공격할 거야." 쉔은 그렇게 말하며 한 발을 뒤로 미끄러뜨려 바닥을 단단히 짚었다. 제드는 열 걸음하고도 손가락 반 정도 길이만큼 떨어져 있었다.

"너의 길은 나의 길에 더 가까워. 네 아버지의 이상은 약점이야. 아이오니아가 더 이상 품을 만한 것이 아니었지." 제드가 말했다. 그는 의자에 기대며 몸을 젖혔다. 쉔이 치명타를 날리는 데 필요한 사정거리에서 아주 살짝 벗어날 정도로. "이렇게 말한다고 네가 이해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하지만 네가 복수할 기회를 주겠어."

쉔은 의자 가장자리 쪽으로 아주 조금 움직였다. "나는 복수를 하려고 행동하는 게 아니야. 너는 균형을 거부하고 있어. 바로 그것 때문에 네놈은 없어져야 하는 거야."

"황금빛 악마가 달아났다." 제드는 그렇게만 말했다.

"그럴 리가 없어." 쉔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네 부친이 거둔 가장 큰 승리였지. 하지만 어리석게도 자비를 베푸는 바람에 그 업적이 더럽혀지고 말았어." 제드는 고개를 저었다. "너도 알겠지… 그 악마가 무슨 짓을 할 수 있는지." 제드는 탁자 위로 몸을 숙여 쉔의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왔다. 목 부분을 여봐란듯 노출시키면서. "그리고 그것도 알겠지. 그놈에게 접근해 저지할 수 있는 사람은 우리 둘뿐이란 것도."

쉔은 그 악명 높은 카다 진이 죽인 시신을 처음으로 보았던 때를 떠올렸다. 저절로 소름이 돋았고, 이가 악물려졌다. 오직 쉔의 부친만이 그자를 붙잡되 죽이지 않는 자비를 베풀 수 있을 정도의 힘을 지니고 있었다.

시신을 본 이후로 쉔의 내면에서 무언가가 바뀌었다. 제드의 내면에서는 무언가가 부서졌다.

그런데 이제 그 괴물이 되돌아왔다.

쉔은 탁자 위에 검을 내려놓았다. 오향장육은 이제 완벽한 요리가 되어 있었다. 돼지고기의 지방이 점점이 표면에 맺혀 번들거렸다. 하지만 쉔은 더 이상 허기를 느끼지 않았다.

셋.

아직 제드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거 실망인데. 아주 실망스러워. 분명히 옛 친구를 찾아냈을 텐데 말이야. 어쩌면 제드가 숨어서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지. 조심할 필요가 있겠어.
진은 방파제에 서서 이국의 선박을 돌아보았다. 밀물이 들어오고 있었고, 배는 조금 있으면 떠날 것이었다. 다음 달에 자운에서 공연을 하려면 빨리 돌아가야 했다. 위험 위에 또 하나의 위험이 포개졌다.

진은 멈춰서서 물웅덩이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수면에는 근심 어린 표정의 늙은 상인이 그를 마주 바라보고 있었다. 오랫동안 연기 연습을 거듭해온 데다 무술 훈련이 더해져서 이제는 얼굴 근육을 움직여 얼굴 형태를 마음대로 바꿀 수가 있었다. 지금은 흔해빠진 얼굴로 변해 있었고, 거기에 평범한 표정을 덧씌웠다. 진은 언덕 오르막길을 걸어가며 자연스럽게 군중 속에 섞여들었다.

그는 위쪽에 보이는 하얀 등불을 보며 거리를 가늠했다. 제드가 나타난다면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었다. 언덕 꼭대기에 자리한 여관에 다다르자, 그는 미리 함정을 설치해 둔 화분들에 흘긋 눈길을 주었다. 예리한 강철 칼날들이 마치 꽃처럼 보이도록 배치되어 있었다. 일이 잘못될 경우 도주로를 확보해 줄 함정이었다.

진은 생각에 잠겼다. 저 칼날들이 제 역할을 유감없이 수행한다면, 그래서 이 여관의 갓 칠한 청록색 벽이 붉게 물든다면, 그 얼마나 유혹적인 광경일까.

그가 군중을 뚫고 나아가는데, 마을의 장로가 쉔에게 묻는 소리가 들렸다.

"왜 그 악마가 그 여자와 의원을 공격한다는 거요?"

파란색 복장의 쉔은 대답하지 않았다.

킨코우의 또 다른 단원인 아칼리라는 젊은 여자가 쉔 옆에 서 있다가, 여관 출입문 쪽으로 향했다.

