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2-08 15:55:36

조희로

<colbgcolor=#2e8b57><colcolor=#fff> 남송 이종의 생부
영문공왕 | 榮文恭王
생몰 ????년 ~ 1212년
조(趙)
이름 희로(希瓐)

1. 개요2. 상세

1. 개요

중국 남송시대의 인물로 남송의 종실. 남송의 5대 황제였던 이종의 친아버지이다.

2. 상세

조희로는 태조 조광윤의 장남이었던 연의왕(燕懿王) 조덕소의 후손으로 조사의(趙師意)의 아들이었다. 하지만 조희로의 집안은 이전 세대가 조덕소의 작위를 계승하지 못하여, 말이 남송의 방계 종실이었지만 사실상 일반백성이나 다름없었다.

조희로의 집안은 소흥부 산음현에 살았고, 아들이 황제로 즉위하기 이전까지는 남송 황실과 연관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조희로는 전씨[1]와의 사이에서 조여거(趙與莒), 조여예(趙與芮) 형제를 낳았는데, 조희로는 조여거가 7살이던 1212년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조희로 사후 남송의 4대 황제였던 영종은 슬하의 아들들이 모두 요절하자 종실의 후손들 중에서 후계자를 선발하였다. 영종은 조덕소의 후손인 조여원에게 조순이라는 이름을 주고 양자로 키웠지만 조순이 1220년에 사망하여, 다시 종실의 후손들 중에서 품행이 바른 아이를 골라 후계자로 선정하기로 했다. 영종의 후계자 후보는 조덕방의 후손이었던 조귀화와, 조희로의 맏아들인 조여거[2]였다.

논의 결과 조귀화가 후계자로 간택되어 조귀화는 훗날 조횡으로 이름을 고쳤지만, 조횡은 당시 재상이었던 사미원과 사이가 좋지 않았고, 결국 영종이 병으로 누운 사이 사미원과 대신들이 공성인열황후와의 논의로 후계자를 조귀성으로 바꾸었다. 조귀성은 1224년에 영종이 사망한 이후 이름을 윤(昀)으로 고치고 황제로 즉위하게 되니 이가 바로 조송의 제14대 황제인 이종이었다.

조희로는 이종에 의해 영왕(榮王)으로 추봉되었다.


[1] 이종이 즉위하면서 자헌부인으로 추숭되었다.[2] 기정혜왕 조병의 양자로 입적되면서 조귀성으로 개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