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많이 좋아하고, 여자 몹시 좋아하는, 한양 최고의 백전불패 외지부. 아침부터 숙취에 시달려 한껏 찡그린 눈썹에, 장난기 가득 머금은 거만한 미소로, ‘당신 송사는 장 열대에 귀양길이요, 어찌 제가 무죄로 만들어드리리까?’ 하면, 딱 그놈이다. 그가 애마(나귀 당생원)를 타고 관아에 떴다하면 웬만한 동네 사또들은 물론이오, 글깨나 읽은 양반네들도 슬금슬금 눈치를 살핀다.
법에 관해선 민법, 상법, 형법을 통달한 것도 모자라 명나라 법전까지, 서책 또한 논어맹자에 대학중용까지 줄줄 읊을 만큼 해박하고... 재판장에선 불쌍한 척, 힘든 척, 딱한 척, 3척으로 사또와 군중들을 현혹해 송사의 흐름을 바꾸는 연기대상 감이다. 구술변호 또한 청산유수라 그의 변론을 듣다 보면 없던 살해도구도 눈앞에 보이는 듯 의심하게 만들고, 죄 없던 서생조차 악질범으로 보이게 만들 정도.
여인들은 물론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모두 홀리는 마성의 사내다. 그 역시 자신의 마성을 한껏 이용해 원하는 바를 얻어냈으니...! 바로 백성들로 하여금 송사를 일으키게 하는 것! 한수에게 홀려서일까... 부지불식간에 저 영혼 밑바닥에 묻어놨던 분노와 억울함을 끄집어낸 백성들은 한수에게 소송을 맡기고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수임료로 바친다. 자신들이 그의 복수에 이용되는 줄은 꿈에도 모른 채. 한수에게 송사는 수단일 뿐... 진짜 목적은 따로 있었으니....!!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고 궁에서 나온 후 자유롭게 살고 있는 선왕의 딸. 백성들 틈에서 먹고, 자고, 일하면서 백성들의 목소리를 현왕이자 사촌 오라비인 이휼에게 전해주는 낙으로 살고 있다. 아버지의 자리를 물려받은 이휼이 진정으로 나라와 백성을 위하는 군주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그리하여 아버질 죽게 한 원상과 훈구파 대신들을 모두 물리쳐주길 바라는 진심도 살짝 보태서.
연주의 눈에 원상과 훈구파 대신들은 이 나라 조선을 좀먹는 벌레들이었다. 아버지가 그 벌레들을 퇴치하기 위한 법안들을 준비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가신 것이 두고두고 사무쳤다. 언젠가 그 ‘법’을 이용해서 훈구파 간신들을 조정에서 몰아내는 것으로 아버지의 복수를 하고자 한다. 공주의 복수는 달라야 한다, 궁극적으로 나라와 백성을 위한 일이어야만 복수도 가치 있다고 여기는 진정한 노블레스오블리주다.
그래서 도성의 번화가 중 한 곳인 마포나루에 <소원각>이라는 여각을 열었다. 다만 공주라는 신분이 들켜서 조정과 왕실에 누를 끼칠 것을 염려해 객주인 노릇은 유모 홍씨에게 맡긴 후 자신은 홍씨의 몸종으로 철저히 신분을 숨기고 활동한다. 그러니 당연히 공주라면 겪지 않아도 될 아주 비참하고 모진 일들도 많이 겪게 되는데...
역사적 관계로 보면 예종의 딸인 현숙공주 정도로 보이는 가상인물. 아버지인 예종은 공주가 6살일때 승하한다. 성종은 사촌오빠이다.
여섯 임금을 모신 유씨 집안의 손이 귀한 자제로 태어나, 제대로 배우고 제대로 공부했기에 제대로 된 놈으로 성장했다. 허나 그것이 불행의 시작... 우직하고 호방하여, 전시에 태어났다면 장군감이었고 태평성대에 태어났다면 정승감으로 충분했지만 그가 태어난 시대는 온갖 계략과 아첨이 인정받는 난세. 그 난세를 주도하는 조선 최고의 권력이 바로 그의 아버지였으니...! 아비의 야망은 조선의 임금을 또 한번 바꿔버렸다. 그로 인해 평생을 언약한 정혼자 연주공주와도 이별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공정하지 않은 세상에서 그나마 공정하기 위해 노력하는 판관이 되고자 했지만, 배움과 현실은 너무나 달랐다. 거창하고 이상적인 배움과는 달리 현실은 처참하고 비루한 사건들의 연속. 그렇게 점차 현실에 뜻을 잠식당하고 있을 때쯤, 연주를 앞세운 강한수가 나타난다. 한수의 그 치졸한 모략과 구차한 사연팔이, 부당한 수작질에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허나 그 치졸함과 부당함이 자신이 풀지 못했던 백성들의 억울함을 풀고 삶을 구했다. 그의 구술을 듣는 동안엔 그 비루한 백성의 선택이 이해가 되었고 공감이 되었다. 과연 누가 제대로 된 정의인가? 백성을 위한 궤변을 외치는 그가 정의인가? 아니면 백성을 해치는 법을 지키는 자신이 정의인가?
