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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2-28 07:00:19

제이미 바디/클럽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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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레스터 시티 FC의 축구선수 제이미 바디의 클럽경력에 관한 문서이다.

2. 클럽 경력

2.1. 셰필드 웬즈데이 FC

파일:Vardy Wednesday.jpg
셰필드 웬즈데이 유스 시절의 제이미 바디. 동그라미가 가리키는 선수가 바디이다.[1]
셰필드 출신이었던 제이미 바디는 지역 인기팀인 셰필드 웬즈데이 유스에서 뛰었었지만 15살이었던 2002년 신장이 작다는 이유로 방출된다. 바디가 그토록 원하던 지역 유스팀에 들어갔지만 그의 작은 신장을 이유로 셰필드가 내쫒은거에 대해 크게 실망을 하게되고 8개월 동안 축구와 담을 쌓기도 한다. 이후 로더럼에 위치한 위커슬리 유소년팀에[2] 들어가 다시 축구를 배우기 시작했다. 위커슬리 유소년팀 소속으로 스톡스브리지 파크 스틸즈 유소년팀과의 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고 이 경기 후 스톡스브리지 파크 스틸즈 유소년팀과의 계약에 서명하게된다. 다시 축구에 대한 열정을 불태워 가는 이 때 청각장애를 가진 친구가 괴롭힘을 당하는 장면을 목격한 그는 상대방을 폭행하였고, 6개월 간 전자발찌를 차는 신세가 된다.[3] #

2.2. 스톡스브리지 파크 스틸스 FC

파일:Vardy Bridge.jpg
바디는 2003년 16세의 나이에 잉글랜드 8부 리그의 스톡스브리지 파크 스틸스 FC 유소년팀으로 이적하며 그의 커리어를 시작하였다. 2007년에는 스톡스브리지 파크 스틸스 FC 성인리저브 팀으로 이적해 그의 성인 커리어를 시작하였다. 참고로 이 당시 바디가 받은 주급은 겨우 30파운드. 한화로 약 5만원이었다. 주급이 턱없이 부족했던 터라 그는 12시간동안 의료용 목발을 만드는 공장일을 병행하며 축구를 하였다. 낮에는 공장에서 일을 하고, 일이 끝나는 저녁 시간에만 팀에서 팀훈련을 하는 식이었다. 또한 전자발찌를 찼기 때문에 오후 6시부터 오전 6시까지의 통금 시간을 6개월간 지켜야 하기도 하였다. 이로 인해, 바디는 매경기마다 전자발찌를 착용한 채 경기에 나가야 했으며,[4] 통금 시간 때문에 전반전만 뛴 뒤 집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생기기도 하였다. 그가 팀에서 지내는 동안, 2009년 잉글랜드 3부 리그에 해당하는 잉글리시 풋볼 리그1의 크루 알렉산드라에서 한 주간의 선수 선발 대회에 참가하기도 하였으며, 잉글랜드 2부 리그에 해당하는 풋볼 리그 챔피언십의 로더럼 유나이티드 FC와의 짧은 접촉이 있기도 하였다. 이후 스톡스브리지는 경기장 스탠드 중 하나의 이름을 '제이미 바디 스탠드'로 바꾸기도 했다.

2.3. FC 핼리팩스 타운

파일:Vardy Halifax.jpg
바디의 재능을 눈여겨 본 핼리팩스 타운의 감독 닐 아스핀의 부름을 받아 2010년 6월, 이적료 15,000 파운드, 한화로 약 2,200만원을 약속 받고 이적한다. 이때부터는 주급[5]이 크게 상승해 바디가 공장일을 그만두고 축구에만 전념하였다고 한다. 2010년 8월, 벅스턴과의 홈 경기에서 팀 데뷔전을 치른 바디는, 결승골을 기록하며 팀의 2-1 승리를 이끌어낸다. 그 후의 경기에서도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으며, 그의 팀 데뷔 첫 시즌을 매우 성공적으로 마친다. 그의 팀은 2010-2011 시즌 우승을 하였고, 리그 26골로 리그 득점왕 타이틀을 거머쥐었으며, 선수들이 투표로 뽑은 시즌의 최고 선수로 뽑히기도 하였다. 2011-2012 시즌 개막 4경기에서는 5골을 기록한다.

