쥘리앙 다리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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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대 |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주장 | ||||
오스카르 에세레 (1947~1948) | → | 쥘리앙 다리 (1948) | → | 장 프루프 (1949) |
이름 | 쥘리앙 다리 (Julien Darui) |
생년월일 | 1916년 2월 16일 |
사망년월일 | 1987년 12월 13일 (향년 71세) |
국적 | 프랑스 |
출신지 | 룩셈부르크 오버코른 |
포지션 | 골키퍼 |
신체조건 | 168cm | 71kg |
소속팀 | FCO 샤를빌 (1935-1937) 올랭피크 릴루아 (1937-1940) 레드 스타 올랭피크 (1940-1942) 올랭피크 릴루아 (1942-1943) EF 릴플랑드르 (1943-1944) LOSC 릴 (1944-1945) CO 루베투르쿠앙 (1945-1953) 몽펠리에 HSC (1953-1954) |
국가대표 | 25경기 (1939-1951) |
감독 | CO 루베투르쿠앙 (1949-1952) 몽펠리에 HSC (1953-1954) 올랭피크 리옹 (1954-1955) 디종 FCO (1959-19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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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의 전 축구 감독.2. 생애[1]
2.1. 어린 시절
다리는 제1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1916년, 룩셈부르크의 오버코른(Oberkorn)에서 태어났다. 1918년부터 그의 부모가 그랑테스트 지방의 오뒨르티셰(Audun-le-Tiche)에서 카페를 운영하게 되어서 다리 역시 그곳에서 성장하게 되었다.2.2. 선수 생활
2.2.1. 클럽
다리는 1935년부터 당시 디비지옹 2 소속이던 FCO 샤를빌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샤를빌의 수비수로 엘레니오 에레라가 있었는데 그들을 축으로 샤를빌은 디비지옹 1의 팀들을 차례대로 물리치며 쿠프 드 프랑스 결승전에 진출했다. 하지만 샤를빌은 RC 프랑스에 0대1로 패해 우승에는 실패했다.1937년부터 디비지옹 1의 올랭피크 릴루아의 골키퍼가 된 다리는 팀의 중요 선수 중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1939년에 다리는 릴루아 소속으로 다시 쿠프 드 프랑스 우승에 도전했지만 다시 RC 프랑스에 막혔다.
그러나 1939년에 제2차 세계 대전이 터지면서 디비지옹 1은 진행되지 않게 되었고 릴루아 역시 비공식 경기만 뛰게 되었다. 다리는 1940년부터 1942년까지 레드 스타 올랭피크에서 뛰었는데 1942년, 2전3기끝에 쿠프 드 프랑스 우승에 성공했다.
1945년에 LOSC 릴[2] 소속으로 다시 쿠프 드 프랑스 우승에 도전했지만 이번에도 RC 프랑스가 릴을 가로막았다.
1945년, 다리는 CO 루베투르쿠앙(Roubaix-Tourcoing)으로 이적했는데 다리가 이적하자마자 릴은 더블을 차지했다. 그래도 루베투르쿠앙은 1946년 당시 디비지옹 1에 있던 팀들 중 실점이 2번째로 적은 팀이었고 다음해 이를 발판삼아 디비지옹 1의 챔피언이 되어 다리가 리그 무관으로 은퇴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1949년부터 루베투르쿠앙의 선수 겸 감독이 된 다리는 1952-53 시즌부터 다시 선수로 뛰었다. 그리고 1953년, 몽펠리에 HSC의 선수 겸 감독으로 선수 생활을 마쳤다.
2.2.2. 국가대표
다리는 22살이던 1938년,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에 프랑스 대표팀으로 참가했다. 하지만 당시 다리는 로랑 디로르토, 르네 렌스의 뒤를 잇는 3번째 골키퍼였고 프랑스는 8강에서 탈락했다.디로르토는 월드컵을 마지막으로 프랑스 대표팀의 골문 앞에 다시 서지 않았고 이때부터 대표팀 주전 골키퍼 자리는 렌스와 다리의 경쟁 체제가 되었다. 처음에는 렌스가 경쟁에서 앞서는 듯했지만 1939년 4월에 다리가 처음 프랑스의 골문을 지킨 이후론 다리의 독주 체제가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때 이후로도 다리는 프랑스 대표팀의 골문을 계속 지켰고 주장으로 5경기에 나섰다. 다리는 총 25경기에 출전했다.
2.3. 감독
루베쿠르투앙의 선수 겸 감독으로 감독 생활을 시작한 다리는 1953년, 몽펠리에 HSC의 선수 겸 감독으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1년 뒤, 개인 사정으로 올랭피크 리옹의 감독직을 사임한 오스카르 에세레의 뒤를 이어 리옹의 감독이 되었지만 다리와 리옹의 동행은 1년 만에 끝났다.1959년, 당시 아마추어 클럽이던 디종 FCO의 감독직을 끝으로 다리는 축구계를 떠났다.
2.4. 이후
축구에서 손을 뗀 다리는 디종에서 카페를 운영했다.3. 플레이 스타일 & 평가
다리는 프랑스 축구 역사에서 화려하다는 평가를 골키퍼 중 한 명이다. 키는 168cm로 작았지만 주로 상대 선수의 발밑으로 몸을 던지는 슈팅 방어와 공중볼 다툼에 능했다. 그리고 활동 반경이 넓어 골라인 근처에서만 수동적으로 활동하지 않았다.다리는 1999년, 레키프에 의해 20세기 최고의 프랑스 골키퍼로 선정되기도 했고 2022년 소 풋(So Foot)의 프랑스 챔피언십 최고의 선수 1000명에서 65위에 선정되었다.
4. 수상
4.1. 선수
4.1.1. 클럽
- 디비지옹 1 우승 1회: 1946-47(CO 루베투르쿠앙)
- 쿠프 드 프랑스 우승 1회: 1941-42(레드 스타 올랭피크)
- 쿠프 드 프랑스 준우승 3회: 1935-36(FCO 샤를빌), 1938-39(올랭피크 릴루아), 1944-45(LOSC 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