더욱더 괴로운 것은 그를 바라보는 연주의 눈빛이 점차 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자신은 조선 최고 명문가의 판관이고, 상대는 고작 남을 속이고 자기 잇속을 차리는 외지부 아닌가. 그런 놈에게 연모하는 이를 빼앗길 순 없다. 어쩌면, 어쩌면 그토록 싫어했던 아버지의 그 추악한 욕심이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아닐까?
숙부인 선왕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뜻하지 않게 왕이 된 후 수렴청정 중이다. 지금은 비록 꼭두각시 왕이지만 언젠가 힘을 길러 역사에 길이 남는 성군이 되고자 한다. 특히 그동안 있었던 왕실의 불행이 모두 훈구대신들의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하기에 그들이 저지른 죄악의 업보를 끊어내고자 한다. 그 노력의 일환이 바로 한수와 연주를 응원하는 것!
역사 속 관계로 보면 이 인물의 모델은 성종이라고 할 수 있다. 숙부인 예종이 왕이 된지 13개월 만에 죽고 13세라는 어린나이에 왕위를 물려받아 한명회를 비롯한 훈구세력이 원상을 맡은 상황에 대비인 정희왕후가 수렴청정을 하는 역사적 상황을 반영하였다.
‘정변政變’(계유정난)으로 왕을 바꾼 후 3대에 걸쳐 조선의 임금을 세운 원훈공신. 원훈공신은 역모의 죄가 아니라면 어떤 죄도 물을 수 없다. 그렇게 그가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도달한 원상의 자리는 더 올라갈 곳이 없는 조선 권력의 최정점이다. 마지막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 이 나라의 진정한 주인이기에 그는 원상의 지위와 권력을 절대 놓지 않으려 한다. 그것을 지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당연히 불가피한 희생이 따라오지만 개의치 않는다. 다만 몰랐던 건.... 피도 눈물도 없는 아비 대신 아들 지선이 모든 죄책감을 끌어안고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 권력을 향한 그의 집착이 그는 물론 아들의 운명까지도 파국으로 치닫게 할 것이라는 것.
한수보다 두 살 형이지만 자기보다 키 크고 잘 생기고 똑똑하고 돈 잘 버는 한수를 형님으로 모신다. 사실은 어릴 때부터 한수의 여동생 은수를 좋아해서 은수와 혼인했을 때를 대비해 장난 반 진심 반으로 ‘형님’ 부르던 게 입버릇이 된 것인데.... 은수가 이른 나이에 양반집에 시집을 가버린 후에도 버릇을 고치지 못한 것. 우스갯소리처럼 네가 나보다 키가 크니 형님이지, 둘러댔지만, 사실 한수도 은수를 향한 동치의 순애보를 알고 있는 듯하다. 비록 처남매부 사이가 되진 못했지만 그 이상으로 끈끈한 관계. 서로가 서로에게 유일한 가족이 되어주는 사이.
가장 인기가 많다. 한수를 좋아한다. 처음엔 담당하는 손님들 중에 가장 젊고 잘생겼고 돈도 잘 써서 좋았는데 언젠가 한수가 술김에 털어놓은, 자신의 그의 여동생을 닮았단 한 마디에 부쩍 마음이 가게 된다.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한수와 오누이처럼 지내면서 한수와 동치를 물심양면으로 돕는다.
선한 심성, 빛나는 미모를 지녔다. 가난한 집안에 입이라도 덜어주려고 어린 나이에 양반댁에 시집 갔다가 뒤늦게서야 가족의 비극적인 소식을 접하고 충격에 휩싸인다. 강직했던 아버지가 뇌물을 받았을 리 없고 어머니와 오라비의 죽음 또한 더더욱 믿을 수 없었다. 필시 음모고 누명이라 확신한 그녀는 부모의 복수를 다짐하게 되는데....원한에 사무쳐서 지척에 있는 원수를 알아보지 못하고 오히려 원수의 계략에 이용당하지만 마음 속 깊이 품은 간절한 바람 하나만큼은 끝까지 지켜낸, 어리석지만 지혜롭고 담대했던 여인. 돌처럼 굳은 심장에 누구보다 깊고 짙은 눈물을 담고 있던, 너무 일찍 져버린 가엾은 꽃, 피 묻은 목련.
연주의 뜻에 따라 소원각을 운영하면서 사서 고생을 하는 중. 마포나루 일대를 멱여 살리는 따스한 큰손이다. 신분 따위 따지지 않고 여각을 찾은 모든 백성을 평등하게 대하지만 갑질하는 양반들한테는 얄짤없이 엄격하다. 위험천만한 일을 자처하는 연주가 걱정스럽지만 백성을 생각하는 연주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옆에서 힘이 되어준다. 그녀에게 연주는 주인이면서 딸, 그리고 벗이다. 연주의 표정만 봐도 무슨 생각인지, 어떤 마음인지 알아차린다. 연주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바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