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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11 10:18:59

장부인(감문국)



1. 개요2. 전승3. 장부인릉4. 기록

1. 개요

獐夫人

진한의 국가 중 하나인 감문국의 왕비로 전해지는 인물. 조선 중기 이후 기록에서야 등장하며, 금효왕과 함께 무덤 전승이 남아있다.

2. 전승

향토지 기록에서 장부인은 감문국의 어느 왕비 무덤으로 알려져 있는데, 구전으로는 금효왕의 어머니 또는 금효왕이 총애했던 총희였다고 한다.

3. 장부인릉

조선시대 기록에 의하면 장부인릉(장릉)은 개령군 웅현(오늘날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 서부리) 인근에 위치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김천시에서 관리를 받은 금효왕릉과는 달리, 장부인릉이 위치한 곳은 포도밭으로 변하면서 없어진 상태라고 한다.2021년 기사

4. 기록

금효왕릉(金孝王陵)
북쪽으로 20리에 큰 무덤이 있는데, 세상에 전하기를, “감문국의 금효왕릉이다.” 한다.
장릉(獐陵)
현(縣)의 서쪽 웅현리(熊峴里)에 있는데, 세상에 전하기를, “감문국 때의 장부인릉(獐夫人陵)이다.”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제29권 경상도
(231년) 가을 7월 계림에서는 이찬 석우로(昔于老)를 대장군으로 삼았다.
계림이 석우로를 보내어 감문국(甘文國)을 멸하고 군(郡)으로 만들었다.[원주]
동사강목 신해년 신라 조분왕 2년, 고구려 동천왕 5년, 백제 구수왕 18년(위 명제 태화 5, 231) 중
감문국은 지금의 개령현(開寧縣)이다. 감문산(甘文山)이 개령현 북쪽에 있는데 그 유지(遺址)가 아직도 남아 있고, 웅현(熊峴)에는 장부인릉(獐夫人陵)이 있다. 《동사(東史)》에, “크게 군사 30명을 발동하였다.” 하였으니, 아마 지극히 작은 나라였던 것 같다. 신라 조분왕(助賁王) 2년에 쳐서 멸망시켰다.
임하필기 제36권 부상개황고 감문(甘文)

[원주] 지금의 개령현(開寧縣)이다. 현의 동쪽 2리 유산(柳山) 북쪽에 감문국 궁궐 유지가 있고, 현의 북쪽 20리에 큰 무덤이 있는데, 속칭 감문 김효왕릉(金孝王陵)이라 전하며, 현의 서쪽 웅현리(熊峴里)를 감문국 장부인릉(獐夫人陵)이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