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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0 00:31:30

장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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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999999> 장부다
Jang Bu-da
출생 1969년 2월 1일 ([age(1969-02-01)]세)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경원대학교[1] (학사)
직업 그래픽 디자이너, 기업인

1. 개요2. 생애3. 논란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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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2019071601001275000089351.jpg

대한민국그래픽 디자이너.

많은 축구단의 엠블렘 등을 디자인하면서 국내 최초의 축구 전문 디자이너로도 불린다.

한국 축구 디자인의 ‘시조’라고도 할 수 있으며 그가 축구에 푹 빠지면서 디자인에 대한 인식이 변했고, 미국 프로 스포츠를 따라갔던 한국 프로 축구 디자인도 달라졌다.

디자이너 이외에도 서울 유나이티드의 마케팅 이사로도 활동했으며 현재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스포츠 디자인 마케팅 회사 BUDAJANG FC를 운영하고 있다.

2. 생애

디자인과 상관없는 경원대 관광경영학과를 나왔다.

디자인에 관심이 많았음에도 부모님의 반대로 다른 학과를 전공했으나 축구와 디자인에 대한 그의 열정은 꺾이지 않았다.

대학 3학년이던 1989년부터 주간신문 만화만평에 작품을 실으며 디자인 활동을 계속했고, 한국 축구와의 인연은 그가 이벤트 회사에 취업하고 기획과 디자인을 담당하면서부터 시작됐다.

1996년 한국과 일본이 월드컵 유치 경쟁 중일 때 유치 기원 초청 경기를 기획했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지만 그 당시에는 가능했던 우리 국가대표팀과 이탈리아 세리에 A AC 밀란, 유벤투스의 매칭이었다. 장 대표는 “당시 국내 기업에서 해외 유명 기업의 에너지 음료를 출시했다. 이를 홍보하기 위해 기획된 게 초청 경기다. 당대 최고 리그였던 세리에 A를 대표하는 로베르토 바조(AC 밀란)와 잔루카 비알리(유벤투스)가 에너지 음료 홍보 모델이었기에 두 팀을 초청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1997년에는 영국 스포츠 브랜드의 국내 출시를 맡은 광고 대행사에서 근무했다. 그는 당시 해당 브랜드 유니폼을 사용했던 전남 드래곤즈의 트레이닝 저지를 디자인했다. 부모의 반대로 미대 진학을 포기했던 그가 뜻밖의 장소에서 축구 디자인이라는 운명을 만나며 재능을 발현하기 시작한 것. 붉은악마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그레이트 한국 서포터 클럽’의 일원이기도 했던 그는 99년 브라질전을 앞두고 응원 깃발이 필요하다는 붉은악마 운영진의 의뢰로 붉은악마의 상징이 된 ‘치우천왕’을 디자인했다. 1999년 대전 시티즌전남 드래곤즈의 머플러를 처음 만들었으며 당년 붉은 악마의 상징이 되다시피 한 치우천왕 디자인도 그의 손끝에서 나왔다.

2000년 백제의 금동용봉향로, 계백장군을 암시하는 두 명의 말을 탄 장수를 형상화한 대전 시티즌의 엠블럼을 디자인하면서 한국 축구 디자인산업에 본격적으로 몸담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K리그는 미국 프로스포츠의 영향으로 캐릭터 중심의 엠블럼이 많았지만 장부다의 등장 이후 좀 더 유럽 축구의 스타일로 바뀌어갔다. 각 지역별 정체성이 담긴 디자인도 제시했다.

이외에도 경남 FC, 안산 그리너스 FC, 박지성축구클럽, 2007년 K3리그, 한국여자축구연맹 WK리그의 엠블럼을 디자인하면서 축구계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고 장씨는 국내의 대표적인 축구 전문 디자이너로 입지를 굳혔다.

디자인 외에도 ‘서울시민구단 서울 유나이티드 창단 운동’을 정열적으로 펼치면서 서울 유나이티드 창단에 힘썼으며 구단의 사무국장으로도 활동하였다.

3. 논란

3.1. 서울 유나이티드 엠블럼 논란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서울 노원 유나이티드 FC/엠블럼 논란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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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여담



[1]가천대학교