"안돼." 쉔이 그녀를 가로막으며 말했다.

"왜 내가 준비가 안 되었다고 생각하는 거죠?" 아칼리가 따지듯 물었다.

"내가 네 나이 때, 준비가 안 되었으니까."

그때 마을 경비병 한 명이 출입구에서 구르듯이 뛰어나왔다. 얼굴은 창백했고 표정은 공허했다.

"그 여자가… 그게… 그게…" 경비는 몇 걸음 더 내딛다가 더 이상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에 고꾸라졌다.

저쪽 벽에 기대 있던 여관 주인이 웃음을 터뜨리더니 곧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다. 얼굴에는 광기가 가득했다. "저 사람이 봤어. 그 꽃을 본 거야!"

이들은 카다 진의 작품을 목격했던 기억을 잊지 않을 것이다.

쉔은 구경꾼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훑었다.

제법 똑똑한 녀석이군. 진은 그렇게 생각하며 군중들 뒤쪽으로 물러났다.

진은 돌아서서 부두 쪽으로 걸어가는 한편 제드가 있지 않나 건물들 지붕을 주시했다.

이번 작품은 꼭 필요한 일이었다. 제드와 쉔은 같이 하든 따로 하든, 진이 남긴 단서를 추적할 것이다. 그렇게 진의 행로를 따라 꽃의 축제로, 지옴 협로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다가 절박해지면, 다시 한 번 힘을 합칠 것이다.

그러면 그들이 어렸을 때와 비슷한 상황이 된다. 둘은 경외심과 공포에 짓눌려 서로에게 바짝 다가붙겠지.

그때가 되어야만, 위대한 예술가 카다 진은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리고 그의 진정한 걸작이 시작될 것이다.

넷.

[3]

3. 강철 지팡이를 짚은 남자 (4막)

일본 홈페이지에만 남아있는 진의 학살 현장이 서술되어 있는 이야기이다. 수위 때문에 유니버스에서 삭제되고 그나마 순화되어 일본 홈페이지에 다시 실렸다가 사라졌다.
진은 걸어가며 휘파람을 불었다. 봄의 숨결을 기뻐하는 오래된 노동자의 노래이다. 때때로 그 멜로디는 이상한 음색들을 드러냈다. 그 불협화음은 그의 뒤틀린 정신을 시사했다.

필요한 건 모두 갖추어졌다. 마을 중앙에 있는 나무도 그 아이에게 흰 종이로 장식하게 했다.

매우 관대한 노인의 심부름이라고 하고 진은 노동자 몇 명을 고용했다. 그들은 마을의 중앙 광장에 있는 모든 건물 수리를 마치고 청록색으로 도색했다. 마을 사람들은 이 뜻밖의 일을 모른 채 축제를 열고 축하하기 위해 그 준비에 열중하고있다.

축제 준비에 쫓기는 군중에서 품위있는 한 여자가 나타났다. 핑크색 드레스를 입은 이 여자는 진과 아이가 함께 있는 걸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킨모." 그녀는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봐, 말했잖아? 엄마는 분명 분홍색 드레스를 입고 온다고." 소년은 말했다.

"그래, 잘했다." 날씬한 남자는 아이에게 말하고는 아이의 작은 얼굴에 약속했던 가면을 씌워주었다.

"킨모!" 여자는 다가오면서 절박한 목소리로 다시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왜 연극 가면을 쓰고 있는 거야?" 소년은 엄마가 부르는 것을 신경쓰지 않는 모습으로 물어보았다.

"감정의 형태를 알 수 있는 모든 예술의 기본인 거야. 오늘이라는 평범한 하루를 누군가 기억할 것인가? 너는 이날 엄마를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을까?" 진이 물어보았다.

소년의 어머니가 두 사람에게로 달려갔다.

"킨모! 그 사람에게서 떨어져라!" 어머니는 필사적으로 외쳤다.

그리고 예술가 카다 진은 망토 속에서 핸드 캐논을 꺼냈다. 기념할 만한 첫 번째 총탄은 여자의 허벅지에 빨려들어갔다. 여자의 다리는 뒤로 꺾여지고, 순간 마법의 탄환이 발사되었다. 주위의 피부는 황금으로 변했으며, 정지된 그 포즈는 마치 발레의 아라베스크를 보는 듯했다. 여자는 비명을 질렀다.

마을의 중앙에 있던 주민과 노동자들은 그 비명 쪽으로 주의를 돌렸다. 진은 완벽한 타이밍에서 두 번째 총탄을 여자의 어깨에 박았고 여자의 몸은 깨끗이 한 번에 회전했다. 상처에선 나비떼가 날아다녔다.

