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colcolor=#fff> 조복전 曹福田 | |
출생 | 19세기 |
청나라 하북성 정해현 | |
사망 | 1901년 |
청나라 하북성 정해현 | |
국적 | [[청나라| ]][[틀:국기| ]][[틀:국기| ]] |
소속 | 의화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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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의화단 운동의 인물.2. 생애
언제 출생했는지는 알려져있지 않고 정해현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문맹이였고 천진의 향군으로 복무했으며 주로 철도 건설에 참여했다. 이후 퇴역했고 아편중독에 시달렸다.의화단의 난 당시 조복전은 여러 사람들과 함께 천진의 토루에 올랐다. 그리고는 돌연 외국인 주거지인 조계가 어느 방향인지 물었다. 현지인들이 동남방향이라고 말해주었다. 조복전은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동남쪽을 향해 몇번 절을 했다. 그리고는 서서히 일어나서는 서양인들의 건물을 망가뜨렸다고 말했고 말을 마치자 마자, 동남쪽에서 검은 연기가 솟아 올랐다. 사람들은 깜짝 놀랐고, 그자리에서 조복전을 우두머리로 모신다.
이후 세력을 규합해 대운하쪽에서 오는 장덕성의 부대와 합류해 2인자가 되었고 서태후에 의해 황실의 인정을 받게되고 서양인, 그들을 추종하는 자국인을 고문, 학살했다. 이에 열강들은 연합군으로 청나라로 들어왔고 장덕성, 직예총독 유록과 힘을 합쳐 톈진에서 8국 연합군이 진을 치고 있던 곳에 소때를 이용해 돌파하고 병사 몇 명을 전사시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나 청나라 방판북양군무 송경이 해산명령을 내려 청나라가 등돌렸음을 깨닫고 자신의 병력 5,000명, 후속 병력 5,000명 도합 1만명이 최후의 저항을 했으나 4일만에 톈진이 함락되고 본인은 포로로 잡히고 유록은 자살했다. 이후 심문을 받고 1901년 참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