2.4. 플릿우드 타운 FC

파일:바디플릿우드.jpg
플릿우드 타운 역대 단기간 최고 임팩트
핼리팩스 타운에서 2011-2012 시즌 개막 4경기 3골을 넣은 바디는 2012년, 잉글랜드 5부 리그의 플릿우드 타운으로 이적한다. 이적료는 공개되지 않았다. 그의 데뷔전은 요크 시티와의 경기였는데, 팀은 0-0 무승부를 기록한다. 그의 첫 데뷔골은 그의 3번째 경기인 케터링 타운과의 경기에서 나왔으며, 팀은 3-2로 승리한다. 렉섬그림즈비 타운과 비기면서 플릿우드 타운의 우승이 확정되었고, 팀 역사 최초로 잉글랜드 4부 리그인 잉글리시 풋볼 리그2로 승격한다. 또한 그는 이적한 팀에서 40경기 31골을 기록하며 잉글랜드 5부 리그에서 또다시 득점왕을 기록한다.

이러한 활약으로 팀은 29경기 무패, 승점 103점으로 역시 리그 1위를 차지해 승격했다. 2011-12 시즌이 시작한 지 3경기 뒤 5부 리그에 해당하는 컨퍼런스 프리미어[6]에서 맹활약하며 리그 우승을 도왔다.[7]

이 때의 활약으로 지역 라이벌팀이기도 한 블랙풀가 0.7m파운드를 오퍼하기도 했으나 클럽이 거절한 일도 있었다. 이 시즌에 바디는 시즌 최고의 선수(Player of the Season)로 뽑혔다.

그리고 FA컵에서도 득점 행진이 이어지자 1~2부팀들인 풀럼, 사우스햄튼, 웨스트햄, 레스터 시티가 영입전에 뛰어들었다. 허나 플릿우드 타운은 1월에 이미 한차례 오퍼를 거절한바 있고, 바디의 이적료로 £1m을 요구하던 상황이라[8] 대다수의 팀들이 영입전을 포기하고 돌아갔다. 단 한 팀만 빼고. 그 팀이 바로 레스터 시티였고, 바디는 플릿우드 타운의 레전드로 이름을 남기고 떠나게 되었다.

2.5. 레스터 시티 FC

파일:JV9_PL_WINNER.jpg
490경기 198골 68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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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같은 줄 가장 왼쪽에 있는 아이도 바디와 함께 방출되는데 이에 축구를 그만두고 럭비로 종목을 바꿨다. 이 선수는 대니 케어다.[2] 위커슬리 유소년팀은 클럽에 소속된 유스팀이 아니라 독립적인 축구 교육기관이다.[3] 바디가 이 폭행사건으로 팀에서 쫒겨났다 그러는데 영문 인터넷 기사를 찾아보면 퇴출되었다는 말은 없다. 또한 폭행 사건이 일어난 시기는 셰필드 유소년팀에 있던 시기가 아니고 방출된 후 스톡스브리지 파크 스틸즈 유소년팀에 있던 시기에 일어난 일이다.[4] 그런데 바디는 이 전자발찌가 각도만 잘 조절하면 정강이 보호대로도 사용가능해서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고(...)[5] 200~500 파운드 정도라고 한다.[6] 혹은 컨퍼런스 내셔널으로도 불린다. 15-16 시즌 부터 이름이 내셔널 리그로 변경되었다. 자세한건 내셔널리그 항목을 참조할 것.[7] 이는 클럽 최초의 풋볼 리그(프리미어 리그 하위 개념으로, 2부리그인 챔피언쉽 리그부터 4부리그인 리그 투 까지를 포함한다. 16-17 시즌부터 명칭을 잉글랜드 풋볼리그로 변경한다.)[8] 여태껏 5부리그 이하에서 £1m의 이적료로 거래가 성사된 사례는 단 한번도 없었다. 즉, 여기서 바디가 £1m으로 이적하게 된다면 논리그 선수 역대 최다 이적료 기록을 세우게 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