마을 사람들의 비명은 세 번째 발포로 진압되었다. 마법의 탄환은 노래를 속삭이면서 여자의 뱃속에 뛰어들었고 그녀의 양팔은 충격으로 뒤로 펼쳐졌다. 그 몸이 단련을 거듭한 발레리나가 인사를 하려 구부러지는 모습이었다. 여자는 쓰러지고, 자신의 아들 앞에 무릎을 꿇었다.

"엄마?" 소년은 외쳤다.

그리고 마지막 한 발이 마치 에너지 덩어리가 빔의 형태로 나오듯이 총에서 발사되었다. 여자의 몸은 찢겨 새빨간 물보라를 올렸고 아이의 팔에 떨어졌다. 여자의 얼굴은 도자기처럼 아름다웠다.

마을 사람들은 당황하며 도망쳤다.

진은 지금까지 쓰고 있던 기쁨의 가면을 벗고 바닥에 던져버렸다. 아이에게 다가가 발로 가면을 밟아 부수고 이번에는 슬픔의 가면을 꺼내 얼굴에 썼다.

"이것은 내가 네게 주는 선물이다. 어때, 아름답지 않나? 이제 넌 엄마를 절대로 잊지 못하겠지." 진은 말했다.

킨모는 마을의 중앙으로 달려갔다. 거기에는 킨리산 궁도장 사범이며, 킨모의 아버지인 라잇콘이 있었다. 라잇콘의 가문은 진의 후원자의 분노를 살 만한 것들을 했기 때문에 교훈을 깨우치게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진에게 자세한 사정은 아무래도 좋았다. 중요한 건 작품 그뿐이다.

화산재와 진흙투성이 사범이 서 있었다. 그는 단지 공장 도시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는 여전히 어두운 갈색 파스텔로 그려진 초안에 지나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선명한 청록색 건물 사이로 쏜살같이 달아났다. 동시에 고상한 사수는 전진하며 화살을 날렸다. 하지만 불운하게도, 역풍이 불고 있었다.

진은 화살을 피하고 지팡이를 변형시켜 그의 진정한 모습을 선보였다. 진이 변형된 긴 총신을 손에 든 총에 장착했다.

이 총은 칼보다 훨씬 좋다. 방금 아이가 자신과 라잇콘 사이에 있는 군중을 향해 달리는 것을 발견했다. 자, 이제 피날레이다. 청록색의 벽도 진한 갈색의 영웅도 빨간 염색 한 덩어리로 작품을 완성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라잇콘은 모두를 지켜본 후 죽을 것이다.

아, 이번 공연은 분명 멋진 일이 될 거야.

4. 구 장문 배경

진은 살인이 예술이라고 믿는 주도면밀한 사이코패스 살인범이다. 원래는 아이오니아의 감옥에 수감되어 있었는데, 아이오니아 평의회 내에서 암약하는 어두운 세력의 힘으로 풀려난 이후 그 파벌의 자객으로 일하고 있다. 진은 총을 붓 삼아 잔혹한 그림을 그리는 화가이자, 소름끼치는 작품을 무대에 올리며 쾌락을 느끼는 극작가다. 그 솜씨를 접하는 피해자와 목격자들은 모두 얼어붙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에게 ‘공포’라는 강렬한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면, 진이야말로 그 일을 맡길 최고의 적임자일 것이다.

한때 아이오니아의 남부 산악 지대에서는 ‘금빛 악마’라는 괴물이 악명을 떨쳤다. 놈은 주운 주의 전역에서 여행자들을 숱하게 살해했고, 때로는 농장을 통째로 쑥대밭으로 만들고 기괴한 몰골의 사체들을 지천에 늘어놓고는 사라지곤 했다. 민병대가 숲을 수색하고, 각 마을에서 괴물 사냥꾼을 고용하고, 우주류 검술의 고수들이 순찰을 돌았지만, 그 존재의 살인 행각을 막을 수는 없었다.

절박해진 주운 주의회에서는 쿠쇼 대사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사절을 보냈다. 소식을 접한 쿠쇼는 적당한 핑계를 대고 거절하는 척 사절을 돌려보내고는, 일주일 뒤 그의 아들 , 최우수 수련생인 제드와 함께 상단으로 변장하고 주운으로 시찰을 떠났다. 그들은 피해 지역들을 은밀히 둘러보며 끔찍한 살해 현장들을 조사하고, 가족을 잃고 충격에 빠진 사람들을 만나보았다. 그리고 이 사건들 사이에 어떤 연결 고리나 패턴이 있는지를 추적해나갔다.

