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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웅(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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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3. 수훈이력4. 여담5.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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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북한의 체육인. 1996년부터 2018년까지 북한을 대표하는 IOC 위원, 2002년부터 2015년까지 국제태권도연맹 총재를 역임했다.

2. 생애

1938년 7월 5일에 태어났다. 평양체육대학을 졸업하고 1956년부터 1966년까지 10년간 조선인민군에서 농구선수로 복무했다. 1956년부터 1967년 사이에 북한 농구 국가대표팀 주장을 맡았으며, 1968년부터 농구팀 코치, 1970년부터 체육교원으로 활동하다가 1974년 조선체육지도위원회에 입부하였다,

1981년 7월, 조선체육지도위원회 부서기장을 역임했으며, 1985년 6월, 조선올림픽위원회 서기장에 임명되었다. 1986년 1월, 스위스에서 열린 남북체육회담, 1989년 3월 남북체육회담, 1990년 11월 남북체육회담에 참석하였다. 1991년 2월, 남북탁구단일팀 북측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1991년 12월 17일, 아시아 올림픽평의회(OCA) 부회장으로 내정, 1992년 4월 히로시마에서 열린 OCA 총회에서 정식으로 부회장이 되었다. 북한 올림픽위원회 서기장으로 사업하던 중 1996년 7월 18일, 애틀랜타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1993년에 은퇴하고 루마니아 대사로 조동된 김유순의 후임으로 북한 대표 IOC 위원에 선출되면서 20년 동안 북한의 유일한 IOC 회원으로 활동했다. 여담으로 당시 같이 IOC에 한국 대표로 선출된 인물이 다름아닌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다. 장웅은 1996년 7월 19일자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남북 체육교류는) 지금은 논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런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발벗고 나서겠다. 사랑하는 내 민족과 조국을 위한 일이지 않은가."라고 소회를 밝혔으며 IOC 위원이 되기 위해 딱히 노력한 적은 없다고 하였다. # 1998년 체육지도위원회 부위원장에 임명되었다.

북한의 스포츠 외교에서 큰 역할을 하였으며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남북동시입장에서 큰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2001년 3월, 김한길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이 방북하였을때 체육지도위원회 부위원장 자격으로 그를 환영하였다. 2002년 6월, 최홍희가 사망한 이후 최홍희 장의위원을 지냈으며, 그의 유언에 따라 후임 ITF 총재가 되었다. 이후 체육지도위원회 제1부위원장으로 승진하였다가 2003년에 물러났다. 이후 오스트리아 빈으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가족들과 함께 거주하였다. 하지만 딸들은 평양에 인질로 잡혀 있었다. 아들 장정혁은 축구선수로 활동했는데,[1] [2] 존 장이라는 외국 이름도 있으며, 이후 IOC 사무국에서 일하면서 스위스 로잔에 거주했다. 2002년 9월, 평양에서 열린 국제무도경기위원회 특별총회에서 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2003년 8월에 1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된 것을 시작으로 13기까지 3선을 연임했다. 2012년 런던올림픽 때 대한민국 체조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따낸 양학선에게 금메달을 걸어주며 한국어로 "축하합네다."라고 하기도 했다. 이후 같은 민족에게 금메달을 걸어주게 되어 기쁘다고 인터뷰하기도 했다. #

2015년 슈피겔지와 인터뷰를 가졌지만 이때도 건강이 좋지 않은 것을 드러냈고 #, 8월에 ITF 총재에서 물러나 리용선에게 자리를 물려주었다. 2016년 3월, IMGC 8차 총회에서 국제무도경기위원회 위원장에서도 물러나 리용선에게 이임하였다. 이후 IOC 위원 임기는 계속 수행하면서 2018년 평창 올림픽 문제에 있어서 크게 활약했다. 평창올림픽 때 방한했으나, 건상상의 이유로 폐회식에 참석하지 못하고 도중에 돌아갔다.

2018년, 만 80세로 정년을 맞이하면서 IOC 위원에서 물러나게 되었으며, 2019년 6월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IOC 134차 총회에서 명예 IOC 위원에 선출되었다. 이후 종적을 감추어서 신변이상설이 조선일보를 통해서 제기되고 하였으나 # 은퇴한 간부가 조용히 지내는 것은 북한에서 원래 그러는 것이고 2023년 10월 17일, 뭄바이에서 열린 141차 IOC 총회에 화상으로 참가하면서 건재함을 확인하였다. 이날 그간의 공로를 기념하여 올림픽 훈장을 수여받았는며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이 "수십 년간 북한 내 스포츠 역할 증진에 원동력이 됐다. 언제나 올림픽 운동과 북한의 올림픽 커뮤니티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했다"라고 그의 공로를 치하했다. # 북한은 10월 26일, 이 소식을 이례적으로 꽤 자세히 알렸는데, 조선중앙텔레비죤, 로동신문, 민주조선에 모두 관련 내용이 실렸으며, 올림픽훈장이 어떤 의미인지도 해설하였다.

3. 수훈이력

4. 여담

영어와 일본어에 모두 능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키는 189센티미터이다.

5.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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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당시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 골키퍼로 내한한 바 있다.[2] 외신 번역문에서는 장정혁을 장종혁이라 오역하는 경우가 많은데, 매큔-라이샤워 표기법을 고수하는 북한 특성상 정과 종을 모두 영문으로는 'Jong'이라 표기하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비슷한 예가 고용희-김정은 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