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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1-10-16 00:00:05

장종건


성명 장종건(張悰鍵)
생몰 1895년 3월 10일 ~ 1966년 9월 6일
출생지 평안남도 평양부 칠산동
사망지 서울특별시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장종건은 1895년 3월 10일 평안남도 평양부 칠산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찍이 서울로 상경해 학업에 전념했다. 그러던 1919년 3월 1일 파고다 공원에서 발발한 독립선언식에 참석했고, 이후 군중과 함께 남대문을 거쳐 미국 영사관, 대한문, 광화문, 서대문, 프랑스 영사관을 지나 장곡천을 거쳐 조선은행 앞까지 행진하며 독립만세를 고창했다. 또한 3월 2일부터 7일까지 천도교 월보 편찬인 이종린으로부터 독립신문을 인쇄할 것을 부탁받고, 2·3·4호의 원고를 받아 자기가 근무하는 경성서적조합 사무실에서, 등사판을 이용하여 임승옥(林承玉)·김영조(金榮洮) 등과 제2호 6백여 매를 인쇄하고, 단독으로 3·4호 6백여 매씩을 인쇄하여 이종린에게 건제 주었다.

그 후 이종린이 경찰에 체포되자, 그는 최치환(崔致煥)·최기성(崔基星)·강태두(姜泰斗)·임승옥 등과 협의하고 3월 13일 유병륜(劉秉倫)의 집에서 자신이 직접 원고를 쓴 독립신문 5호 7백여 매를 인쇄하여 배포했다. 그러나 이 일로 체포된 그는 1920년 2월 2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출판법 및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서울에서 조용히 지내다 1966년 9월 6일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장종건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90년에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