쿠쇼 일행의 조사는 4년이나 계속되었고, 그동안 세 남자는 변했다. 쿠쇼의 유명한 붉은 머리는 백발이 되었고, 재치 넘치고 익살스러운 성격이었던 쉔은 침울해졌으며, 쿠쇼의 문파에서 가장 전도유망한 샛별이었던 제드는 수련에 집중하기 힘들어했다. 마침내 살인 사건들의 패턴을 발견해낸 쿠쇼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선과 악은 실재하지 않는다. 그건 인간이 만들어낸 개념에 불과하며, 그 개념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다.”

쿠쇼 대사부가 ‘금빛 악마’를 붙잡은 일은 그의 일곱 번째 업적이자 최후의 활약이었다. 여러 연극과 서사시로 회자되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 사건은 지옴 협로에서 열리는 개화 축제 전야에 벌어졌다고 한다. 쿠쇼는 이름난 서예가로 위장하고 축제에 초대받은 예술가들 틈에 섞여들었다. 그리고 범인이 나타나기를 기다렸고, 결국은 찾아냈다.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잔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르는 자라면 당연히 사악한 존재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쿠쇼는 범인이 평범한 사람임을 깨달은 것이다. 그 유명한 ‘금빛 악마’의 실체는 주운의 여러 유랑 극단과 오페라하우스에서 무대 담당자로 일해온 카다 진이라는 이름의 사내일 뿐이었다.

세 남자에게 붙잡힌 진은 몸을 잔뜩 움츠렸고, 제드는 젊은 혈기에 불타올라 그를 죽이려 달려들었다. 하지만 쿠쇼가 그를 제지했다. 아무리 끔찍한 범행을 저지른 자라도 생포해서 툴라 감옥에 넘기는 것이 옳다는 이유에서였다. 쉔은 반발했지만, 감정을 배제한 아버지의 결정이 합당하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반면 그동안 참혹한 살인 현장들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던 제드는 스승의 자비로운 행위를 이해할 수도, 용납할 수도 없었다. 그때부터 제드는 가슴에 원망이 쌓여가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카다 진은 수 년간[4] 툴라 감옥에서 옥살이를 했다. 그러나 워낙 예의 바르고 내성적인 성격이어서 속내를 좀처럼 드러내질 않았다. 그의 진짜 이름이 무엇인지조차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다만 감옥에서 죄수들을 가르친 수도승들의 증언에 따르면, 진은 총명한 학생이었으며 금속 공예, 시, 춤을 비롯한 여러 과목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다고 한다. 그러나 수도승들과 간수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살인에 대한 그의 병적인 집착을 고칠 수는 없었다.

한편 아이오니아는 녹서스 제국에 침공당하면서 정치적 파란에 빠져들었다. 평온했던 아이오니아의 국민들은 전쟁을 겪고부터 살생의 쾌감에 눈뜨게 되었고, 각 세력들이 야합하고 음험한 권력 투쟁을 벌였다. 쿠쇼가 그토록 지키려 노력했던 평화와 균형은 나라 안에서부터 깨어지고 말았다. 급기야는 한 정치 당파가 진을 감옥에서 몰래 빼내서 자기들의 무기로 이용하기 시작했다. 진의 공포스러운 능력을 빌리면 자신들의 적인 우주류 검사들을 상대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제 카다 진은 카슈리 병기창에서 개발한 새로운 무기들과 더불어 거의 무제한의 자금까지 지원받게 되었다. 이에 힘입어 그는 예전보다도 더욱 화려하고 스케일 큰 ‘공연’을 펼치고 있다. 나라 안팎의 위정자들은 정치계의 지하 세계에서 암약하는 진을 두려워해 마지않는다. 그러나 이 연쇄살인마가 과연 언제까지 어둠 속에서 숨어서 일하는 데에만 만족할 것인가? 그는 온 세상이 자신을 주목하길 원하고 있다...

[1] 아이오니아 챔피언들의 기력을 뜻하는 듯하다.[2] 빨간색 등불에는 폭탄이 들어 있다. 이는 제드 코믹스에서 전부 폭발하여 마을 전체가 초토화된다.[3] 이 부분 뒤에는 진이 본격적으로 벌이는 참극을 묘사하고 있다. 어느 순간 유니버스에서 삭제되어있는데 그 이유인 즉슨 소설 속 진의 행동과 그 묘사가 너무 비인간적이고 참혹해서라고 한다.[4] 1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