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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1-10-12 21:18:21

전배근

파일:전배근.jpg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자 / 호 성삼(聖三) / 고당(高堂)
본관 담양 전씨[1]
출생 1876년[2] 6월 2일
강원도 울진현 근북면 봉평리
(현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봉평리)
사망 1938년 7월 20일[3]
강원도[4] 울진군
(현 경상북도 울진군)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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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전배근은 1876년 6월 2일 강원도 울진현 근북면 봉평리(현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봉평리)에서 아버지 전상유(田尙濡)와 어머니 영양 남씨 남치빈(南致斌)의 딸 사이의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1905년 12월 울진에서 청송의 이하현(李夏玄)과 함게 의병을 일으키는 문제를 논의했고, 이강년 의병장의 지령을 받은 김형규(金炯奎)가 1906년 6월에 울진에 오자 의진을 재편성하여 불영사를 근거지로 삼아 울진, 평해 등지에서 활동했다. 이후 신돌석 의병장의 소모장을 맡아서 1907년 8월 26일 참모 전세호(田世浩), 중군 최경호(崔慶鎬)[5]와 함께 평해군수(平海郡守) 이명근(李明根)을 만나서 대의를 설득하였다. 그리하여 관포군 40명과 군자금 천냥을 받아 울진(蔚珍)으로 돌아와서 장석태(張錫泰)·장진수(張鎭守) 등과 같이 200여명을 인솔하고 울진(蔚珍) 및 평해군 내에서 의병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신돌석이 피살된 후에는 고향에 은거했고, 1938년 7월 20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6년 전배근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1] 경은파 26세.[2] 담양전씨 인터넷족보에는 1878년생으로 기재되어 있다.[3] 음력 6월 23일.[4] 1962년 12월 31일까지는 경상북도가 아닌 강원도였다.[5] 독립유공자로 지정된 최경호와 동명이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