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정윤성(鄭允成) |
생몰 | 1921년 6월 6일 ~ ? |
출생지 | 함경남도 원산부 명석리 |
사망지 | 미상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정윤성은 1921년 6월 6일 함경남도 원산부 명석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44년 7월 중국 충칭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투신하기 위해 일본군을 탈출한 뒤 동년 8월부터 11월까지 중국 후난성 부성장(副省長) 당빙초(唐憑草)에게 「일본제국 폭행, 한국독립의 필연론」을 제출하였으며, 11월에는 광복군 군관 뇌명(雷明) 등으로부터 한국독립운동사와 중국어 강의를 받았다.1945년 1월 중순 광복군 중위급으로 임명된 후 제9전구(第九戰區) 사령부 제3군단(第三軍團) 정치부원으로 중국군에 파견되어 중국군내에서 일본군 포로 심문, 한국인의 일본군 탈출 권유 선언문 및 한글과 일본어로 된 선전문을 작성하는 등 주로 선전·선동 활동을 전개하였다.
같은 해 5월 광복군 제2지대장 이범석 장군과 주중(駐中) 미군사령관 웨드 마이어 중장이 한미군사연합작전(韓美軍事聯合作戰)의 일환으로 미군전략특수공작대(美軍戰略特殊工作隊)인 OSS 훈련을 실시하기로 하자, 미 공군 장교의 알선으로 운남성(雲南省) 곤명]₩(昆明)에 있는 미국 OSS 본부로 전보되었고, 6월에는 다시 호남성 장강에 위치한 미군 공군기지 본부로 전보되어 미군사지원단장(美軍事支援團長) 보좌관으로 [[8.15 광복 때까지 대일 심리전을 수행하였다. 광복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정윤성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