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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20 17:33:39

제1077대공포연대

1. 개요2. 활약

1. 개요

제1077대공포연대(, 1077-й зенитный артиллерийский полк)는 제2차 세계 대전 독소전쟁시기 1942년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참전한 소련 방공군 스탈린그라드 방면군단[1] 소속 방공부대로, 스탈린그라드 전선군의 지휘를 받았다. 부대병력의 대부분인 63%가 평균 연령 18세에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거나 재학중이던 젊은 소녀 자원병들로 구성되었으며, 52-K 대공포와 61-K 대공포를 운영하였다.

2. 활약

스탈린그라드 전투 당시 활약상으로 유명한데, 스탈린그라드 공장지대 방공 임무를 하달받은 제1077대공포연대는 스탈린그라드 트랙터 공장 인근에 자리를 잡고, 방공 임무를 수행중이었지만, 독일 국방군 6군 산하 제16기갑사단의 기계화부대와 전차부대가 스탈린그라드 시내로 진입해 스탈린그라드 트랙터 공장 근처까지 진입했다.

이에 제1077대공포연대느 다른 아군 지상병력의 지원 없이 독일군에 맞서기 위해 대공포를 가장 낮은 고도로 조정하고 다가오는 독일군을 향해 직접사격하며 대항한 것으로 유명하다.[2]

이런 방식으로 연대를 돕기 위해 전투에 자원한 인근 트렉터 공장 노동자들과 함께[3] 무려 이틀 동안 항전하여 독일군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격퇴했었다.

당시 대공포 사격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하였고 지급받은 탄약도 대전차탄이 아니라 대공포탄이었다.

이로서 연대는 방공부대로서 격추한 14대의 전투기 이외에 3개 이상의 보병대대와 83대의 전차 무력화시켜 그중 33대의 전차를 완파시켰고, 보병차량 15대 등을 무력화시키는 전적을 세우며 끝까지 항전하였지만, 결국 대부분의 대공포가 이틀 동안의 전투도중 파괴되며 독일군의 공격을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전멸하였다.

2016년에 올라온 실제 참전용사 할머니들을 인터뷰한 기사를 보면 이 전투에서 1077연대의 생존자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4] 부대 자체는 스탈린그라드 이후에도 있다가 1945년 종전에 해체되었으며, 생존한 참전용사들은 전후 훈장까지 받고 지금까지 잘 살아있다고 한다. 기사엔 참전용사들의 자세한 증언이 실려있는데 처음엔 겨우 75명 정도가 투입되었지만 나중엔 지원이 와서 전차와 장갑차의 지원도 받아가며 싸웠고, 한 할머니에 따르면 본인이 있던 중대엔 20명의 소녀 포병들이 있었는데 모두 마지막까지 용맹하게 싸웠다고 한다.

이후 재창설되어 종전 때까지 싸웠다.독일군의 패색이 짙은 1945년 5월,소련 육군 제86방공사단에 배속되어 남서전선에서 싸웠으며 하르코프오데사 지역 부대들의 방공 임무를 담당하였다.

[1]러시아 항공우주군의 제51방공사단(51-я дивизия ПВО / 51st Air Defence Division). 부대번호는 42352.[2] 제1077대공포연대의 주임무는 부대명에서도 알 수 있듯 방공이었기에 대공포 직접사격과 관련한 훈련은 받지 않은 상태였다.[3] 트랙터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직접 생산한 2대의 전차와 3대의 장갑트랙터에 탑승하여 전투에 임하였다. 다만, 전차는 미완성에 조준경이 없었고, 포를 조준하는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었다고 한다.[4] 현대전에서 '전멸'이라는 말이 글자 뜻과는 달리 부대가 전투 능력을 상실할 정도의 큰 피해를 입었을 때 쓰인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는 전체 부대의 약 30% 이상 무력화되었을 경우 전멸이라고 본다. 현대의 군 편제상 육군은 일반적으로 실제 전투 인원은 30%고 나머지 70%는 보급 등을 담당하는 전투보조 인원이므로 전투 인원만 잃어도 더 이상의 유의미한 전투수행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