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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2-01 18:29:15

진펄 전투


1. 개요2. 전개
2.1. 고구려군의 침입2.2. 부여군의 기습 시도와 대패2.3. 그럼에 불구하고, 저항하는 부여군2.4. 식은 땀이 흐르는 고구려왕과 기적같은 상황의 출현2.5. 힘들고도 힘든 귀국 과정
3. 귀국 이후, 고구려 왕의 행보

1. 개요

지금의 휘발하 유역으로 추정되는 부여의 남쪽 진펄지대에서 벌어진 전투.

전투는 부여군의 승리로 끝났으며, 삼국사기에 해당 전투가 기록되어 있다.

이 전쟁에서 부여는 비록 고구려군을 물리쳤으나 국왕과 수많은 군사들을 잃어버리게 된다. 특히, 부여왕의 죽음을 계기로 부여 지배층 내에서 불안과 동요가 일어났으며, 그 결과 고구려로 이민가는 부여인들이 늘어난다. 또한, 갈사국이 만들어지는 계기를 제공하기도 했다.

2. 전개

2.1. 고구려군의 침입

서기 22년 2월, 고구려 왕이 부여 남쪽으로 진군하였는데, 진창이 많은 지형인 탓에 평지를 골라 진을 치고 병사들을 쉬게 하면서 방심하고 있었다고 한다.

2.2. 부여군의 기습 시도와 대패

이 소식을 들은 부여왕은 나라의 모든 군대를 동원하여 고구려군이 대비하지 않는 사이 기습하려 했으나, 진창에 빠져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에 처했다. 이때, 왕의 명령을 받은 장수 괴유가 맹렬히 공격하자, 부여군은 대혼란에 빠져 무너졌고, 결국 부여왕이 사로잡혀 처형되는 궤멸적인 피해를 입게 된다.

2.3. 그럼에 불구하고, 저항하는 부여군

하지만, 부여군은 왕을 잃고도 쉽게 항복하지 않았고, 오히려 고구려군을 여러 겹으로 포위하며 저항했다고 한다. 이러한 저항은 고구려군의 군량 고갈이 사작되면 빛을 발휘한다.

2.4. 식은 땀이 흐르는 고구려왕과 기적같은 상황의 출현

고구려 왕은 해결책을 찾지 못해 두려워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짙은 안개가 7일간 끼어 시야를 가리는 일이 벌어진다.이 기회를 잘 이용해 허수아비 병사들을 배치하여 적을 속인 후, 밤에 샛길로 탈출한다.

2.5. 힘들고도 힘든 귀국 과정

도망치는 과정에서 신성한 말과 큰 솥을 잃었으며, 병사들이 굶주려 쓰러지자 들짐승을 잡아 연명할 정도로 비참한 상황에 내몰린다. 하지만, 끝내 귀국에 성공한다.

3. 귀국 이후, 고구려 왕의 행보

왕은 전쟁의 실책을 인정하고, 전사자를 조문하며 백성을 위로하는 등 민심수습에 힘쓴다. 이런 모습을 본 백성들은 왕의 덕과 의로움에 감동하여 더욱 충성을 다짐하게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