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9-24 05:49:57
1. 송나라 말기 고려에 망명해 서산에 살았던 중국인.
2. 서산 정씨의 시조. 부인은 고창군부인 오씨로, 고창[현 덕산]의 세력가였던 오세재(吳世才)의 손녀딸이다. 아들은 정인경(鄭仁卿)·정준경(鄭俊卿)이다. 아들 대에 서산을 본관으로 하사받아 서산 정씨의 시조가 되었다.
3. 정신보(鄭臣保)는 송나라에서 상서형부원외랑(尙書刑部員外郞)을 지냈으며, 몽골의 침략으로 송나라(남송)가 위기에 처하자 1237년(고종 24) 고려로 망명하였다. 서산 간월도에 정착하여 살면서 고창군부인 오씨와 혼인하였다. 아들이 태어난 후인 1251년 서산 대사동[현 서산여자고등학교 자리]으로 이사하여 망운대를 짓고 자주 그곳에 올라 고국을 그리워하였다. 1269년(원종 10) 인주태수[지금의 의주]를 지냈다. 이때 아들 정인경이 임연(林衍)이 반란을 일으킨 사실을 알려 와 원나라에서 귀국하던 세자를 돌려보내 위기를 넘겼다. 정신보는 고려에 망명하여 송나라의 성리학을 전하는 공을 세웠다.
4. 묘소는 서산시 성연면 오사리 95번지에 있다. 조선 후기에 후손인 정인홍(鄭仁弘)이 인조반정 후 참형되고 일가가 큰 화를 입어 묘역이 수백 년 동안 방치되어 있었다. 1920년대에 후손들이 되찾아 새로 단장했다.
5. 송나라의 앞선 문물을 전수한 공으로 1292년(충렬왕 18)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에 추증되었다. 망운대에 올라 고국을 그리워했던 정신보의 충의가 알려져 조정에서 충신문을 세워 주었는데 병란으로 훼손되었다고 전한다. 조선조에 후손들에 의해 서산시 인지면 애정리 495번지 송곡서원(松谷書院)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