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산업 (대표 조성철)이 사원용 주택으로 서울 중구 주교동 230번지에 중앙아파트(구관)를 건설했다. 이 건물은 현재도 그 자리에 있으며, 3층 구조이다.
1998.09.10 에 출판된 '한국 최초 101장면' 가람 기획 도서 내용에 따르면, 주교동 중앙 아파트 구관의 경우 '한국 최초의 아파트' (해방후) 라고 한다.[1] 당시 건축 자재를 생산하던 중앙산업의 기술은 서독의 기술 제휴에 의해 건설 기술이 도입됐다. [2]
아래 사진은 중앙아파트 구관 준공 당시 모습 중앙가족60년사에 실려있는 사진이다.
1969년 신관 건축
중앙산업이 6층짜리(지하 및 옥탑 별도로 있음) 또 다른 중앙아파트(신관)를 지어 주거용도로 분양했다. 이 건물도 현재 그 위치를 유지하고 있다. 아래는 중앙 아파트 신관 분양 동아일보 분양 광고다.
중앙 산업과 재일 동포
중앙산업 중앙가족 60년사 자료집에 따르면 1946년 중앙 산업 창립 이후 건축자재를 생산해오던 중앙산업은 1957년 사원수가 250명에 달하였는데, 창립초기 일본에서 우수한 재일 동포 학생들을 선발해 채용한 직원들을 대상으로 이 중 우수 사원을 대상으로 사택 제도를 운영하였는데, 그 직원용 아파트가 바로 이 중앙아파트 구관이다. 당대 주거용 건물 기준 고층 건물이었던 7층 규모의 중앙 아파트 신관의 경우 일본의 기둥식 고층 맨션 건축 기술이 도입됐을 것으로 보인다.[3] 이후 1959년 충정로 개명아파트를 시작으로 중앙아파트신관, 여의도 시범단지 등의 편복도식 단지형 건축이 확산됐다.
1970년대 한 화재로 인해 소방도로가 뚫리면서 한 개의 큰 필지였던 주교동 230번지가 세 개 필지로 나누어졌다. 230번지는 구관, 230-1번지에는 소방도로, 230-2번지는 신관 세 필지로 나누어졌다. 두 개 동 한 개 단지가 각각의 건물로 분리되었다. 그 후 230번지의 중앙아파트 구관동은 중앙 프라자라는 이름으로 근생 상가 건물화되었다. 230-2 번지 중앙아파트 신관동 역시 여전히 주거용도로 이용되고 있다.
중앙아파트(신관)는 기둥식 구조로, 편복도식 아파트 중 가장 초기의 형태로 알려져 있다.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청계 고가도로 복개 당시 준설토 및 자갈로 지어져 있다. 못이 박히지 않을 정도로 콘크리트의 강도가 높다고 한다. 수세식 변기 냉온수가 나오는 당대 신식구조로 지어져있으며 오늘날에는 개별 호실별로 리모델링되어 사용되고 있다.
[1] 중앙 건설 산업은 1957년 중앙아파트 구관 건축에 자신감을 얻고 2년뒤 철근 콘크리트 구조의 서대문구 충정로에 개명아파트를 건설 분양했다.[2] 한국 최초 101장면 가람 기획 도서 내용에 따르면 당시 주민들은 "몇 백년을 이 집에서 살려고 이렇게 짓느냐, 누가 살건데 이렇게 짓느냐" 라고 말했다고 한다.[3] 한국 최초 101장면 가람 기획 도서 내용에 따르면 당시 중앙산업은 해당 건물을 지을 때 서독의 최신 건축 기술을 들여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