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1-10-12 21:13:19

장순기

파일:장순기.jpg
성명 장순기(張順基)
생몰 1897년 7월 29일 ~ 1935년 5월 20일
출생지 전라남도 광주군 비아면 월계리
사망지 전라남도 광주군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장순기는 1897년 7월 29일 전라남도 광주군 비아면 월계리에서 태어났다. 조선일보 광주지국 기자로 재직하던 그는 1926년 광주 정미노동조합 이사를 맡으며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이후 신간회가 결성되자 신간회 광주지회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민족의식 고취에 힘을 쏟았다. 1927년 9월 사회주의 비밀결사 고려공산청년회(高麗共産靑年會)에 가입하여 광주지역 책임자로 활동하였으며, 1928년 4월 광주 일대에 항일 전단을 배포하다가 체포되었다. 그는 1928년 8월 ‘제3차 조선공산당 검거사건’으로 다시 체포되어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을 받고 3년여 간 옥고를 치렀다. 이후 고문의 후유증으로 고생하다 1935년 5월 20일에 사망했다.

장순기는 공산주의 성향의 인사였기에, 오랫동안 독립유공자로 지정되지 못했다. 2000년 10월 19일에 그의 사위 정인규 씨가 독립유공자 서훈 신청을 했지만, 국가보훈처는 '사회주의적 독립운동의 성격'에 저촉된다는 이유로 탈락 처리했다.# 그러다가 2005년에서야 장순기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고 2006년에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