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1-10-12 21:17:16

장호형

<colbgcolor=#0047a0> 출생 1893년 6월 7일
경기도 가평군 북면 목동리
본관 단양 장씨
사망 1950년 10월 20일
경기도 가평군
직업 독립운동가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장호형은 1893년 6월 7일 경기도 가평군 북면 목동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15일 이윤석(李胤錫)·정흥교·장기영 등이 주도하여 발발한 가평군에서의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해 수백명의 군중과 함께 군청으로 행진하여 독립만세를 외치고 학교와 면사무소로 행진했다. 이때 긴급 출동한 헌병대가 주동자 이윤석과 정흥교 등 10여 명을 헌병대 분견소로 강제 연행했다. 다음날 200명이 서낭당 고개에 모여 전날 체포된 인사들을 구출하려 할때 그 역시 참가했고, 장기영과 함께 선두에 서서 군중을 지휘해 분견소로 행진하던 중 긴급 출동한 헌병 2명과 보조원 4명의 제지를 받았다. 이 때 장기영이 헌병과 승강이를 벌였는데, 헌병은 공포를 쏘아대며 응원병을 요청하였으며, 이어 대대적인 검거작업을 벌였다.

결국 체포된 장호형은 1919년 4월 2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및 소요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공소했지만 7월 14일 경성복심법원과 9월 25일 고등법원에서 역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후 가평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50년 10월 20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3년 장호리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