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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20 00:42:54

존 버고인

<colbgcolor=#000038><colcolor=#fff> 존 버고인
John Burgoyne
PC
파일:1000061549.jpg
출생 1722년 2월 24일
그레이트브리튼 왕국 베드포드셔 서튼
사망 1792년 8월 4일 (향년 70세)
그레이트브리튼 왕국 런던 메이피어
국적
[[영국|]][[틀:국기|]][[틀:국기|]]
직업 군인
복무 영국 육군 (1737~1784)
학력 웨스트민스터 학교
최종 계급 대장
참전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7년 전쟁
미국 독립 전쟁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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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국의 군인.

2. 생애

베드포드셔 서튼에서 태어났고 10세때 부터 웨스트민스터 스쿨에 입교했다.[1] 스포츠에 능했으며 외향적인 성격으로 교우관계또한 우수했다. 1737년 근위기병연대 장교직을 구매했으며 당시 이 부대는 근무여건이 상당히 좋아 근무가 끝나면 상류권이 있는 클럽으로 유흥을 즐겼고 거기에 걸맞게 비싼 옷을 구매하는 등 겉치장에 신경썼다.[2] 또한 도박에도 빠지게 되며 많은 빚을 졌다.

1741년 빚을 갚기위해 장교직을 매각했으나 1745년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이 발발하자 신설된 제1근위기병연대의 소위로 재입대했다. 45년 중위로 진급하고 대위계급을 돈주고 구매했다. 전쟁이 끝나고 부대가 해체되었으며 7년 전쟁이 발발하고 다시 계급을 재구매해 참전했다. 경기병대를 도입해 독자적 전술로 생말로 전투에서 승리를 거뒀으며 이후 포르투갈 전역에서 활약했다.

미국 독립 전쟁당시 소장이였으며 윌리엄 하우, 헨리 클린턴과 함께 영국군의 핵심지휘관으로 활동했다. 1776년 대륙군이 퀘벡으로 들어오자 세인트로렌스강을 건너 퀘벡시를 구원했다. 하지만 새러토가 전투 당시 지원군이 대륙군에게 각개격파당한 상황에서 전투를 치러야했고 대륙군에게 밀리다가 패배해 포로로 잡혔다. 이후 전쟁이 끝날때까지 연금되어있어야 했다.

전쟁이 끝나고 영국으로 귀국했으며 휘그당의 후원자가 되었다. 극작가로서 희곡을 여러편 만들기도 했고 1792년 사망했다.


[1] 당시 토머스 게이지, 제임스 스트레인지도 이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2] 당시 별명이 신사 조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